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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 Sep 17. 2019

우리집 스테디셀러, 고미 타로  


전면 책장의 책들을 3,4주 간격으로 한 번씩 바꿔주는 편이다. 오늘이 그 날이었고 이 책 저 책 꺼내서 나름의 배열을 해 꽂다보니 문득 우리집에 어느 작가의 책이 가장 많을까, 궁금해졌다.


 역시 제일 많은 것은 구도 노리코! 삐약삐약, 우당탕탕 야옹이, 펭귄 남매랑 등이 시리즈로 있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다만 글밥이 적어서 그런가 반복되는 스토리에 조금 질렸나 요즘은 좀 시들하다. 그래도 아이가 뱃 속에 있을 때부터(심지어 분만실에서도 읽어주지 않았던가!) 두 돌 가까이까지는 정말 읽을 때마다 꺄륵꺄륵 넘어갈 정도로 좋아한 우리집 베스트셀러였다. 독보적인 1위를 꼽고 나니 나머지는 비슷비슷했다. 존 버닝햄, 사노 요코, 안녕달, 이수지, 백희나, 베아트리체 알레마냐, 토드 파, 주디스 커, 윌리엄 스타이그, 요시타케 신스케, 고미 타로 등등. 내가 좋아하는 작가거나 도서관이나 스틸로 같은 곳에서 한 권씩 봤던 책들이 마음에 남아 한 권씩 차례차례 모으기 시작한 작가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나도 아이도 좋아해 어느 새 많게는 예닐곱권, 적게는 세네권씩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단행본으로만 보면 더 좋아하는 작품들도 있지만 고미 타로를 얘기하려고 하는 건, 바당이가 정말 그의 다양한 작품들을 꾸준히 좋아해왔기 때문이다. 고미 타로는 명실공히 우리집 스테디셀러 작가다.


우리집에 있는 고미 타로의 책들.


고미 타로를 처음 만난 건 <모두에게 배웠어>를 통해서였다. 아이가 뱃 속에 있을 때부터 사두고 태담으로 읽어줬던 동화책이 몇 권 있는데 이 책도 그 중 하나였다. 글밥이 간략했고 동물들의 행동을 아이가 모방하며 무언가를 배운다는 얘기가 동시같기도 하고 재미있었다. 신생아 때부터 읽어주고 아이가 한창 책을 찢던 시기에도 나는 종이책을 보여줬어서 찢어진 페이지도 아주 많고 보수도 여러 번 했다.

모두에게 배웠어



나머지 세 권은 모두 물려받은 것인데 특히 <악어도 깜짝, 치과의사도 깜짝>과 <바다 건너 저쪽>은 좀 재밌는 에피소드들이 있다.


악어도 깜짝, 치과의사도 깜짝


사실 아이 첫 구강검진을 앞두고 이 책을 읽어줬었다. 치과에 처음 가는거라 뭘 하는지 대충 봐두면 좋을 것 같다는 순진한(!) 마음이었다. 결과는 대실패로 바당이는 이 책을 몹시 무서워하게 됐다. (치과는 안 무서워하니까 성공인걸까?) 여튼 이 책은 굉장히 유머러스한데 치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악어만 무서워하고 싫은 게 아니라 악어를 치료해야 하는 치과의사 또한 이 상황을 무척 힘들어 하기 때문이다. 치과의사의 저 표정을 보라(!) 마지막에 둘은 약간 “만나서 더러웠고 다신 함께하지말자” 모드로 헤어지는데 그것도 너무 웃긴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게 바당이는 고미타로의 그림체를 알아보는지 가끔 <모두에게 배웠어>나 <잃어버린 줄 알았어>를 읽자고 꺼내다가 “이거 그 치과가는 거 아니에요??? 무셔ㅜㅜ” 할 때가 있다. 세 작품이 특히 전체적인 톤이나 비슷한 계열의 무채색이 많이 사용되서인걸까. 아니면 그림체를 알아보는 걸까. 여튼 아이가 나름대로 그걸 알아보고 있는 게 신기하기도 기특하기도.


바다 건너 저 쪽

<바다 건너 저 쪽>은 최근에 바당이가 푹 빠졌던 책이다. 이 책의 무엇이 아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을 전면책장에 꽂아둔 날부터 아이는 이 책을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읽었고 하루에도 여러 번 읽었다. 그런데 나도 이 책이 참 좋았다. 아이가 바다 앞에 서 바다 건너 저 쪽을 상상하는 이야기. 건너편에는 무엇이 있을까 상상해보고 다른 존재와 다른 삶을 궁금해하는 이야기. 친구들도 있을 거야, 동물들도 있을거야, 저기에서 누가 걸어오는 것 같다, 그런 말들이 참 꾸밈없이 간결하고 아름답다. 시적이다. 고미 타로의 책들 중 이 책의 그림이 가장 마음에 들기도 한다. 여전히 톤다운 된 고미 타로 특유의 색채인데 (특히 첫 사진의 페이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하다는 느낌마저 준다.

 바당이는 이 책의 글자를 모두 외웠다. 사실 늦봄-초여름에 한창 읽어주다가 여름이 되면서부터는 한동안 멀리했었는데 지난주였나 오랜만에 읽자고 하더니 책장을 펼치고 그 페이지에 맞는 내용 그대로를 정확히 얘기해서 우리는 깜짝 놀랐다. 아이가 우리와 책의 그림을 번갈아 쳐다보며 수줍게 “바다 건너 저 쪽은 바다일거야, 가도가도 끝없는 바다일거야”라며 한 글자 한 글자 이야기하던 순간은 아마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여튼 <바다 건너 저 쪽>은 참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그림책이다.



PS 재밌게 읽은 고미 타로의 인터뷰. 사실 <그림책 작가의 작업실>이라는 책에서 고미 타로의 사진을 처음 보고 그가 남자라는 사실을 알았다! 어쩐지 여자일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자유분방이라는 말 조차도 그에겐 어떤 족쇄가 된다고 느낄만큼 굉장히 자유로운 사람이란 인상이다. 인터뷰를 보고 나면 <악어도 깜짝 치과의사도 깜짝>이나 <똑똑하게 사는 법>이 괜히 나온 게 아니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돌아온 탕아같은 느낌이기도 하고 아니 선생님 여기서 왜 이러세요 이런 느낌이기도 ㅎㅎㅎ

http://babytree.hani.co.kr/31744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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