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나를 향해 달려올 원더보이, 정훈을 기다리며
"수고하셨지만, 나하고는 하나도 안 닮은 사람이네요. 나는 저렇게 웃는 법을 모르거든요. 난 잘 우는 사람이지, 웃는 사람이 아니에요."
- 김연수 <원더보이> 중에서
누군갈 사랑하게 된단 건, 이 작은 확률을 모두 뛰어넘어.
작은 먼지와도 같았던 너와 내가 '우리'가 되는 일.
너와 내가 하나의 별이 되어 만나는 일.
외롭지 않은 별빛
- 뮤지컬 <원더보이> 넘버 중에서
하루하루 목 끝까지 차오른 긴장을 한숨으로 내쉬면 별들이 달려온다. 내 생애 '기댄다'는 행위를 알려준, 첫 뮤지컬. 내 생애 가장 많은 슬픔을 기대고 위로받았던 뮤지컬.
처음이었다. 객석에서 날숨을 뱉었다. 울먹이며 숨을 들이쉬면, 숨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2022년 8월 25일 7시 30분부터, 매일 대사와 글귀를 입안에서 되새긴다.
- 뮤지컬 <원더보이> 정훈이 사고에서 깨어나서 방황하는 대사 중에서
풋내기 인턴사원은 정훈의 대사에 깊이 공감한다. 그의 인생은 매일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쓸모 많은 정훈과도 같았다. 인턴이 된지 얼마 안 된 그의 인생에서 그는 스스로 기적의 마스코트였다.
종로의 대형 커피숍, 종이 뭉치를 들고 계단을 한 걸음 오르던 풋내기 인턴은 발을 헛디딘다. "친절하게 응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란 말을 하고 난 뒤 3분 뒤에 일어난 일이었다. 직원들이 모여들어 괜찮냐며 넘어진 그를 일으킨다.
서른 중반의 그는 아직 삶이 살만하다고 느낀다. 그는 매일매일 살아 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는 감사하다며 툭툭 털고 기대에 차서 공연장으로 향한다. 그는자신에게 쏟아지던 스포트라이트 같던 빛을 다시 보고 싶다. 숨막히는 사무실로부터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공연장에서 희망을 기다리는 아이러니한 삶. 목구멍 가까이 차오르는 슬픔을 간신히 참는다.
3년 만에 변변한 직장을 얻은 것은 기적과도 같았다. 인턴의 저녁은 따뜻한 원목 테이블에 앉아 발코니를 바라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나를 괴롭히는 고리타분한 선입견들에 증명할 수 있을까. 내가 없어지면 당신들의 생각이 선입견이었다고 생각할까."
지금만큼의 최선의 타이밍도 없었다. 신문 헤드라인에 큰 회사명 하나 걸려서 그들이 짓누른 청년의 삶이 얼마나 순결했는지 보여주고 싶다.
발코니의 바람을 쐬다가 이중창의 창문을 하나씩 닫는다.극심한 취업난에 얻은 직장인이란 타이틀은 기적이었기에, 그는 더 잘하고 싶었다. ‘내일이면 달라지겠지… 달라지겠지..‘
증명하고 싶었다. 잘하고 싶었다. 그럴수록 그는 매일 오해를 샀다. 인턴은 할 수 없는 게 많았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걸 찾았다. 화장실에서 1분, 전화부스에서 1분씩 쪼개 잠을 잤다. 단출한 가족과의 대화는 없어졌다.
<원더보이>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꼭 그를 조각낸 것만 같다. 풋내기 인턴은 가끔 분신으로서 고통을 알리려는 강토(희선)이었으며, 자기 자신을 잊은 수형이기도 했다. 깜깜한 세상에 눈을 띄우기 위해 글을 쓰는 재진이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달려가는 정훈이기도 했다.
원더보이가 그에게 달려오기 전, 그에게 빛이 쏟아 지기 전에 그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는사무실 워크숍으로 처음 원더보이를 만났다. ‘이게 뭐지?‘ 무슨 이야기일지 감이 안오는 포스터에 뚱해한다. 그는 너무 피곤해서 잠에 취하기로 한다. 그의 노곤한 잠을 깨운 건 음악이었다. 현악기 소리에 홀려 인턴은 메모하기 시작한다. '여기도 증명해야 하는 삶이 가득하네'
2022년에 대의 같은 걸 가지고 산다 하면 얼마나 촌스러운가. 풋내기 인턴은 아직 90년대 사랑을 하듯 사랑에도 자격이 필요하다고 믿고 사는 사람이었다.
그는 <원더보이>를 보며 고독한 시간이 조금씩 풀리는 것을 느낀다. 요즘 시대에 사랑하기 위해서 자격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울려야 한다면 무릇 상대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며 외치는 캐릭터의 대사를 한 번 더 듣고 싶었다. '유명한 사람, 그럴듯한 사람.' 풋내기 인턴이 아장아장 걸을 때부터 두 발로 가까스로 어른의 몫을 해내면서도 매일 같이 다짐과도 생각했던 말이었다.
"희선아. 나는 나중에 꼭 신문에 실릴 만큼 유명한 사람이 될 거야. 너한테 어울리는 사람이 되려면 그 정도는 되어야 하니까."
- 뮤지컬 <원더보이> 중 수형이 희선에게 하던 고백 중에서
"그러자 이번에는 강토 형의 슬픔이 내게 전해졌다. 강토 형은 누구이며, 무엇을 원하며, 지금 그에게 없는 것은 무엇인지, 고스란히 전해졌다. 두 개의 슬픔이 합쳐졌으니, 고통받아야 마땅했지만 그 순간 나는 위로받았다."
- 김연수, <원더보이> 중에서
<원더보이>는 국가가 정훈에게 내린 일종의 슬로건이었다.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의 자동차가 무장 공비 간첩이 탄 차량을 우연히 들이받으면서 아버지는 별이 됐다. 국가는 그런 정훈의 아버지의 우연한 죽음을 뜻으로 높게 샀고, 혼수상태에 빠진 정훈이 일어나길 자신들의 소원 따위를 빗대며 정훈에게 '원더보이'란 소망이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정훈은 사고 이후에 죽은 사람들의 물건을 만지면 당시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보고 듣는 능력을 갖게 됐다.
<원더보이>는 정훈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우리들의 <원더보이>는 죽음과 납득, 존재의 이유, 증명에 계속해서 의문을 던지며 성장통을 겪는다. 그리고 마침내 사람이 어떻게 기댈 수 있는지 알려준다.
'다들 네 처지가 불쌍해서 운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게 아니야. 아마도 네가 기뻤다면 다들 기분이 좋다고 껑충껑충 뛰었을 거야. 그건 네게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느끼는 능력뿐만 아니라 남들에게 네 마음도 그대로 전해주는 능력, 그러니까 교감과 동조의 능력이 있기 때문이지. 나는 왜 네게 그런 능력이 생겼는지 알아. 사고가 일어났을 때, 너는 어떤 빛을 봤다고 했어. 맞지?'
- 김연수, <원더보이> 중에서 정훈의 능력 서술 부분
시대를 최대한 희석하고 낯선 것을 익숙하게 만든 장치들 - 동요(소리)
뮤지컬에선 넘버를 통해 캐릭터들의 소개와 심경을 말한다. 뮤지컬과 연극을 구분하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인, 음악. 다소 심각해보일 이야기의 뮤지컬 넘버에서 동요를 차용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테다.
낯선 선율들이 가득한 새로운 작품이 올라가는 극장에서 동요가 울려 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동요는 어린 시절부터 배워온 익숙한 소리다. <원더보이>의 동요는 낯선 것을 익숙하게 만들기 위해서 있다.
김연수 작가의 <원더보이>의 배경은 군사정권 배경이다. 이런 배경은 뮤지컬로 오면서 많이 희석되었다. 포스터 속 대관람차는 서울대공원에 가고 싶어 하는 정훈의 바람이다. 차가운 하늘색의 포스터는 정훈의 미소를 만나 따뜻한 하늘색이 된다.
뮤지컬 <원더보이> 속 ‘카메라’ '녹음기' '타자기'는 여타 다른 작품들에서 노스탤지어적인 이미지를 가진 것과 다르게, 암울한 시대적 배경이 되는 장치로도 쓰인다. 카메라엔 그 시절의 뉴스보도가, 녹음기엔 죽어가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타자기는 그들이 미처 담지 못한 유가족들의 사연을 담고 있다. 이 물건들은 마치 그리운 이들을 지긋이 바라보는 듯하다.
<재능개발연구소>는 마치 아이를 위한 기관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장 잔인한 고문이 일어난 장소다. 기사로 진실을 전하려는 전직 기자이자 출판사 사장인 재진을 다치게 하는 고문은 기이한 소리로 대신한다. 왜 그랬을까? 은유적으로. 뮤지컬 <원더보이>가 말하지 않고, 말하는 법이다.
뮤지컬 <원더보이>는 초능력보다 성장에 초점을 맞춰 전개한다. 뮤지컬 <원더보이>를 끌고 가는 동력은 '성장'에서 온다. 초능력은 정훈을 말해주는 역할 중 하나일 뿐이다. 뮤지컬 <원더보이>는 각 넘버 속 가사들과 대사들 곳곳에 '성장하지 못한 어린아이'를 말한다. 이는 마치 <어린 왕자>의 글귀를 떠올리게 한다.
뮤지컬 <원더보이>는 어른들을 일깨운다. 어린 아이보다 어른이 많은 소비자층의 전두엽을 건드리는 듯한 노랫말로 시작한다. 마치 자기 자신을 잊은 수형이 강토와 나눈 노랫말에 자기 자신을 찾는 것처럼. 동요를 곁들인 메들리는 어른들에게 잊고 산 어린아이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검은 상자를 뒤적이는 정훈이 과거의 모습을 발견하며 부른 노래는 공간을 넘어 관객들로 하여금 과거의 시간을 제시한 느낌마저 든다.
무대 초반에 혼수상태에 빠진 정훈의 침대를 여기저기 옮기면서 조명과 사각 프레임 두 개가 무대에 등장한다.
정훈의 능력이 밝혀지고, 권 대령이 건넨 검은 상자 속 물건들에 관한 기억을 말하며 수형은 존재를 들킨다. 수형은 프레임에 점점 갇히고 쪼그라든다. 그리고 두 개의 사각 프레임에는 두 개의 불빛이 들어온다.
사각 프레임은 마치 열린 문 형태로 표현된다. 신호등 같은 불빛. 왼쪽의 초록 프레임은 '진행형, 현재'다. 오른쪽의 붉은 불빛은 '멈춰진 과거, 오지 않은 불확실한 미래 그리고 완전히 죽지 못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영역과도 같다. 이 사각 프레임의 불빛들 사이로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증명으로 존재할 수 없는 영혼들만이 지나다니는 곳이다.
초록불과 빨간불을 자유롭게 통과하고 하나의 불빛에 오래 머무르는 사람은 사이코메트리 능력(죽은 사람의 물건을 만지면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정지된 순간을 살 수 있는 정훈이다. 오른쪽은 주로 정훈이 녹음을 듣고 기록하는 일을 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붉은빛이 위치한 공간에선 현실의 경계를 넘어간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붉은 조명이 비추는 공간은 정훈을 매개로 과거에 일어났던 기억들과 추억들이 펼쳐진다. 정훈이 타자기를 치면 수형이 노래한다.
자, 이 원주율을 그림으로 바꾸면…
이런 시가 될 거야.
되새 그림자, 흐리마리.
가려진 마당의 종려나무, 밤의 목소리에 드리워진 마음이여…
음- 음-
함께하자. 우리.
- 뮤지컬 <원더보이> 중
<답장은 지금 여기서 내게, 아니 내 입술에>
수형/김지철
정훈이 자기 이야길 할 때 초록 불은 켜진다. 무대에 희망과 소망과 같은 달콤하고 아릿한 상상들만 남으면 무대는 초록 불로 물든다.
극 후반, 초록 불이 암전 된 곳에선 하얀 옷과 청바지만 입은 정훈만 남는다.
조명으로 인해 그림자는 두 개가 된다. 보통의 그림자는 두 개로 존재할 수 없다. 두 개의 그림자를 지닌 캐릭터는 수형이다. 수많은 글자와 숫자로 그려낸 시를 읊을 수 있는 기억력의 천재,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바보가 되는 수형.
"나의 병이 되어 불쑥 치미는 눈물 같은 사람" - 보라색 그림자가 수형과 강토(희선)가 만났을 때. 둘을 향해 보라색 조명이 퍼지면 마치 현실과 과거에 걸쳐져 두 개의 그림자를 가진 수형의 그림자는 존재를 찾으면 무대 위에 수형에겐 하나의 그림자만 남는다.
앞서 수형을 가장 납작하고 수그리게 만든 영역을 만든 사각 프레임과 같은 조명처럼 뮤지컬 <원더보이>의 조명은 캐릭터들의 상징성을 더 강조시키고, 극 내내 정훈의 초능력의 원천이 되는 '빛'처럼 조명은 관객들에게 빛으로 말한다.
수형이 납작해졌던 것처럼, 순수한 정훈이 믿었던 엄마의 편지는 권 대령에 의해 불태워졌을 때, 조명은 불처럼 정훈을 화형 시키듯 정훈의 몸을 화형 시킨다. 정훈은 "권 대령이 엄마의 편지를 불태웠습니다."라고 계속해서 한 문장만 읊는다. 실언상태다. 그리고 정훈은 말한다.
"나는 두려웠고, 피곤했다. 그리고 그 누구의 생각도 읽히지 않았다.
나는 평범해졌다…."
- 엄마의 편지가 불태워진 후 정훈의 독백 중에서
이토록 충격과 슬픔에 피곤을 적절하게 표현했던 말이 있었을까. 뮤지컬 <원더보이>의 대사와 가사는 원작 소설의 가장 중심이 되는 이야기들로만 가득 차 있다. 정훈은 혼란스러운 와중에 강토와 재진의 갈등을 보고, 자신이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는다. 그리고 원했던 것을 또렷하게 초라해진 상태로 고백한다.
"형. 저 초능력이 사라졌어요. 형한테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이젠 이용당해 줄 능력도 없어요. (중략)
'되새 그림자, 흐리마리 가려진 마당의 종려나무… 밤의 목소리에 드리워진 마음이여' 이게 무슨 뜻인지 알고 싶었어요. 형이랑 더 가까워지고 싶었어요. 그러면 날 버리지 못할 테니까…. 그런데 이제 다 틀렸어요. 형도 저 버릴 거죠?…. 우리 그냥 남이잖아요…."
- 뮤지컬 <원더보이> 중 정훈이 강토에게 하는 고백 중에서
어느새 모두의 그림자가 제자리를 찾았을 때, 관객들은 극 후반부에 도착한다.
온 우주가 멈추고, 별들이 빛난다.
한 사람을 향해. 너를 향해.
"죽지 마!!!!"
분신을 준비하던 강토를 향해 달리는 정훈. 마치 정훈이 데리고 온 빛들처럼 원주율만큼 셀 수 없는 수만 개의 빛들이 관객을 향해 비춘다.
배우가 객석 속 관객들의 눈동자를 볼 수 있다면, 관객들의 눈빛은 정훈이 데리고 온 빛만큼 밝게 빛나고 있을까. 정훈이 자신에게 비추는 수만 개의 빛들에 뒤돌 때 정훈과 관객은 하나가 된다. 관객의 시간도 멈춘다. 멈춰 선 별들. 멈춰 선 눈빛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는 것은 그런 빛을 데리고 오는 것일까.
2022년 8월 25일 저녁 정훈의 죽지 말란 외침에 풋내기 인턴은 매일 저녁 베란다 문을 닫으며 올려다본 별빛을 떠올린다. 정훈이 온 우주를 멈춰서 데리고 온 별빛들이 너무 눈부셔서 끼잉끼잉하고 운다.
뮤지컬 <원더보이>는 농도 짙다. 대사와 넘버마다 간결하고 직관적이게 자기 자신을 고백하는 마음을 들으면서 나는 내가 잊고 산 감정들이 무엇인지 알았다. 온 우주가 멈춰야 했던 뮤지컬로 인해 나의 우주는 다시 작동하게 됐다.
"극 중 마지막에 나오는 '원더보이'는 우주의 모든 별들이 정훈의 질주를 응원해 주는 클라이맥스 음악이다. '불가능한 일요일에 우리 다시는'은 떠나간 이와 살아남은 이가 서로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고 또 듣고 싶을까 상상하며 만들었다. 수많은 일요일 속에는 아주 작은 존재인 우리의 소원이 이뤄지는 일요일도 분명 있을 것이라 믿는다.
대본이 완성된 후 선율을 만들어가는 것이 보편적인 뮤지컬 창작 과정이라면, <원더보이>는 반대로 접근했다. 최소한의 텍스트로 작품의 뼈대를 갖춘 후 음악에 작품의 정서를 실으면, 그 선율에 촘촘한 대사와 전개를 더해가는 것. '송 퍼스트(song-first)'는 작곡가 박윤솔에게도, 작품에게도 새로운 시도였다."
- 뮤지컬 <원더보이> 작곡가 박윤솔 님 인터뷰 중에서
"세상이 나아지는 것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사회 곳곳에 어떤 메시지가 필요하고 이야기가 필요한지도 중요하지만,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을 확인하고 그 사람들과 손을 맞잡고 함께 나아가는 것이다.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역사는 후퇴하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전해지길 바란다."
- 뮤지컬 <원더보이> 연출가 박준영 님 인터뷰 중에서
<불가능한 일요일에 우린 다시> 정훈/이휘종, 기식(정훈의 아버지) / 이승재
<우주의 모든 별들이 운행을 멈췄던 순간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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