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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호 May 20. 2019

통합적 인격형성을 위한 인격구조의 상관관계

융의 개념을 중심으로

1. 들어가는 말


    최근 TV에서 방영되는 예능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대부분 관찰 예능이다. 한동안 맛집 탐방이나 먹방 프로그램이 대세를 이루었는데, 요즘은 특정인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여행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대부분이다. ‘트레블러’라는 예능을 보고 있으면 금방 그 속에 등장하는 연예인들에게 몰입하여 이번 여름에는 어떤 여행을 경험할지 고민에 빠지곤 한다. 누군가의 일상과 여행을 들여다보는 것은 날마다 그 사람이 마주하는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변화에 공감하기 위한 이 시대의 본능이며, 다양한 자기실현의 길을 탐구하고 고민하는 시대적 욕구이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SNS와 미디어를 통해서 일상을 벗어난 다양한 사람의 경험을 모방하기 원한다.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걷기 원하고, 백패킹을 꿈꾸기도 한다. 일상으로부터 떠나기를 욕망하는 시대적 욕구는 환경에 함몰되어 있는 진정한 자아를 찾고자하는 표출일 것이다.

    인간의 인격이 가지고 있는 궁극적 목표는 온전한 ‘자기실현’이다. 인격은 늘 자기를 찾아가는 도상에 있고, 자기에게 질문하며, 번데기가 허물을 벗듯이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며 발달한다. 우리는 더욱 고유한 자기를 발견하기 원하고, 독특성을 부여해주는 사건을 경험하기 원한다. 그래서 인간의 과도한 욕구는 때때로 자기의 존재를 특정 대상으로 섣부르게 환원하는가 하면, 인격이 가지고 있는 복잡한 구조를 ‘뇌’나 ‘리비도’로 환원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인격이라는 것은 매우 다양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동시에 통일성을 유지하는 통합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지금부터 우리는 인격의 구조와 각 구조간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살펴보고자한다. 첫째로 인격의 가장 기본적인 구조인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를 통해서 ‘개인’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살펴볼 것이고 둘째로 개인무의식과 집단무의식의 상관관계를 통해서 무의식에 존재하는 ‘콤플렉스’가 인격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융의 독창적인 개념인 집단무의식의 구조를 통해 인격구조가 어떻게 통일성을 이루어 가는지 확인해볼 것이다.


2. 의식과 개인무의식의 상관관계


    인간의 인격은 다양한 요소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요소는 통일성을 이루어 전체적인 인격이 된다. 융은 전체로서의 인격을 ‘정신’이라고 부른다. 고대에서는 ‘영’이나 ‘혼’을 의미했지만, 현대에서는 ‘마음’을 의미한다. 정신은 인간의 의식적, 무의식적인 모든 사고와 느낌, 행동의 전체적 개념이다. 정신은 전인적이다. 정신은 그가 속한 환경에 대해 자신을 조절하고 적응하도록 지침역할을 한다. 정신은 구성요소의 일부분이 갈등을 일으켜 조화와 일관성을 무너뜨리지 못하도록 상호작용하고 통일성을 유지한다. 인간의 정신은 크게 의식과 무의식으로 나눌 수 있고, 무의식은 개인무의식과 집단무의식으로 구분한다.

    의식은 개인이 지각할 수 있는 정신의 부분이다. 의식은 정신의 네 가지 기능인 사고, 감정, 감각, 직관을 통해 성장한다. 네 가지 기능의 무게중심은 사람마다 다르며, 이를 통해 인격의 차이도 발생한다. 네 가지 정신의 기능 외에도 ‘내향성’과 ‘외향성’이라는 의식의 방향이 인격의 특징을 형성한다. 내향성은 의식이 개인의 내면과 주관의 세계로 향하고, 외향성은 외부와 객관적 세계로 향한다. 의식은 기능과 방향을 통해 개별화되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를 ‘개성화’라고 한다. 개성화는 전체로서 한 인격, 즉 ‘개인’이 되는 과정이다. 이 개성화의 목표는 ‘자기-의식’에 대해 완벽하게 아는 것이다. 현대적인 용어로는 ‘의식을 확대하는 것’을 말한다.

    의식이 개성화과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자아’라는 요소가 발생한다. 자아는 지각, 기억, 생각, 감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아는 의식에 대한 수문장으로 역할을 한다. 즉, 경험 중에서 의식의 수준까지 도달할 수 있는 것을 거르는 작업을 한다. 모든 경험이 의식의 수준에 축적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의식은 유지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자아는 네 가지 정신의 기능 중 우세한 요소나, 경험의 강도, 불안의 정도 등에 따라 경험을 분류하고 취사선택 한다. 이를 통해 자아는 동일성과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다. 허용된 경험은 의식을 형성하고, 허용되지 못한 경험은 개인의 무의식이라는 곳에 저장된다.

    개인의 무의식은 의식의 개성화에 받아들여지지 못한 모든 경험들을 받아들이는 저장소다. 다양한 이유로 억압되거나 방치된 기억들, 경험 당시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모두 무의식에 저장된다. 그래서 의식의 필요에 따라 무의식의 내용이 의식화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많은 친구의 이름을 알고 있지만 항상 의식에 남겨두지 않는다. 하지만 필요할 경우 이름을 언제든지 생각해낼 수 있다. 개인의 무의식은 의식이 수용하지 못하는 자료들을 비축해두는 기억 은행과 같다.   

    정신은 의식과 무의식을 모두 포함한다. 특별히, 인격은 개인으로 존재하기 위해 ‘자아’를 중심으로 의식과 무의식을 모두 사용한다. 늘 동일한 ‘개인’으로 살기 위해서 자아는 의식에 필요한 자료와 불필요한 자료를 구분하고, 개인의 특징에 따라 경험요소를 수용한다. 인격은 자아를 중심으로 의식과 개인 무의식의 상호작용이 일어나야만 시간의 연속성 속에서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 만약 자아의 분류가 없다면, 인격은 방대한 자료에 의해 병리적인 형태를 보여주게 될 것이다.


3. 개인 무의식과 집단 무의식의 상관관계


    인격은 ‘개인’으로 남기 위해 지난날의 ‘자기’와 연속성을 유지시켜주는 경험을 의식화한다. 반면, 무의식에는 수용되지 못한 다양한 경험, 기억들이 축적되어 있고, 그 기억들 중 공통점을 지닌 것들은 모여서 집단을 형성하기도 한다. 우리는 그것을 ‘콤플렉스’라고 부른다. 콤플렉스의 집단에 형성된 개념들은 인지부분에서 더딘 반응을 보여주었다. 콤플렉스 집단의 경험들은 결과적으로 의식에서 수용이 거부되었지만, 무의식의 영역에서 많은 경험들이 집단을 형성하면 매우 강한 힘을 보인다. 콤플렉스는 무엇인가에 사로잡혀서 빠져있는 상태이며, 행동과 생각을 지배하는 힘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예로 ‘어머니 콤플렉스’가 있다. 그는 어머니의 말과 행동에 예민하며, 어머니 상이 항상 지배하고 있어서 영화나 드라마를 보거나, 작품을 선택할 때도 어머니의 성품이 영향을 미친다. 뿐만 아니라 연애나 결혼을 할 때도 연상을 좋아하고, 결혼 후에도 어머니의 치마폭을 떠나지 못한다. 분석치료는 이러한 콤플렉스에 지배당한 사람을 해방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콤플렉스는 종종 뛰어난 업적을 쌓는 데 원천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반 고흐는 창작을 위해 무언가에 사로잡혀있는 사람이었고, 그는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까지 작품을 창작하는 ‘콤플렉스’로 인해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프로이트는 콤플렉스를 아동기에 받은 정신적 충격에 의해 생성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융은 콤플렉스 생성에 경험보다 앞서는 깊은 차원의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바로 융의 업적인 ‘집단 무의식’이었다. 프로이트는 환경결정론을 주장했지만 융은 정신도 진화와 유전을 통해 청사진이 만들어진다고 주장했다. 집단무의식은 ‘원시적 이미지’라는 최초의 무의식 상태가 인류의 경험을 통해 후손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유전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 유전된 이미지는 ‘잠재적 가능성’으로 집단무의식에 내재되어 있다.

    집단무의식의 기원으로는 두 가지 의견이 있다. 하나는 획득형질이론이고, 다른 하나는 형질의 변화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다. 전자는 학습이 유전된다는 이론이고, 후자는 학습에 의해 진화된 형질이 유전된다는 이론이다. 융은 전자의 의견을 인용했지만, 후자를 통해서도 집단무의식을 설명할 수 있다. 진화된 형질은 돌연변이를 만들고, 이는 인간의 생존 기회를 증가시켰다. 집단 무의식의 진화는 신체적 진화와 동일한 방법으로 설명이 된다. 집단 무의식은 시대를 거듭할수록 인생의 전형적인 장면 수만큼 ‘잠재적 이미지’를 형성하게 된다. 우리는 이 잠재적 이미지를 ‘원형’이라고 부른다. 원형의 내용은 경험의 수만큼 무궁무진하다. 원형은 ‘경험한적 없지만, 내재된 경험’이다. 이는 환경의 자극을 받으므로 무의식의 영역에서 의식의 영역으로 표출되며, 의식의 개성화에 영향을 준다.

    앞서 논한 콤플렉스의 핵심적인 기원은 집단 무의식을 통해 유전되는 ‘원형’이다. 프로이트의 주장처럼 아동기에 경험하는 충격에서 발생하기보다, 원형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원형은 자석처럼 그것과 관련된 경험들을 모으고 콤플렉스를 형성한다. 집단 무의식의 원형이 있기에 개인 무의식에서 콤플렉스가 생성된다. 콤플렉스가 강해져서 힘을 발휘하게 될 때, 만약 의식을 넘어서 전인격을 점령하게 된다면 그것은 정신병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신(神) 원형’이 경험의 축적에 의해 ‘신 콤플렉스’가 되었을 경우 전인격을 지배한다면, 매사에 정죄하고 판단하고 심판하는 광신도나 정신병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전인격이 아닌, 일부로서 그 기능을 한다면 인류를 위해 큰일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4. 집단무의식 원형들의 상관관계


    집단무의식은 다양한 경험의 수만큼 다양한 원형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이미지들은 무의식에 흩어져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재된 구조 속에서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있다. 내재된 구조는 크게 4가지 정도로 구분해볼 수 있다. 첫째로 ‘페르소나’가 있다. 페르소나는 ‘가면’을 뜻하는 말이다. 개인은 페르소나에 의해 대중에게 좋은 인상을 보여주기 위해 가면을 쓴다. 페르소나는 ‘순응’의 원형이라고 부를 수 있다. 사회에 순응하며 생존을 위해 인간은 누구나 페르소나를 가진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은 사회적 자아와 개인적 자아가 다른 이중생활을 살아간다. 이런 페르소나를 위선적이라고 부정적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생존과 관계의 기쁨을 위해서 자연스럽게 ‘가면’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페르소나는 관계를 위한 배려가 되기도 한다. 인격의 형성에 있어서 페르소나는 매우 유용하다. 그러나 하나의 페르소나가 인격과 동일화를 시작하면 다양한 갈등과 긴장을 유발하며 자아에 위험한 영향을 가져온다. 이를 융은 ‘팽창’이라고 표현한다. 페르소나의 팽창은 자기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페르소나를 강요하는데 대부분 자녀에게 집착하는 부모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특정 직업이나, 역할에 집착한 나머지 자녀에게도 그 직업군이나 역할을 강요하는 것이다. 융에게 찾아온 환자는 대부분 페르소나 팽창의 피해자들이었다. 페르소나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인간의 집단무의식에 존재하는 하나의 사실이며 적절한 형태로 표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로 ‘아니마와 아니무스’이다. 융은 페르소나는 정신의 외면이라고 불렀다. 원형이 발현되었을 때 세상을 향한 얼굴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정신의 내면이다.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남성과 여성이 각각 이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상이다. 아니마 원형은 남성 내면에 여성화된 이미지, 아니무스 원형은 여성 내면에 남성화된 이미지를 뜻한다. 이는 각각 경험세계에서 이성과 접촉하면서 발달된다. 이는 각각 부모에게 투사되어서 가장 먼저 발달하게 되며 이성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기준이 된다. 만약 이성과의 접촉으로 조화롭게 발달되지 못하면, 이성에 대한 원형은 무의식에만 머물게 되며, 원시적 상태로 머물게 된다. 그리고 페르소나의 지배에 의해 이성에 대한 원형이 미발달되면 남성과 여성은 각각 문화적 역할에만 순응하게 된다. 이런 불균형이 과도해지면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반란을 일으키는데, 그 현상으로 여장남성이나 동성연애자, 성전환자들이 발생한다.

    셋째로 ‘그림자’이다. 그림자는 무의식에서 가장 동물적인 본성이며, 가장 위험할 수 있다. 아니마와 아니무스가 이성에 대한 원형이라면, 그림자는 동성에 관한 원형이다. 그림자는 잘 길들일 필요가 있다. 페르소나가 그림자를 과도하게 억압하면 문명인으로 살아갈 수 있으나, 무기력한 자아가 생겨날 것이다. 하지만 페르소나와 그림자가 잘 조화를 이룬다면, 독창적이고 창조적인 자아가 활기 넘치게 생겨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림자는 중요하고 가치 있는 원형이다. 그림자는 아무리 억압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의식이 약해질 때 그림자는 언제든지 발현한다. 그렇기에 그림자를 지나치게 억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금욕을 외쳤던 기독교는 가장 그림자를 억압했던 공동체인 동시에, 전쟁의 광기를 가장 많이 경험했던 공동체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그림자의 원형은 잘 길들여져서 페르소나와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그림자는 인간의 생명력, 창조력, 영감과 활기 등을 책임지고 있다. 이를 거부하면 지나치게 평범해지거나 야수적으로 발현할 위험이 있다.

    마지막으로 ‘자기’이다. 자기는 정신의 전인격을 형성하는 중심 원형이다. 자기는 질서, 조직, 통일의 원형이다. 자기는 다양한 무의식의 원형과 콤플렉스 및 의식을 통일하고 ‘하나 됨’과 불변성의 감각을 준다. 모든 인격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기다움’과 ‘자기실현’이다. 이 목표는 매우 어려운 과제이나 그렇다고 사라져야하는 목표는 아니다. 점진적으로 자기실현을 한다는 것은 자기의 원형을 의식적으로 살피는 것으로 가능하다. 무의식에 내재된 원형은 어떤 경험을 만나느냐에 따라 다양한 의식으로 발현되고, 이를 통해 개성화가 이루어진다. 자기는 이 모든 것들을 조화롭게 이루어가는 중심원형이다. 의식은 내재된 원형이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확인하면서 자기실현을 이루어간다. 즉 자기실현은 무의식의 영역을 의식화하는 작업이다. 그래서 개인은 종교나 명상을 통해 자기를 인식하고 자기발달을 이루어간다. 무의식의 원형이 어떻게 투사되는지 살피고 이를 통해 자기를 점점 더 알아간다.    


5. 나가는 말


    지금까지 우리는 인격이 가지는 전체성과 구조적 통일성을 이해하기 위해 인격의 구조를 살펴보았다. 우선 각각의 구조를 구분하여 개념을 정리했고, 구조적 요소들이 전인적 인격을 구성하기 위해서 어떤 상관관계에 있는지 살펴보았다. 먼저, 정신의 가장 기본적인 틀에서 ‘의식’과 ‘개인무의식’을 구분해서 살펴보았고, 자아를 중심으로 둘의 상관관계를 알아보았다. 자아는 인격을 유지하기 위해 의식에 수용하는 경험 자료와 무의식에 저장하는 경험 자료를 분류하는 역할을 한다. 다음으로 개인무의식과 집단무의식의 상관관계 대해서 살펴보았다. 특별히 ‘콤플렉스’를 중심으로 둘의 상관관계를 알아보았다. 콤플렉스는 개인무의식에서 특정 원형을 중심으로 경험 자료가 집단을 형성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원형은 집단무의식에 의해 제공되는 것을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집단무의식에 내재하고 있는 다양한 구조들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융의 정신분석학에서 가장 근본적인 토대는 집단무의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단무의식이 가진 구조들이 경험세계에서 어떻게 발현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의식과 무의식이 나누어지므로 네 가지 원형의 구조를 살펴보고 상관관계에 대해서 언급해보았다.

    결과적으로 인격이 가지는 통합적 구조는 ‘자기실현’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향해 발달한다.  자기실현은 다양한 경험을 통한 원형의 실현, 그리고 그런 자기의 모습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반성을 통해 이루어진다. 우리는 본 글의 내용으로 오늘날 자기실현을 추구하는 모습을 비판적으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시대의 흐름 속에서 자기실현의 욕망은 더욱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고, 소비의 흐름과 패턴도 자기실현이라는 궁극적 목표 속에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SNS와 미디어를 통해 소비되는 삶의 패턴은 특수성과 고유성이라는 가면을 쓴 채로 오히려 동일성의 원리를 강조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래서 때로는 진정한 자기를 찾다가, 시대적 이미지에 함몰되지는 않을까? 무엇보다 소비사회에서 소비가 주체를 규정하는 우려를 범할 경우가 더욱 허다할 것이다. 우리는 자기실현의 방법과 원리에 대해서 상기해야한다. 자기실현은 무의식에 잠재된 이미지를 반성과 성찰을 통해 의식화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실현의 과정이 소비에 함몰되지 않고 건강하게 자기를 성찰하는 방법을 더욱 고민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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