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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일 테노레> Ⅰ

이토록, 찬란한! - 뮤지컬 <일 테노레> Act1

by 프리즘 리플렉팅
음악과 같이 청취하며 읽으시길 추천드립니다. 본 분석은 개인적 견해로 창작진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다시 돌아올 <일 테노레>를 위하여! Andiamo!



il tenore — Will Aronson (작곡가·극작가 Will Aronson 공식홈페이지 2024실황 ver.)

Prologue(극 시작 음악), Curtain Call(커튼콜), Exit Music(퇴장 음악)까지 있는 것이 특징


Stream Hue Park, 혹은 박천휴 (박천휴 극작가 SoundCloud)

- 뮤지컬 <일 테노레>의 낭독회 실황 녹음 버전(Workshop, December 2018)
- 윌(Will)이 올린 같은 넘버의 다른 캐스트로 들을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일 테노레>

- 1930년대 후반, 그리고 지금 경성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일 테노레>는 난세에 태어나는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건 우리의 이야기다. <일 테노레>는 묻는다. 당신이 꿈꿔온, 보고 싶은 세상은 어떤 모습이냐고.


지금도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체념을 강요받는다. 꿈을 선택하며 살아가기엔 현실은 모래알처럼 까끌거리고 팍팍하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해왔나.


ACT 1

불현듯 뭔가 반짝인다. 빗나간 꿈이다. 저기 저 피아노 한 대가 외로이 있다. 차가운 바람들에 나무들이 파르르 떤다. 오래된 서커스 유랑단의 광대를 부른다. 구슬픈 소리 위로 목소리가 들려온다.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의 얼굴들. 이젠 소식조차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모여 입을 모아 내 꿈을 노래한다. 그날부터였다. 이선의 악몽, 꿈의 시작, 우리의 이야기가 시작됐던 그날.


아리아를 듣던 밤


'오오오…. 나탈리아' <일 테노레>의 아리아를 처음 듣던 밤을 기억한다. 화상통화 너머로 어두운 밤에 빛나는 별처럼 빛나는 선율에 낮 동안 긴장됐던 마음이 힘없이 녹아내렸다. 친구에게 무슨 노래냐고 물었다. 당연히 오페라라고 생각했다. 그날 당장 보러 갔다. 그저 속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공연 보러가기 전 들른 돈의문박물관마을은 마치 <일 테노레>의 예고편 같았다. ⓒ 직접 촬영, BRUNCH <PRISM REFLECTING>


#Prologue (어둠 속 텅 빈 무대 / 이선과 진연의 아파트, 뉴욕)

♪ Prelude : 조선 최초 오페라클럽 테마

♪ Aria 1 : 꿈의 무게(The Weight of Dreams)


긴장감이 도는 공연장에 소리 하나가 반짝이며 막을 연다. 스트링 트레몰로 위로 피아노 솔로가 노스탤직하게 울려 퍼진다. 피아노가 제시한 주제 선율을 곧이어 제1 바이올린이 이어 받아 일제히 연주한다. 저음역대의 현악기들이 제스쳐(신호)를 취하면, 다시 스트링 트레몰로. 두 대의 클라리넷 선율이 나오면, 글로켄슈필이 클라리넷 선율을 더블링 하며 반짝이듯 등장한다. 그리고 아리아 <꿈의 무게>를 합창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어두운 막 뒤로 그림자지며 노래한다. 바뀐 선율 위로 그리운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환희도 잠시. 맑은 피아노 소리가 힘을 못 이기고, 구겨지듯 모든 소리들이 한꺼번에 일그러지며 불협화음을 낸다.


가네. 멀어지네
빛바랜 희망이 됐네
나의 오 나의
찬란하던 꿈이여

내겐 전부였네
무겁게 짓누른대도
홀로 기꺼이 온전히
짊어졌던 꿈이었네
- 앙상블, <꿈의 무게> Prologue ver.


찬란하던 꿈, 빛바랜 희망


혼란스러웠다. 꿈? 그런 게 내게 주어진 적이 있었나? 새로운 직장에 다니게 된 지 얼마 안됐을 무렵, <일 테노레>를 만났다. 그때 난, 반갑게 인사할 일도, 점심을 나눠 먹을 동료도 없었다. 간식을 나눔받는 순서도 나에겐 오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내 존재는 희미해져 갔다.


숨죽여 살아가는 법. 부당함을 보고도 지나치는 법. 큰 목소리를 속삭이는 법을 그때 배웠다.

가끔 업무 차 밖을 나가면 자전거를 타고 부민관이었던 건물을 오가며 '더 크게'를 흥얼 거리는 게 유일한 기쁨이었다. ⓒ BRUNCH <PRISM REFLECTING>

더 크게


<일 테노레>는 더 큰 목소리로 노래한다. 새로운 세상을. 나의 꿈을. 꿈에 수많은 조건이 붙는 지금, <일 테노레>는 나를 불러 세운다.


"왜 갑자기 멈췄어?"
"멈춘 거 아닌데."
"그럼 그게 끝이야?"
"윤이선 씨. 그게 최선이야?"
- 첫 장면, 진연과 이선의 대화


왈츠를 춰요. 조선 최초 오페라 클럽에서

춤 장면(Dance Scene) 영화 "The Great Waltz (USA 1972)" 중에서 ⓒ CINEMATIC / ALMAY STOCK PHOTO

"여러분, 앞으로 시작될 이야기는 기대와 다를 거예요. 슬플지도 몰라요. 그래도 제 이야기를 들어주실 건가요?"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무대 위 천막이 열리고 닫히는 모습은 큰 영상기를 통해 이선의 하루를 보는 것만 같다. 바깥에 온갖 참혹한 상황들을 애써 외면하고 황궁에서 울려 퍼진 왈츠 박자는 슬픈 목소리를 불러냈다. 그래서일까. <일 테노레>의 조선 최초 오페라 클럽의 프롤로그 선율을 들으면, 춤을 추기보다 슬픔에 주저앉고 싶다.


"이선, 노래할 때 무슨 상상해?"
- 베커, 이선과의 수업 중에서


이선은 무대 위에 설 때마다 어떤 생각을 했을까. 오페라의 본고장 이태리에선 사교의 장이자 값비싼 놀이였을 터. 조선 최초 오페라 클럽은 왈츠처럼 영원히 이선의 머릿속을 돌고 돌았다.


"미래", 마치 한 편의 서커스 같았던 꿈

ⓒ Vintage Footage, Polyorama Panoptique of the Circus and Champs Elysées, 1850, Binetruy.

값비싼 흥밋거리조차 되지 못한 무대에 오르는 우스운 광대가 되어버린 이선의 꿈. 내가 태어난 역사를 부정하고, 폭력과 억압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이선은 꿈꾼다. 노래를 부른다는 게, 사는 사람보다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았던 세상에서 더 가치있는 일이라 말할 수 있었을까.

찬란하고 눈부셨던 우리들의 일 테노레 ⓒ OD COMPNAY

'굳이' 돌아가는 선택을 하는 사람은 시대를 막론하고 어디에나 있었다. <일 테노레>는 굳이 그런 선택을 한 사람들의 꿈을 노래한다.


우리는 일 테노레이자 한 명의 인생을 본다. 우리는 피날레에서 다시 프롤로그로 돌아간다. 썩 유쾌하지만은 않은 이 인생이 왜 계속 보고 싶을까. 두고 온 희망이 거기 있어서일까. 아니면 나 대신 꿈을 노래하는 이가 거기 있어서일까.


#SCENE 1 (경성 거리 / 경성제국대 인쇄실 / 이화여전 인쇄실)

♪ 새로운 세상


"미래!"
그 단어를 발음할 때의 느낌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식민지의 젊은이들에게
'현재'란 단어는 어둡고 막막하게 느껴졌지만,
‘미래’는 우리를 설레게 했으니까요.

그때 나와 함께
미래의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얼굴들을
하나씩 떠올려봅니다.

우리가 애쓰면
그만큼 이 세상이 나아지리라 믿었던
그 앳된 얼굴들을!
- 이선, <새로운 세상>을 시작하며


피아노 화음이 정적을 여리게 부수고 들어온다. 거리엔 새로운 세상을 바라는 바람들의 속삭임으로 가득하다. 화음은 이선, 진연, 수한, 그리고 우리 모두를 가리키듯 이선의 음성을 따라 4번 울린다. 일제의 탄압이 점점 거세지던 1930년대 후반. 경성 거리 위. 꿈을 빼앗기진 않겠단 조선말이 빼곡히 적힌 글을 소중히 품에 안은 이선.

새로운 세상, 새로운 바람, 새로운 희망! ⓒ OD COMPANY

다소 만화영화의 오프닝 같기도, 동요 같기도 하다. 다 큰 어른들처럼 보이는 학생들은 한 음절 한 음절 또박또박 노래한다. 용기다. 어둠을 뚫고 나오려면 이 정도의 용기와 꿈은 있어야 한다. 무탈한 하루가 당연한 지금. 무대 위의 이야기는 다소 비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나는 계속 그 목소리를 찾아 듣고 있다.


'세상이 미쳐가도' - 좀 그래!
'희망을 잃진 말아' - '희망!' 이건 괜찮네
꿈을 빼앗겨선 안 돼
'이건 우리의 이야기' - 너무 뻔한가?
'너와 나 우리 모두' - 아니야! 좋아!
꼭 들려주어야 할
모두 들어야 할 이야기
- 진연의 퇴고, <새로운 세상>


3.1 독립선언서와 새로운 세상


'새로운 세상'은 1919년 3월 1일에 민족 대표 33인이 발표한 '독립선언서'에서 나오는 말이다. 일제 강점하에 있던 조선의 독립을 국내외에 선언한 글이다.

아,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지는구나. 힘으로 억누르는 시대가 가고, 도의가 이루어지는 시대가 오는구나. 지난 수천 년 갈고 닦으며 길러온 인도적 정신이 이제 새로운 문명의 밝아오는 빛을 인류 역사에 비추기 시작하는구나. 새봄이 온 세상에 다가와 모든 생명을 다시 살려 내는구나. 꽁꽁 언 얼음과 차디찬 눈보라에 숨 막혔던 한 시대가 가고, 부드러운 바람과 따뜻한 볕에 기운이 돋는 새 시대가 오는구나.

- 「3.1독립선언서」중에서


새봄, 눈부신 신록이 되어 돌아오다


3.1 독립선언서의 새봄은 '눈부신 신록'이 되었다. 차디찬 눈보라가 날리던 겨울과 살 떨리던 당시 상황은 스트링 트레몰로로 표현되었다. 주인공들이 용기와 다짐을 말할 때 스트링은 약하게 배경에서 잔류한다.

"눈부신 신록이 되어 돌아와 주오." ⓒ OD COMPANY


이건, 우리 모두의 이야기


체념에 익숙해지지 마.
변화를 목격하라.
우리가 만든 혁명.
새로운 세상-!
- 앙상블, <새로운 세상>


작은 방앗간. 어두운 세상에서 유일한 빛이 새어 나오는 곳. 지금 막 따끈따끈하게 지어진 글은 거리에 뿌려진다. 이 글의 지은이는 너와 나, 우리 모두. '꿈꾸는 자들'이다. 체념에 지지 않겠다고 약속한 작고 여린 손가락들로 새로운 세상을 밝히고 있다.


"일본 사람은 왜 데려왔어…."


<일 테노레>의 앙상블들의 합창은 관객들을 무대로 끌어 올린다. 함께하자고. <일 테노레>는 나쁜 사람, 선한 사람이 아닌, '선택'에 관해 집중한다. 바이올린 연주자로 등장하는 일본 사람(신이치)은 일본의 식민 통치가 부당하다는 걸 알고 알고있다. 위험하다는 것도 알고 있으면서, 옳다고 생각해 함께하기로 한다.

경성(서울) 거리 사이사이에 있던 우리의 말과 글들 ⓒ OD COMPANY
일본사람 신이치의 연주 오디션 연주 장면 ⓒ OD COMPANY
뮤지컬 <일 테노레> 곳곳엔 꿈꾸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 OD COMPANY


꿈꾸는 사람들로 가득한, 이곳 <일 테노레>


신이치는 왜 함께할까? '우리는 마냥 일본 사람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라고 표현하기 위해서? 그렇다고 하기엔 근거가 부족하다. 신이치는 일본 사람으로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신이치 또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길을 '선택한 사람' 중 하나다. 그러지 않아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으면서, 위험과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말이다. 그가 새로운 세상을 함께 부르는 이유다.

온 세상의 도리가 다시 살아나는 지금, 세계 변화의 흐름에 올라탄 우리는 주저하거나 거리낄 것이 없다. 우리는 원래부터 지닌 자유권을 지켜서 풍요로운 삶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것이다. 원래부터 풍부한 독창성을 발휘하여 봄기운 가득한 세계에 민족의 우수한 문화를 꽃피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떨쳐 일어나는 것이다. 양심이 나와 함께 있으며 진리가 나와 함께 나아간다. 남녀노소 구별 없이 어둡고 낡은 옛집에서 뛰쳐나와, 세상 모두와 함께 즐겁고 새롭게 되살아날 것이다.

- 「3.1독립선언서」중에서
뮤지컬 <일 테노레> 중에서 <새로운 세상> 합창 장면 ⓒ OD COMPANY

세상 모두와 함께


<일 테노레>의 합창은 일본과 조선 사람으로 나뉘어 불리지 않는다. 당신이 어디에서 왔든 상관없다. 우리는 함께 꿈을 꾼다는 것. <일 테노레>는 한국이 배경이지만, 한국 사람이 주제는 아니다. 아리아1 <꿈의 무게>가 라이트모티브로 다양한 장면에서 등장하는 이유다.

뮤지컬 <일 테노레> 넘버는 오페라적인 편곡, 모티브 그리고 그에 어울리는 노랫말을 사용함으로써 '오페라 넘버'와 '아닌 넘버' 사이에 차별점을 두면서도 전체적으로 '오페라적인 요소'를 느낄 수 있도록 구성하였으며 19세기 후반 오페라 요소 중 하나인 '라이트모티브(leitmotif)'를 사용한 변주를 통해 더욱 오페라에 가까운 사운드를 구현했다.

*라이트모티브(leitmotif) : 오페라나 교향시 등의 악곡에서 특정한 인물 또는 상황 등을 묘사할 때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짧은 주제선율이나 동기를 가리킨다.

- 뮤지컬 <일 테노레> 프로덕션 노트 음악 편에서


뮤지컬 <일 테노레> - 오페라에서 왔음을 잊지 않다


주인공 이선의 꿈이기도 한 오페라는 단순히 쓰이고 버려지지 않는다. <일 테노레>는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 듯, 클래식적인 요소를 곳곳에 넣어 오페라에 집중해 음악을 풀어낸다.


앞서 프로덕션 노트에서 알 수 있듯 <일 테노레>는 라이트모티브를 사용하여 캐릭터나 상황 등을 바로 떠올릴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중요한 넘버라고 볼 수 있는 프롤로그 다음에 나오는 주인공과 앙상블들이 모두 등장하는 극의 두 번째 넘버 중간엔 오페라처럼 대사를 한다.


합창) 어둡고 험한 세상
인물1) (뭔지 알 것 같지만 궁금해하며) 뭐라고 쓰여 있어. 보여줘 봐
인물 2) (반가워하며) 새로운 연극이 나오나 봐
인물 3) (깨닫고 벅차한다) 우리들의 현재에 대한 연극, 미래에 대한 연극
인물 1, 2, 3 합창) (끓어오르듯 벅차오르며) 희망과 꿈에 대한 연, 극 -
합창) 이건 우리의 이야기
인물 3, 4) (비장하지만 설득하듯이) 체념에 익숙해지지 마!
합창) 너와 나 우리 모두
인물 3, 4) (용감하게 서로를 바라보며) 모두 자유를 위해 싸워야 해
인물들 모두 합창으로 편입) (여리게 페이드아 웃되듯 하지만 끊어지지 않도록 연) 변화를 목격하라
이선) 형-. 나 충분한 걸까 할 수 있을까
합창) (단어가 하늘에서 쏟아지듯 서로 교차하며) 새로운, 새로운, 새로운, 새로운, 새로운
이선 편입, 모두 합창) 새로운 세-상-

- *인물들 1-4, 빠른 대화는 단순한 문장과 함께 레치타티보를 동반한다.
중창에서 불리는 '혁'명과 이선의 '형'의 간절함은 서로 교차히며 언어유희까지 만들어 낸다. ⓒ BURNCH <PRISM REFLECTING>


첼로가 불러낸 그 이름, 서진연


진연이 처음 등장하기 전 악기들만 들리는 부분에 집중해서 들어보자. 정말 잠깐이다. 다짐하는 듯한 팀파니 소리 하나 위로 첼로가 순차하행하며 전경에 등장한다. 첼로 소리가 다다른 곳은 진연이 있는 곳이다. 교회 음악을 숱하게 써서 영화 <검은 사제들>에선 악령이 싫어하는 음악가로도 꼽힌 바흐의 선율과 비슷한 멜로디다. 바로크 선율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데, 콕 집어 바흐라 칭한 것은 바흐만이 가지는 교회적 색채감 때문이다. 극본상 진연의 숭고한 죽음을 떠올린다면 바흐가 아닐 리 없다. 어쩌면 이스터에그일지도, 진연의 숭고함을 표현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등장인물 모두가 나오는 넘버에서 남다르게 등장하는 소리는 색다르게 다가온다.


<일 테노레>는 음악적 내러티브로 극본을 확실하게 승화한다. 잠깐의 첼로 선율이 갖고 있는 성스러움은 후반부의 푸가(Fuga) 기법의 넘버가 등장하며 바흐를 떠오르게 한다. 미묘한 이스터에그처럼 채워진 디테일의 음악은 <일 테노레>의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다.


좌) 대의도 중요하지만 늘 사람을 먼저 생각했던, 진연 우) 교회 음악가로 활동한 바로크 시대 대표적 작곡가, 바흐 ⓒ OD COMPANY, GETTY IMAGES

라이트모티브로 읽는 캐릭터


<일 테노레>엔 특정 단어나 상황, 캐릭터마다 등장하는 악기와 선율이 있다. '꿈'과 '희망'을 말할 땐, 글로켄슈필이 반짝인다. 이선의 삶에 계속 있었을 피아노는 이선이를, 마냥 여리지만은 않은 강인한 성격의 진연이는 중저음역대의 첼로로,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주도하는 수한이와 다짐은 팀파니스네어 드럼으로 표현된다. 일제 통치의 두려움과 긴장감 조성은 스트링 트레몰로가 대신한다. 이런 표현들은 2막이 끝날 때까지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이런 편성은 라이트모티브로 해석된다.


캐릭터 별로 주어진 구간마마다 잔류하는 스트링부터 합류하는 특정 악기의 소리는 각 인물이나 상황을 길게 설명하지 않고, 음악만으로도 충분히 캐릭터와 상황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음악, <일 테노레>를 연결하다


<일 테노레>의 음악은 '테너'란 제목답게 사람의 목소리를 전면에 내세운다. 화려한 기교보다는 선명한 선율과 화음으로 가사의 의미를 부각시키는 데 집중한다. 합창 파트가 많은 이 작품에서, 여러 목소리가 하나로 모일 때의 울림은 당시 조선인들이 꿈꾸던 '새로운 세상'을 음악으로 구현해냈다.

뮤지컬 <일 테노레> 중에서 ⓒ OD COMPANY


#SCENE 7A(조선 총독부 보안과장 사무실)

♪ 오페라 리골레토(Rigoletto)


"라 트라이바타, 리골레토!
다 너무 비극적인 이야기예요.
이걸 노래로 부르니까. 여기에 수많은 악기 소리가 합쳐지니까.
비극조차 아름다운, 아주 특별한 무언가가 돼요!"
- 이선, 베커 여사님과의 수업에서


괜히 리골레토가 나온 게 아니다


까마귀가 오페라 <리골레토>의 '여자의 마음(La donna e mobile)'을 듣고 있던 건 우연이 아니다. <리골레토>는 지배 계급에 도전한 광대이자, 귀족의 횡포에 저항하는 평민의 패배에 관한 이야기다. <리골레토>의 리골레토는 공작의 광대로, 딸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 암살 계획을 세운다.

오페라 <리 골레토> 중에서 ⓒ LAOPERA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와 <리골레토(Rigoletto)>는 <일 테노레>의 이야기를 닮았다. <라 트라비아타>는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의 위로에 대한 에피소드가, <리골레토>엔 암살과 검열이란 키워드가 들어간다. 힘없는 평민이 싸움에서 진 이야기는, 귀족 사회에 대한 분노이자 저항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리골레토의 선율은 당시 독립운동에 관한 염원과 일본 지배층에 대한 분노를 암시한다.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와 이선


<일 테노레>의 윤이선의 모티브가 된 우리나라 최초의 오페라 테너 이인선. 한국 최초의 오페라 공연을 올리기도 했다. 1946년 서울에서 동생 이유선과 제자들과 함께 조선 오페라협회를 조직하고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공연했다. 아마 진연의 탄생은 이인선 선생님이 한국에 처음 선보인 <라 트라비아타>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SCENE 8 (세브란스 의전 강의실)

♪ 환상 오페라


오페라 <카프리치오(Capriccio)>와 환상 오페라

오페라 <카프리치오> 장면 중에서 좌) 시카고 오페라 ver. 우) 파리 ver. ⓒ (순서대로) STAGE AND CINEMA, THEATER IN PARIS.com

’변덕‘과 ’공상‘을 뜻하는 음악 용어, 카프리치오는 독일 낭만주의의 꽃을 피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Strauss, Richard)가 마지막으로 작곡한 단막 오페라 제목이기도 하다. <카프리치오>에 나오는 백작 부인의 아리아는 '음악이냐 시냐. 작곡가냐 시인이냐에 대한 독백'에 관한 딜레마를 노래한 곡이다. 이는 <환상 오페라>의 주된 내용인 "의사냐. 오페라냐"와 닮아있다.

제1장부터 말이 먼저인지, 음악이 먼저인지 치열한 토론이 펼쳐진다. 마치 작곡가와 극본가와의 대화를 엿보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시인 올리비에(OLIVIER) : Prima le parole - dopo la musica! (말이 먼저고 - 그다음이 음악이지!)
음악가 플라망(FLAMAND) : Prima la musia- e - dopo le parole! (음악이 먼저고 - 그 다음이 말이야!).
미생물을 없애기 위한, 저온살균법!
즉, 파스퇴라오페라!
파스퇴라이제이션을
닥터 오페라… 닥터오페라가
- 이선, <환상 오페라>
"음악보다 의학이 더 중요한 걸 알잖아. 그러니까 오페라 따윈 그만 생각하고, 집중-. 집중해야 해!" ⓒ OD COMPANY

그래! 이 맛에 뮤지컬 본다!


<환상 오페라>를 보며 뮤지컬의 맛을 느낀다. 마치 디즈니 만화영화 같다. 이선의 내적 갈등은 캐릭터가 되어 서로 겨룬다.


의사의 길을 가야 한다고 소리치는 사람들. 반면에 작은 키에 공붓벌레로 보이는 캐릭터 한 명만이 오페라를 선택하라고 한다. 그는 아직 포기하지 말라며 이선을 꼬드기다 궁지에 몰리면 사라진다. 작아지는 동그란 스포트라이트 조명은 80, 90년대 만화영화를 보는 듯하다.


의사 강경파는 예술은 가치 없다고 외친다. '예술은 무슨 예술'이라고 손사래 치고, 폭풍우처럼 등장하는 아버지의 아우라를 만들어낸다. 음악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앙상블은 마치 거대한 놀이동산의 퍼레이드처럼 화려하고 즐겁다.


그런데도 포기 못 한다면
그래, 이선 그래
오직 단 한 번뿐인 인생
진정 원하는 예술 그 하나만을 넌 생각해도 돼
- 앙상블, <환상 오페라>
'고생 바가지'라는 가사는 대체 어떻게 하면 떠올릴 수 있을까. 현장에서 듣고 놀란 단어. 현실감 높은 가사는 재미를 극대화 한다. ⓒ OD COMPANY
만화적 연출과 더불어 안무의 높은 완성도가 돋보인 "환상오페라" 넘버 ⓒ OD COMPANY
우리 이선이 그냥 오페라하게 해주세요. ⓒ OD COMPANY


#SCENE 11 (골드레코드 오디션장)

♪ Aria 1 : 꿈의 무게 (골드레코드 오디션 Ver.)


이태리어에서 조선말, 가능하죠!

2018 뮤지컬 <일 테노레> 낭독회 ⓒ 서울사진관, 우란문화재단

2018년도 리딩버젼과 초연 실황을 비교하면, 이탈리아어에서 한국어로 바뀌었다. 플롯도 크게 바뀌었다. 오디션에선 한국어로, 후원 파티에선 이태리어로 부르게 했다. 이는 당시 조선에 가해지던 일제의 문화통치에 대한 내러티브를 가진다.

2024년 초연에선 이전 낭독회와 다르게 조선말로 노래를 부른다. ⓒ OD COMPANY


재편집·배포 및 상업적 이용 금지 ⓒ 이미지 제작 BRUNCH <PRSIM REFLECTING>


#SCENE 12 (골드레코드 연습실)

♪ Act 1 Finale : 단 한 번의 기회


꿈꿔도 되는 꿈인 걸까
변화를 목격하라
우리가 만들 혁명
- 앙상블, <단 한 번의 기회>


이제 오페라 공연은 더 이상 이선의 꿈이라고만 할 수 없다. 친구들은 각자의 인생에서 의미를 찾는다. 같은 곳을 바라보던 꿈은 서로 다른 꿈으로, 기회로 나뉘어졌다. 이는 제1 바이올린과 제2 바이올린이 디비전(Division)되어 패닝으로 표현된다. (음원에선 서로 다른 위치에서 연주되는 듯한 패닝을 들을 수 있다.)


바이올린의 패닝 사운드는 이렇게 들린다. 오케스트라는 두 그룹으로만 나뉘어져 있었을 것이다. 음원에선 후보정이 들어가 패닝을 극적으로 표현한 듯하다. ⓒ 직접 제작




♪ Aria 1 : 꿈의 무게 (이태리어 Ver.)


아직도 꿈


내게 딱 허락된 만큼만의 꿈꾸는 것. 그 삶은 온전한 나의 삶이라 할 수 있나.


<일 테노레>는 말한다. 9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꿈은 여전히 가치 있다고. 화려한 피날레를 맞이하기 전 변주하는 꿈같은 선율 위에 있을 뿐이라고.



<꿈의 무게>의 여정


이선의 목소리엔 희망이 가득했다. 이리저리 헤매는 여정처럼 <꿈의 무게>는 총 여러 번 변주한다. 우리가 온전히 <꿈의 무게>를 들을 수 있는 건 마지막 순간이다. 마침내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때는 모든 게 끝났을 때다. 그전까진 의미도, 하늘의 뜻도 가늠할 수 없다. 내 꿈이 내 바람을 넘어서는 순간에 <꿈의 무게>가 있다.

아선이 다다른 도착지는 어디일까 ⓒ OD COMPANY


Sempre sperando ma sempre sempre sperando
Non mi farà dimenticare giammai
O la speranza o la certezza
Un giorno tornerò
Dare
-
"늘 바라고 있지만, 계속…. 계속, 바라고 있어요.
결코 잊지 못할 거예요.
희망이든 확신이든
언젠가 꼭 돌아올게요.
당신에게로
- 이선



ACT2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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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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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역사넷, "1932∼1945년 중소 음반 회사의 우리 음악 음반", https://bit.ly/Music_history_1, 2025.06.18.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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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산백과, "카프리치오", https://bit.ly/Music_history_3, 2025.06.18. 방문
- 위키백과, "카프리치오(오페라)', https://bit.ly/Music_history_4, 2025.06.18. 방문
- <OPERA 336>(2011), 백남옥, "카프리치오, 한울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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