<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 <너처럼 나도>
“안 돼! 이 기차에는 사람들만 탈 수 있단 말야, 동물들은 못 타!!!”
남편과 아이가 거실에서 블럭놀이를 하기에 조용히 방에 들어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던 아름다운 오후였다. 한참 즐겁게 놀더니 바당이는 계속 안 된다고 외치고 남편은 뭔가를 계속 부탁하고 있었다. 역할놀이를 제일 좋아하는 바당이는 무슨 놀이를 하든 결국 끝은 역할놀이가 되고 마는데 오늘도 그랬나보다. 바당이는 기관사가 되어 기차역마다 멈춰 ‘기차 탈 사람 없나요?’ 묻는 중이었고 남편은 기차를 타려는 승객들 역할을 맡아 열연을 펼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남편이 함께 갖고 놀던 토끼, 다람쥐, 코끼리 같은 동물 블럭들을 태우려고 하자 바당이가 거부한거다.
바당이의 입장은 완강했다. 잘 놀다가 갑자기 웬 심술이람. 이유를 물어도 ‘그냥 내 마음이야', ‘이건 내 기차라서 동물들은 태워 주기 싫어’라는 말이 돌아올 뿐이었다. 대치상황 끝에 남편이 결국 동물권 운동가(?)로 분해 “우리도 태워달라! 태워달라!”, “우리 동물들도 기차를 원한다! 원한다!”라고 요구했고 나 역시 물을 마시러 나가는 척 하면서 은근슬쩍 “그래, 동물들이 좀 속상하겠다. 코끼리도, 토끼도 다 바당이 친구잖아. 한 번 같이 타면 안 돼?”라며 힘을 실었다. 어차피 남은 사람 블럭도 없던 차에 수세에 몰린 바당이가 ‘대신 이번 한 번만’이라는 조건을 달긴 했지만 그렇게 협상이 타결됐고 동물들도 겨우 기차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고보면 세 돌을 지난 후로부터 바당이는 부쩍 ‘자기 중심적’이었다. 늘 제 기분이 우선이고 뭐든 본인이 제일 먼저 해야 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다른 사람이 버튼을 누르기라도 하면 난리가 났다. 바당이가 특별하게 모가 나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이 발달 과정에 보이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들 했다. (흔히들 '내가병!'이라고 불리는 바로 그 시즌이 된 것이다.) 그래도 ‘다른 친구들도 같이 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정도의 이야기는 해주고 싶었다.
마침 트위터에 이 에피소드를 간략하게 올렸더니 한 분이 “이제 이 책을 읽으실 때가 됐네요.”라며 그림책 한 권을 추천해주셨다. 바로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였다. 이 책은 오랫동안 어린이들에게 사랑받아온 작가 존 버닝햄의 작품이었다. 바당이도 <지각대장 존>, <셜리야, 물가에 가지 마!>를 아주 좋아해서 우리집에서도 인기 있는 작가 중 한 명이기도 했다. 다행히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도 ‘언젠가 함께 읽어야지’하며 책장에 꽂아두고 아직 펼쳐보지 않은 책 중 한 권이었고 나는 아이가 고른 잠자리 책에 이 책을 슬쩍 끼워넣었다. (우리집 잠자리책 선택권은 전적으로 바당이에게 있다. 낮시간은 우리도 나름 힘이 좀 있지만 말이다.)
그렇게 펼친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는 그야말로 오늘 우리집과 똑같은 상황이었다. 기차에 타고 있던 소년은 처음에는 기차에 태워달라는 동물들에게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라며 거부하지만 동물들의 사정을 듣곤 이내 함께 기차 여행을 하며 친구가 된다. 환경오염으로 인해 살 곳을, 때론 가족과 친구를 잃을 위기에 처한 동물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 소년은 자신의 것을 나누고 양보하며 동물들을 돕는다. 자기 기분이나 마음을 내세우기 바쁜 아이에게 ‘양보’, ‘배려’, ‘존중’을 알려주기에 이보다 더 알맞은 이야기는 없어보였다. 바당이도 상황이 익숙했는지 ‘어, 우리도 아까 기차 놀이 했는데!’라며 이야기에 몰입했다. 아이도 충분히 느끼고 있는 것 같아 놀이 중에 있었던 일을 언급해가며 말을 덧붙이기 보단 ‘그러게, 여기도 기차 기다리는 동물들이 있네.’ 정도로만 환기시키고 책을 읽어나갔다.
보통 우리집에선 비슷한 주제나 종류의 책을 함께 읽는 편이라 서가에서 책 한 권을 더 골랐다. ‘공감’과 ‘공존’이라는 주제를 다룬 그림책들 중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가 클래식이라면 <너처럼 나도>는 2018년에 출간된 책으로 비교적 따끈한 신간에 가깝다. 이 책은 ‘왜’ 우리가 다른 이들의 기분을 헤아리기 위해 노력하고 존중하고 배려해야 하는지 좀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해준다. 제목 그대로 주인공인 아이에게 다양한 동물들이 ‘너처럼 나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고, 네가 그렇듯이 나 역시 행복할 때도 무서울 때도 있다고 말한다. 책을 펼쳤을 때 왼 쪽은 먼저 동물들의 이야기를, 그 다음으로 오른 쪽은 아이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구성이라 아이 입장에서도 공감하기 쉬워 보인다.
그림책이 좋은 건 이런 말들을 자연스레 건넬 수 있기 때문이다. 네가 다정한 대접을 받는 걸 좋아하듯 다른 이들도 그렇다는 걸, 네 기분만큼 다른 이들의 마음도 중요하다는 걸,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려주니 말이다. 아이를 키울수록 ‘올바름’에 대해 말한다는 게 참 어렵게 느껴진다. 그 중에서도 타인을, 다른 존재를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것은 옳은 말이지만 많은 상황에서 아직은 ‘배려’의 대상이 되는 게 당연한 어린이들에게 설명하기란 더욱 어렵다. 하지만 이 두 권의 그림책은 아이가 보고 들으며 자연스럽게 다른 이들의 마음에 이입하며 공감할 수 있도록, 아이를 좀 더 따뜻한 방향으로 ‘슬쩍’ 밀어준다.
바당이는 언제부턴가 길가에서나 친구들의 집에서 만난 개나 고양이들을 제 마음대로 안거나 쓰다듬지 않는다. 동물을 대하는 법에 대해 꾸준히 일러준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게 ‘잔소리’로 튕겨져 나오지 않고 아이의 마음 속에 스며들기 까지는 이 책들의 도움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무작정 달려가기 전에 멀리서 ‘안녕’하며 인사부터 하고, 동물과 함께 있는 사람에게 ‘가까이서 봐도 돼요?’, ‘쓰다듬어도 멍멍이 기분 괜찮아요?’라고 물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당장 멍멍이를 안아보고, 고양이와 나란히 걸어보고 싶은 본인의 기분보다 더 우선되어야 할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아이는 알고있는 것 같다. 이제 바당이는 산책길에서 멍멍이를 발견하곤 반갑게 인사를 하러 달려갔다가 별다른 화답을 받지 못해도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엄마, 오늘은 멍멍이가 기분 별로인가봐. 나도 그럴 때가 있잖아!” 그러곤 제 갈 길을 간다. 산뜻한 마주침이다.
*그림책 이야기를 하는 글에서는 출판사가 제공한 미리보기 페이지만 활용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