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멍멍아>와 <베이비 시터 클럽> 이야기
요즘 넷플릭스 키즈 오리지널 프로그램의 업데이트가 굉장히 활발하다. 특히나 만 0세부터 만 5세까지 취학전 아이들이 볼 만한 생활만화 스타일의 뉴 프로그램들이 눈에 띈다. <라마 라마>, <행복한 퍼핀 가족>, <개비의 매직 하우스>처럼 말이다. 사실 우리집 여섯살 바당이는 새로운 콘텐츠들에 쉬이 마음을 내주는 편이 아니다. (매일매일 옥토넛을 몇 년을 봤는지 아실 분들은 아시는 이야기이니 생략한다 흑흑) 여튼 내가 눈여겨보던 몇 가지 작품들을 골라놓고 운을 띄워보고 권해도 보지만 아이가 내켜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말하긴 좀 애매해진다. 그런데 오늘 소개할 <달려라 멍멍아>는 예고편 재생만으로 바당이의 눈에 들어 요즘 우리집 베스트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귀여운 상상력들이 곳곳에 포진해있는 애니메이션인데 내 마음에도 드는 포인트들이 꽤 있어서 나도 재미있게 지켜보는 중이다. 한편, 나는 요즘 <베이비 시터 클럽>에 빠져있다. 이 시리즈는 아마도 (파이퍼플라이 레인과 함께) 나의 2021 베스트 시리즈가 될 것 같고 마침 전체관람가 작품이기도 해서 함께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전체연령가. 각 에피소드당 10분 내외로 총 10개의 에피소드가 공개되어 있다. 미취학 어린이들이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달려라 멍멍아>는 [Go Dog Go!]라는 동명의 그림책이 원제라고 한다. 마음에 드는 프로그램이 생기면 책도, 장난감도 궁금한 바당이가 물어봐서 검색해봤는데 Ph.D Eastman이라는 작가가 1960년대 출간한 그림책이 나왔다. 아주 유명한 캐릭터는 아닌 것 같지만 나름대로 멍멍이 그림책에선 클래식으로 통하는 듯. 여튼 애니메이션 <달려라 멍멍아>는 넷플릭스와 드림웍스가 공동제작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키즈 프로그램들 중에 이런 프로그램들이 꽤 눈에 띈다. <스피릿>이나 <트롤>처럼 말이다. 곧 한국에도 론치할 디즈니 플러스에 대항하는 나름대로의 전략인가 싶기도 하다.)
<달려라 멍멍아>는 멍멍이들의 도시 포스톤에 사는 태그(스쿠터를 운전하고 있는 멍멍이)와 포스톤으로 새로 이사와 태그의 단짝이 된 스쿠치(풀네임은 스쿠치쿠치)의 이야기다. 포스톤이라니! PAWSTON! 도시 이름부터 너무 귀엽다. 모든 것이 실제 도시와 꽤 익숙한 환경이다. 이를테면 포스톤 매드삭스라는 야구팀이 있다든지 말이다.
취학 전 아이들이 보는 대부분의 만화처럼 <달려라 멍멍아>도 두 주인공 친구의 소소한 일상과 모험을 다루고 있다. 무해한 성장담이랄까. 태그와 스쿠치는 선량한 아이들이고 태그와 스쿠치와 같은 동네에 살며 말썽을 담당하고 있는 빈스와 프랭크 마저도 굉장히 허술하고 악의랄까 정말 나쁜 행동을 하지 않는다. 특히나 프랭크는 정말 말썽을 부리기엔 너무 허술해서 쟤가 정말 어떤 문제를 일으킬 수 있을까? 의심이 들 정도로 어이없고 귀엽다. 그런데 바당이는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혼자 막 깔깔대며 좋아한다. 이전에 소개했던 <내 친구 청소차>와 프로그램의 톤이나 바당이의 반응이 꽤 비슷한 편인데 뭐가 그리 재밌냐고 물어봤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 (1) 태그랑 스쿠치가 타고 다니는 저 스쿠터가 마음에 듬 (2) 프랭크가 너무 웃김 (3) 바커펠라스(포스톤 시티의 자랑인 아카펠라 그룹으로 모든 대화를 아카펠라화한다)가 노래로 말하는 게 또 너무 웃김.
꽤 평범해 보이는 이 프로그램이 내 마음에도 든 건 자잘한 설정이나 두 주인공 캐릭터의 관계성 때문이다. 우선 태그와 스쿠치는 단짝이지만 주로 태그가 리드하는 편이다. 태그는 모험을 좋아하고 그런 만큼 행동력도 좋은 편이고 다양한 분야에 실력도 출중하다. 특히 만들기와 자동차 등에 관심을 보이는 발명가 타입이다. 자동차쇼에 참가하기 위해 만든 바커버그 자동차는 자율주행 모드를 비롯해 키높이 기능부터 운전자인 강아지에 최적화된 '뼈다귀 비스켓 간식 전용 드로어'와 '달릴 때 펄럭이는 귀를 잡아주는 전용 집게'처럼 깨알같은 기능까지 포함되어 있다. 말하자면 태그는 늘 훌륭한 아이디어를 내고 둘의 일상과 모험을 이끄는 멍멍이다. 스쿠치는 정말 좋은 친구다. 다정하게도 스쿠치의 아이디어를 잘 들어주고 거기에 함께 살을 붙여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아주 익숙한 캐릭터들의 조합이다. 그러니까, 태그가 남자고 스쿠치가 여자였다면 말이다.
하지만 태그가 여자 멍멍이고 스쿠치가 남자 멍멍이다! 짜잔! 그런데 사실 내가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태그가 언니나 오빠를 부를 때가 아니라면 이 점을 알 수조차 없다는 점이다. 태그는 그냥 태그고, 스쿠치는 그냥 스쿠치고, 둘은 그냥 사이좋은 친구다. 둘의 외양을 묘사하는 방식도 고정관념이나 편견과는 거리가 멀다. 둘의 몸집이나 색상을 결정하는데 꽤 신중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여자 멍멍이들의 속눈썹이 강조된 점은 조금 아쉽긴 하지만.)
태그와 스쿠치의 엄마를 묘사하는 방식도 마음에 든다. 원작을 보지 못해 이런 설정까지 책에 포함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넷플릭스의 <달려라 멍멍아>에서 태그 엄마는 비행선 조종사이고 스푸치의 엄마는 경찰관이다. 둘은 엄마를 집에서도 만나지만 도시에서 다양한 모험을 하다가 맞닥뜨리기도 하고 도움을 받기도 한다. 아이들이 보는 프로그램에서 자연스럽게 일하는 엄마를 보여주고 직업도 성별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운 부분이 마음에 든다. 아이들이 대표적으로 아저씨를 붙이는 직업군인 것도 말이다. "여자 경찰관도 있어!"라고 말하는 것보다 새로운 그림을 한 번 보여주는 게 나을 때가 있다. "바당아, 생각해봐. 스쿠치네 엄마 경찰관이잖아!"처럼 말이다. 사소한 설정들이지만 이게 바로 내가 아이에게 넷플릭스 오리지널 키즈 프로그램들을 보여주는 이유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에피소드는 "하루종일 잠잠히 잠만 자는 날!"이다. 세상에, 그러니까 포스톤에는 그런 날이 있다. 남은 날들을 잘 보내기 위해 오늘 하루는 그냥 잠만 자는 날. 물론 소소한 좌충우돌이 벌어지긴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태그와 스푸치까지도 곤히 잠들게 되는데 정말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날이다.
(전체연령가. 각 에피소드당 30분 내외로 총 10개의 에피소드가 공개되어 있다. 프리틴부터 로우틴 어린이들까지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하이틴도! 어른도!!)
일단 고백하고 시작해야겠다. 세상에, 나는 이 시리즈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베이비 시터 클럽> 역시 동명의 책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이 시리즈가 미국에서 굉장한 인기였고 특히 당시 소녀들에게 굉장한 열풍이었다는데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번역이 안 됐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 시리즈의 제목도 처음 들어봤다. 넷플릭스 스토리텔러 시리즈 브런치에 쓸 프로그램을 찾다가 어쩐지 <베스트 탐정단>과 비슷한 느낌의 썸네일이라 보기 시작했는데 첫 화를 보자마자 반해버렸고 나는 2월의 절반 가까이를 이 시리즈와 함께 보냈다. 보고 또 봤다. 아무래도 (파이어플라이 레인과 함께) 2021 나의 베스트 시리즈가 될 것 같다.
간단한 이야기다. 엄마가 매일 아이를 돌봐줄 베이비 시터를 구하느라 쩔쩔매는 걸 본 크리스티는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한다. 바로 베이비시터 클럽! 절친인 메리 앤과 함께할 멤버들을 구하고 플라이어를 만들어 동네에 돌리고 본격적으로 클럽 활동을 시작한다.
소녀들이 모여 클럽을 만들고 우당탕탕 온갖 일을 겪으며 함께 시간을 보내고 우정을 쌓는 이야기라니.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게다가 <베이비 시터 클럽>은 원작의 레거시를 그대로 가져오되 21세기의 무드를 제대로 장착했다. 첫 에피소드의 첫 장면은 거의 선전포고로 느껴질 정도다. 수업시간에 All men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옛 학자가 천재라며 칭송하던 선생님에게 "근데 왜 All people이라고 하지 않았대요?"라고 질문했다가 수업에 방해가 된다며 예의에 대한 에세이를 써오라는 말을 들은 크리스티는 투덜댄다. 남자애들은? 서로 속옷 속에 뭐가 들었나 낄낄대는 남자애들은 그런 얘긴 안듣잖아!!!라고. 엄마가 베이비시터를 찾아 헤매다가 크리스티를 포함한 아이들에게 먼저 물어볼 때도 마찬가지다. 크리스티의 오빠들은 듣는 둥 마는 둥 비디오게임에 몰두하지만 크리스티만이 메리앤과의 약속을 취소할 수 없다고 미안하다고 얘기하자 크리스티의 엄마는 그렇게 얘기한다. "크리스티, 그럴 필요 없단다. 네 스케줄을 취소할 필요없어. 네 오빠들 좀 보렴!!! 쟤네들은 그런 생각 1도 안하잖니!!!"
크리스티, 메리앤, 스테이시, 그리고 후반에 합류하는 돈까지 모두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이지만 <베이비 시터 클럽>과 사랑에 빠지게 된 건 역시 클로디아 때문이다. 카라와 소매에 하얀색으로 포인트를 준 클래시한 블랙 원피스를 입고 진주 귀걸이를 하곤 "오늘은 엄청 스마트해보이고 세련되게 차려입었다, 바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스타일! 슈퍼 큐트!!!"하는 클로디아 말이다. 클로디아는 그야말로 one of a kind다. 약간 괴짜같기도 하고 독특하기도 하면서 시대를 앞서가는 캐릭터랄까. 예술적이고 독보적인 취향을 자랑하는 힙스터다.
클로디아와 사랑에 빠진 건 나뿐만이 아니었나보다. 책만 나왔던 시대에도 이미 많은 이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고. 클로디아는 일본계 미국인 캐릭터인데 1980-90년대만 해도 Asian girl은 아예 미디어에서, 유행 시리즈에서 다뤄지지조차 않는 캐릭터였고 등장한다해도 굉장히 보조적인 캐릭터일 뿐이거나 미국 사회에서 통용되던 동양 소녀에 대한 고정관념을 재생산시킬 뿐이었기 때문에 이 쿨하고 멋지고 편견을 깨는 캐릭터인 클로디아는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클로디아는 당시 미국에 있던 다양한 아시안계 혼혈 소녀들에게 특히 엄청난 열광과 지지를 이끌어냈고 여전히 가장 멋진 캐릭터로 기억된다.
https://www.netflix.com/title/81284581?s=i&trkid=13747225
클로디아 키시에 대해서는 넷플릭스에서 17분짜리 짧은 다큐를 만들기도 했다. <클로디아 키시 클럽>. 어린시절 베이비 시터 클럽을 읽으며 클로디아 키시와 사랑에 빠졌던 다양한 인물들의 인터뷰로 이루어져있는데 미디어에서의 소수자 재현 문제가 왜 중요한지를 잘 짚어주고 있다. 지금은 창작자로 일하고 있는 여성이 "그런거죠, 만약 내가 해리포터에서 하나를 맡아야 한다면 나는 초 챙인거지."라는 말이 정말 와닿았다. 클로디아는 바로 그런 분위기의 정반대에 있는 캐릭터였고 그런 식으로 이전에는 내가 이 세계에 속하지 못한다는 잠재의식을 심어주던 캐릭터들과는 완전히 다른 캐릭터였던 셈이다.
소녀들의 성장담은 봐도봐도 늘 새롭고 반짝이고 뭉클하다. 각자의 비밀과 두려움을 간직 한 채로, 따로 또 함께 성장해나가는 여자 어린이들의 이야기는 이제 다 큰 여자 어른인 내게도 여전히 필요한 이야기이고 <베이비 시터 클럽>이 바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쩌면 나는 여자 친구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어린 시절보다 더 서툴거나 미숙한 것은 아닌지. 진심을 표현하고 관계를 돌보는 건 오히려 그 시절의 내가 더 용감했던 것은 아닌지. 나아가는 것 뿐만이 아니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근사한 일인지. 사실은 이 시리즈의 매 에피소드를 보며 훌쩍이곤 했다.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 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