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엘리어트 다시 보기 (2022 from 2000)
중학교 때, '은따'를 당하던 학교에서 벗어나 '나'로서 살고 싶어 떠난 영어 캠프에서 자막 없이 봤던 첫 영화. <빌리 엘리어트(Billy Elliot, 2000)>
1. 1020대 땐 빌리의 도발이, 30대엔 지하로 내려가는 엘레베이터 속 아버지와 형이 보이더라
그땐 어린 빌리가 나 같았다. 무용이란 것도 처음이었고, 이 이후로 집에서 틈만 나면 탭댄스 슈즈화도 아닌 구두를 신고 '타닥-타닥' 소리를 내면서 빌리 음악을 틀어 놓고 어머니 가게에서 춤을 췄다. 머릿속으로는 '나는 돈이 없으니까... 이렇게까지 배울 수 없겠지...' 생각했다. 운명일까. 결국 무용을 시작하긴 했다. 늦게. 시작하고 나서는 '차라리 그 시절에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일찍 시작했더라면 좋았을까?' 싶은 후회가 밀려왔었다. 내 인생에서 부모님은 미미한 존재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내 먹고 살 거리, 부모님의 부양 나이가 되고 나서. '내 인생에 책임질 나이'라는 게 되고 나서야 알게 됐다.
'빌리'가 되기 위해선 '부모' 곧 '지원' 필요했다. 내가 곧 그 나이에 들어서고 나서야 빌리의 아버지와 형이 자신의 일자리를 포기할 각오로 파업을 하고 나서 다시 철창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에 빼곡하게 들어서는 '협상 안 된 노동자'가 된다는 책임감을 알게 됐다. 내 가치관이 엘리베이터 이중문처럼 닫히며 지하로 내려갈 때 빌리의 아버지와 형은 어떤 마음을 먹었을까.
2. 나는 빌리가 될 줄 알았다.
빌리는 해피엔딩이다. 빌리는 경험해본 적 없는 '로얄(Royal)' 이란 말이 잘 어울리는 곳에서도 기죽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했다. 그게 설령 잘못된 방법이었을 때도. 면접관이 "춤을 출 때 어떤 기분이 드니?"라고 했을 때. 외우지도 않고 자기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말을 했다. 그리고 빌리의 가족들은 빌리의 합격 통지서를 미리 받았어도 뜯지도 않고 빌리가 열길 기도하며 빌리의 형은 빌리가 학교로 떠날 때, 처음으로 마음을 보이며 버스 창가에 소리치며 "보고 싶을 거야!"라고 외치고, 빌리를 배웅했다.
그리고 그렇게 빌리는 '빌리'가 되었다. 주연으로. 모두가 기대하고, 커튼 뒤에서 빌리의 도약을 쳐다보는 무용수로 성장했다.
나는 그렇게 간절하고, 용기가 있고, 외우지 않고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마음을 표현하면…. 간절한 마음이 닿는 다면 내 주위가 날 도와줄 줄 알았다. 아니. 그 과정이 생략된 세상에서 나는 '빌리'가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기왕이면 절실하지 않아도 쉽게 얻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기왕이면 그게 편하다는 것도 알았다. 어떤 자서전처럼 용기가 대단치 않더라도, 마음속에 대단치 않은 '조금의' 관심만 있더라면, 환경이 조금 뒷받침된다면 누구나 '빌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빌리 엘리어트>에선 빌리가 주연 무용수로 발탁되기 전까지의 빌리가 어떤 수업을 받고, 어떤 잠재력이 있었는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감안하고라도 지금은 깨닫는 것이다. 1020대 때 '빌리'가 될 줄 알았던 내가 엘레베이터를 잠그고, 가치관은 잠시 고집이라 생각하고 내려놓고 지하로 내려갈 준비를 해야 할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든 노력과 간절한 점들이 이어지면 별자리처럼 이어질 줄 알았는데, 때론 그 점들은 그냥 점들로 내 안에서만 존재하며 세상은 그 별자리를 보기에도 벅차다는 걸 알게 됐다. 세상이 버거워서 뭐라도 해야 할 때. 나는 엘리베이터 문을 마주하는 아버지가 된다.
ⓒ 본 블로그에 기재되는 모든 글과 사진 및 영상은 저작권 보호를 받고 있으므로 무단 전재와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본 글에 첨부된 사진과 인용된 대사/글, 사진 및 영상의 저작권은 원저작자에게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