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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일 테노레> II

이토록, 찬란한! - 뮤지컬 <일 테노레> Act2

by 프리즘 리플렉팅
음악과 같이 청취하며 읽으시길 추천합니다. 본 분석은 개인적 견해로 창작진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다시 돌아올 <일 테노레>를 위하여! Andiamo!

뮤지컬 <일 테노레(IL TENORE)> 2024 실황 버전

il tenore — Will Aronson (작곡가·극작가 Will Aronson 공식 홈페이지)

Prologue(극 시작 음악), Curtain Call(커튼콜), Exit Music(퇴장 음악) 포함

Stream Hue Park, 혹은 박천휴 (박천휴 극작가 SoundCloud)

- 작곡가, 윌(Will)이 올린 같은 넘버의 다른 캐스트 감상 가능

우란문화재단 낭독회(리딩, 2018) 버전

il tenore — Will Aronson(Reading ver.)

Yisun's Aria(The Weight) of Dreams (꿈의 무게)
Silent Movie Love Song
너라는 시간, 너라는 세상
Letters
Tokyo Concert/ Shanghai Assassination
Wrong Dream(잘못된 꿈)
Opening Night
#7. 오페라 수업
#10. 환상 오페라
#11. 오케레코드 오디션: 꿈의 무게
#14. 너라는 시간, 너라는 세상 (+ #15. '편지, 信, Lettera' 도입부)
#23. 잘못된 꿈 / 이선의 오페라 <il tenore> 오프닝: 그리하여, 사랑이여

ACT 2


"우리는 모두
진흙탕에 있지만,
우리 중 누군가는
별을 올려다보기도 한다."
- 오스카 와일드

"오 그대여. 내 사랑이여. 그댄 어느새 고독을 닮은 그 이름" ⓒ OD COMPANY


#SCENE (Opening : 이선과 진연의 아파트, 뉴욕)

♪ Entr'acte

♪ Aria 1 (LP Ver.)


마지막에 나오니까
맨날 기다렸던 거 생각난다.

그땐
아무도
당신 꿈을
이해 못 했었는데‥.
- 진연


영원한 나의 꿈


'항상' 이라는 부사는 이선이 진연에게만 허락한 단어였다. 이선의 꿈을 이해 못 하던 세상에서 진연은 기꺼이 이선의 꿈이 되어주었다. 서로의 꿈을 이룬 둘은 오페라 하우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뉴욕 아파트에 둥지를 틀었다.

진연, 뉴욕에 있는 이선의 집에서 ⓒ OD COMPANY

나이가 들어서일까 좀처럼 걷는 게 쉽지 않은 모양새다. 책상엔 이선과 같이 활짝 웃으며 찍은 사진과 그를 닮은 풍성하게 핀 생화 몇 개가 보인다. 진연이 어린 시절의 이선이의 목소리가 담긴 바이닐을 틀면, 이선이 만큼이나 따뜻한 목소리가 방에 퍼진다.

'나의 영원한, 일 테노레….' ⓒ OD COMPANY

"너무 못 부른다. 제발. 꺼줘요. 플리즈~!"

"아이고.. 알았어요. 껐어요. 하하. 그럼 2막에 나오는 아리아를 들어야지!"

"어허-! 서진연!"

"아. 난 항상 이 노래가 좋았어. 마지막에 나오니까 맨날 기다렸던 거 생각난다."

"선택 아니었어. 운명이었지. 오페라처럼!" ⓒ OD COMPANY

<일 테노레>의 장면 전환은 마치 영화처럼 느껴진다. 암전이란 편한 선택 대신, 무대에 이야기 구성을 서로 다르게 배치하여, 이야기를 확장시킨다. 왼쪽 아래엔 진연을, 오른쪽 위에는 이선과 베커 여사, 골드레코트 연습실 멤버들을 배치했다. 진연이를 향한 안토니오의 세레나데가 담긴 아리아를 부르는 장면은 마치 영상이 교차되는 효과를 실시간으로 보는 것만 같다.



#SCENE 1~2 (골드레코드 연습실 ~ 경성 어느 길 위)

♪ Aria 2 : 그리하여, 사랑이여 (LP Ver.)

♪ Aria 2 : 그리하여, 사랑이여 (Liver Ver.)


이선에게


형이라면 어땠을까 묻기만 했던 이선에게, 이제는 세상이 묻는 것만 같다. 어떤 아름다운 상상을 하느냐고. 왜인지 이선은 상상을 읊다보면 아득한 미래가 벌써 가까워진 느낌이 들어 웃음이 난다.


소리 훨씬 좋아졌어!
이선! 노래할 때 무슨 상상했어?
- 베커 여사가 이선에게
베커 여사와 이선, 오페라 단원들 ⓒ OD COMPANY, ARIRANG TV

이선이는 희망이 되고 싶었다. 사람을 떠나보내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라고 배웅의 시간을 둔 게 삼일장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흘 후에 없어지는 슬픔 따윈 없다. 기선이가 죽으면서, 온기가 감돌았던 이선의 집엔 웃음이 사라졌다. 이웃집의 밥 짓는 냄새가 서러울 새 없이 형의 빈자리는 이선의 몫이었다. 자신이 의사가 되면, 형의 빈자리를 채울 거라 이선이는 생각했다. 의사가 되면, 형의 빈자리를 가까스로 채우면 아버지도, 어머니도 자신을 인정해 줄 것이라 믿었다. 부모님에 대한 기대와 믿음은 곧 이선의 꿈이었다.

"윤기선 동생이다!" ⓒ OD COMPANY

어머니는 못내 경성에 올라간 이선이가 눈에 밟혔을 테다. 이선이가 좋아하는 반찬을 잔뜩 싸주느라 온 동네에선 잔치라도 열렸냐며 이웃들이 모여들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그런 이선이의 어머니를 대신해 경성으로 온 것이다. 이선이의 꿈이 어떤지도 모른 채. 노릇노릇하고 따뜻했던 반찬이 식어가는 도시락 찬합을 들고서.

"너, 피아노도 칠 줄 알아? 너도, 막 있는 집 도련님이었어?" "집에 있는 거 싫어서…. 우리 형 죽고나서, 매일 교회갔거든." ⓒ OD COMPANY


#SCENE 5 (단성사 / 골드레코드 연습실 / 문학회 아지트)

♪ 마음이 정하는 일


희망은 때론
그저 거짓말
때론 잔인한 고문
- 이선 <마음이 정하는 일>


마음이 정하는 건, 마치 운명 같은 것


이선은 더이상 누구를 대신하는 모습이 아닌, 자유로운 꿈을 꾼다. 이선은 벅찬 희망을 품고 달린다. 꿈이 만들어준 상상 속에서 이선은 행복하다. 아뿔싸. 그만 초록 이파리들에 숨어있던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힘껏 달린 만큼 상처는 컸다. 쏟은 열정만큼 고꾸라지고 말았다.


<꿈꾸는 자들>도 시련이란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각자 꿈꾸기에도 벅찬 세상에서 서로의 꿈이 자라났다. 서로의 꿈은 뒤엉켰다. 그동안 말 못 할 감정의 골은 더 깊어졌다. 이따금 투덕거릴 때면, 모두를 위한 선택이라고 말하면 마음이 풀리는 듯했다. 하지만 그 또한 각자를 위한 선택이었다.

"처음으로 다 되돌린대도. 아마 난 같은 선택을 또다시 하겠지." ⓒ OD COMPANY

<꿈꾸는 자들>의 <Aria 2> 선율의 피아노가 애절한 둘 사이를 잇는다. 넘쳐흐르는 마음은 클라리넷이 대신한다. 선택과 꿈 사이를 헤매듯 글로켄슈필은 약하고 여리게 등장한다. 심장 고동 박동 같은 사운드의 콘트라베이스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뒤따른다. 목관 악기들은 몽글몽글한 사운드를 배경으로 만들어 주며, 아르페지오 음형을 만들며, 벅차오르는 마음을 표현한다. 한쪽은 이성과도 같은 차가운 푸른 조명을, 다른 한쪽은 뜨거운 심장처럼 붉은 조명이 비춘다.


마음이 정하는 건
결국 운명 같은 것
받아들여야만 해.
이젠
- 이선, 수한 <마음이 정하는 일>



사랑, 자칫 나를 넘어선 이야기


진연을 사이에 둔 두 남자의 사랑 노래 같지만, <마음이 정하는 일>은 성장의 메시지에 가깝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책임과 몫은 결국 나에게 있다는 것. 어떤 결말을 맞이했더라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체념은 한층 이들이 성숙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음이 정하는 일>은 서로 간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1막의 <하고 싶은 말>과 닮아있다. <마음이 정하는 일>은 2막에서는 클라이맥스로 향해가는 중간 넘버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1막의 <하고 싶은 말>보다는 감정이 한층 더 올라온 중후한 색채감이 드러난다. 이러한 색채감은 현장에서 음악적으로 먼저 귀에 와닿지만, 이해하기엔 다소 시간이 걸리는 넘버이기도 하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올 운명에 처연해야 한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사랑을 배경에 두고 서로 토라지는 삼각구도의 갈등은, 여태껏 쌓아온 꿈의 무게감을 다소 옅게 만든다. <마음이 정하는 일>에서 못다 푼 내면의 갈등은 <진연의 노래>의 몫이 된다.


알려줘 대체 뭐가 맞는지
말해줘 언제 쉬워지는지
이젠 나도 이 세상만큼 복잡해졌어
- 진연의 노래 : <어른의 세상에서>
아무리 불러도 답은 듣지 못한다. ⓒ OD COMPANY


#SCENE 6 (골드레코드 연습실)

♪ 진연의 노래 : 어른의 세상에서


편지, 信, Lettera


<진연의 노래>는 진연이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 보낸 편지였다. <진연의 노래 : 어른의 세상에서>는 앞서 뒤로 물러나 있던 내면적 갈등을 더욱 솔직하게 들추어내는 넘버기도 하다.

"안녕. 보고 싶은 너에게" ⓒ 이미지는 직접 제작(뮤지컬 <일 테노레> 낭독회(2018) 가사 인용)

리딩 버전에서는 뿔뿔이 흩어진 이들을 편지로 한데 모은다. 오래되고 친숙한 매개체인 편지를 통해 세 인물은 서로의 상황과 다짐, 미래를 털어놓는다. 하지만 본 공연으로 넘어오면서 해당 넘버는 지워진 듯 하다. 리딩 버전의 편지를 듣다 보면, 무척 아쉽다.

자칫 고루한 이미지일지언정. 윌과 휴라면, 편지라는 매개체도 유기적으로 충분히 잘 풀지 않았을까 ⓒ 이미지는 직접 제작

모든 게 빨라진 세상. 결정마저도 로봇에게 맡기는 세상에서 <Letters(편지, 信, Lettera)>> 넘버를 통해 사랑을 경쟁하듯 1:2로 나누지 않고, 말할 수 있는 법을 배웠을 지도 모른다. 1초 만에 차단하고 교류가 가능한 오늘날에 기꺼이 공연장을 가는 관객들에게 <Letters>는 특별한 이야기가 되어주었을 것이다. 이 시대에 편지는 귀해진 감성이기에 아쉬움이 더 크다. 뮤지컬에선 다소 진부한 기능을 하는 소재일지 모르지만, 그렇기에 더 실험적인 이미지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편지>를 통해 <일 테노레>가 갖고 있는 이미지를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진 않았을까.



#SCENE 7 (골드레코드 연습실 (부민관 대관 심사 쇼케이스))

♪ 작고 완벽한 세상


내겐 가장 안전한 곳
내가 나일 수 있는 곳
작은 우주 같은 이곳
소중한 이곳
난 살아있는 걸
- 모두 같이, <작고 완벽한 세상>


세상이 어두울수록, 우리의 꿈은 찬란히 빛나리


꿈은 네 가지 의미를 지닌다. 내가 바라는 희망, 오늘 밤 잠들 때 꾸는 꿈, 이룰 수 없는 허황된 기대의 꿈. 그리고 현실에서 떠 있는 즐거운 꿈이 그것이다. 뮤지컬 <일 테노레>의 꿈은 마치 사전 속 의미를 다채롭게 보여주듯 끊임없이 변주하며 꿈에 대해 노래한다. <작고 완벽한 세상>은 꿈들 사이에서 빛나는 희망이다.

"작고 완벽한 세상. 여기 우리의 세상" ⓒ OD COMPANY

희망조차 기회라 치열해야 한다. 이 정도 슬픔과 고통쯤이야 이겨내야 한다. 가혹함을 이겨내지 못하면, 꿈꾸는 자격조차 없다 한다. 꿈의 자격을 끊임없이 되묻는 세상. <일 테노레>는 기꺼이 암막 속으로 들어간다. 주연이 아닌, 모두 주연이 될 수 있는 세상. 그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니. 그럴 테니. 어둡더라도 괜찮다고 토닥인다.


"증명할 준비 됐어?"
- 최철, 이선에게
"우리 모두가 조선의 미래야." ⓒ OD COMPANY

부민관 열쇠를 받아온 최철과 이선, 까마귀의 암살 작전을 꾀하는 진연과 수한 무리가 무대에 서 있다. 열쇠를 건네받는 이선과 폭탄을 주고 받는 암살 작전단의 모습이 교차된다. 스트링 사운드는 고조되며, 푸가로 돌입하며 각자가 할 일을 노래한다.


마침내 됐어. 꿈꿔왔던 순간.
일단 공연이 시작되면.
이젠. 시작.
Showtime!

"우리 중 누군가 희생된다면, 희생이 헛되지 않게 살아 남아야 해." ⓒ OD COMPANY


#SCENE 8 (문학회 아지트 /골드레코드 연습실)

♪ Showtime!


마침내 됐어.
꿈꿔왔던 순간
일단 공연이 시작되면
- 이선, 진연, 앙상블 <Showtime!>


푸가(Fugue), 우리의 선택을 노래하다


우리의 꿈이었던 오페라는 저마다의 꿈이 되었다. 오페라 <꿈꾸는 자들> 개막을 앞두고 등장인물들은 서로 다른 선택을 노래한다. <Showtime!>의 음악 형식엔 푸가가 있다. 푸가는 쉽게 말해 각 성부가 독립된 선율을 연주하며 *대위적 조화를 이루는 기법이다. 이러한 구성은 <Showtime!>(초연 버전), <Tokyo Concert / Shanghai Assassination>(2018, 낭독회 버전)의 후반부에서 세 성부인 이선, 진연, 앙상블들이 각자 다른 결심을 하며, 목소리들을 겹겹이 쌓는 데서 알 수 있다. 기악이 독립된 선율을 우선 제시한다. 제시된 선율에 맞춰 이선이 노래한다다. '마침내 됐어. 꿈꿔왔던 순간, 일단 공연이 시작되면'을 부르면, 진연이 같은 선율에 맞춰 자신이 선택을 노래한다. 뒤이어 앙상블들이 자신의 결심을 노래한다. 왜 하필 푸가일까?

*대위법 : 두 개 이상의 독립적인 선율(멜로디)을 조화롭게 배치하여 음악을 만드는 작곡 기법이다.


죽음으로 남겨진 미완성


인간이 인간에게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죽음의 수용소' 또는 '절명 수용소'라고 불리는 이곳 숙소에서는 바흐의 푸가 곡들이 자주 들렸다고 한다. 바흐와 푸가, 죽음에 대한 모티브는 <Showtime!>은 앞으로 일어날 주인공의 비극적 죽음을 암시한다.

미완성으로 남은, 바흐 <푸가의 기법> (BWV 1080) ⓒ Public Domain


죽음의 푸가

왜 늘 우리는 희생만 감수해야 하는데?
나라를 빼앗겨도 희망조차 빼앗기면 안 된다며
세상이 지랄 같아도! 꿈을 가져야 한다며!
왜 나한테는 다 과분한 건데!
- 이선, 진연에게

1943년 11년 11월 폴란드 루블린 지역, 마이다네크 강제수용소에서 최대 규모의 학살이 일어난다. 1만 7천여 명. 확성기엔 비엔나 왈츠와 탱고, 군대행진곡이 크게 울러 퍼졌다. "군대행진곡에 맞춰 사람 쏘는 것 정말 좋다!" 동료의 외침을 기억하는 경찰관. 이후 부대는 본부로 돌아가 보드카 파티를 벌였다. 이들은 희생자들의 피로 물든 교복을 입고 있다. 잔인한 역사의 기록, 마이다네크 절멸 수용소에 관한 보고서를 읽은 스물 네살의 청년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파울 첼란. 2차 세계 대전과 아우슈비츠라는 참혹한 비극을 감당해야 했던 유대인이자 시인은 <죽음의 푸가>라는 시를 썼다.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그걸 저녁마다 마신다
우리는 낮마다 아침마다 그걸 마신다 우리는 밤마다 그걸 마신다
우리는 마시고 또 마신다
우리는 공중에 무덤 하나를 판다 그곳에선 좁지 않게 누울 수 있다
날이 어두워지면 그는 독일로 편지를 쓴다 너의 금빛 머릿결 마르가레테
그는 이렇게 편지를 쓰고 집 앞으로 나온다 별들이 반짝인다 그는 휘파람을 불며 자기 사냥개들을 불러모은다
그는 유대인들을 휘파람을 불며 불러낸다 땅에 무덤 하나를 파게 한다
그는 우리에게 명령한다 자 무도곡을 연주하라
- 파울 첼란 <죽음의 푸가> 증에서
마우트하우젠 집단 수용소, 1942년 6월 30일, 수감자 오케스트라 ⓒ fndirp@fndirp.asso.fr

나치의 집단 수용소를 관리하던 친위대 장교들은 독일 고전 음악의 수준 높은 애호가이거나 아마추어 연주자였다. 아우슈비츠의 샤워실에서 일산화탄소 가스가 나오며 희생자들이 몸을 쥐어뜯으며 죽어가는 동안에도 바그너의 웅장한 선율이 스피커를 타고 흘렀다.


<일 테노레>의 까마귀가 고문을 하며 비명소리가 안 들리게 오페라를 크게 틀어놓는다고 한 것도,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서 기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내 오직 유일한 잘못은
너무나 간절하다는 것

이 고통 멈춰주오
내 꿈을 죽여주오
- 이선 <잘못된 꿈>




♪ Aria 2 (부민관 공연 Ver.)


그리하여, 사랑이여

"그리워라. 내 사랑이여" ⓒ OD COMPANY

두 음절에 인생을 녹일 수 있을까. ’그리하여, 사랑이여‘는 온전히, 기꺼이 부를 수 있었던 조선말로 된 아리아였다. 이선이 마지막로 부른 안토니오의 노래였고, 오직 진연이만을 위한 노래였다.


이선은 그날 이후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진연의 마지막도, 친구들의 얼굴도. 맨 처음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선은 매일매일 떠올려야 했다.


어렴풋이 기억하는 멜로디의 리듬이 들려오면, 이선은 기억할 수 있었다. 안토니오였던 자신을.


저 하늘이 추락한대도.
난 좌절하지 않으리라.
- 안토니오(이선), <꿈꾸는 자들> 중에서


프롤로그는 안토니오의 시작이자, 이선의 시작이었던 진연을 떠올리던 멜로디였다.


"이젠 날 데려가오. 그대 곁에. 간절한 사랑이여." ⓒ OD COMPANY


#SCENE 10 (이선의 아파트, 뉴욕 / 성루 새 부민관 개관식)

♪ Finale : 꿈의 무게


여러분. 나는 실패했습니다.
내 인생의 의미라고 생각했던
오페라는 값비싼 흥밋거리조차 못되고
나는 뭐 평생 대단한 의미조차 찾지 못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 이선


실패라는 자기소개서


'저는 실패한 사람입니다. 나이도 스펙이라는데, 저는 심하게 감가상각이 이뤄진 취업 준비생입니다. 좋은 학교를 나오지 못했고, 변변한 자격증 하나, 그 흔하다는 해외 경험조차 없습니다.' 나의 자기소개서였다.


나는 내 인생에 주인공이 한 번 되어본 적 없는데, 무대 위 주인공이 '실패'란 단어를 말하는 순간. 숨죽여 우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스스로를 팔아야지만 면접이라도 볼 수 있던 때의 나의 자기소개서. 이선의 마지막 대사는 끝은 뭉툭해져서 누군가를 해칠 힘도 없는 연필로 종이에 꾹꾹 눌러쓴 일기같았다.


이선의 호흡 사이사이로 피아노가 파도처럼 밀려들어 갔다가 나온다. 마치 문학 클럽 사이사이로 들어갔던 이선이 같다. 친구들의 삶, 관객들 마음 사이사이로 이선이 함께한다. 가끔은 땅을 디디기도 힘들었을 이선의 뒤로 커튼이 열린다. 땅을 강하게 딛고 걸어왔을 이선의 무게가 느껴진다. 오케스트라의 공간으로 무대의 공간이 넓어진다. 극의 시각적 연출을 넘어 이선과 관객에게 '극장'이 아닌 '세상'을 보여준다.


<일 테노레>는 '여러분. 꿈을 꾸세요!' '그럼에도 꿈을 꾸시겠습니까?'라고 묻지 않는다. 그저 위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까지 오셨군요.'라며 위태로운 어깨를 토닥인다.


'우리, 많은 일들이 있었지요?
당신은
어쩌면 삶을 포기하고 싶던 순간도 지나
이곳까지 온 거겠지요….
고맙습니다.'
그게 내가 <일 테노레>에서 들은 이선의 마지막 이야기였다.



우리는, 지금 <일 테노레> II (Rep.)


<나이든 영사기> 시놉시스


나이든 영상기는 매일매일 행복한 영화를 상영한다. 영상기는 가끔 멈췄다. 시간이 갈수록 영사기는 고장 나는 일이 많았다. 필름은 기이한 소리를 내며 늘어졌다. 고장난 악기처럼. 자신처럼.


이선이 넥타이를 어루만지면, 잃어버린 기억들이 떠오른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나의 '일 테노레'…."

ⓒ BRUNCH <PRISM REFELCTING>, FILM| KIM DO YUN, MUSIC | WILL ARONSON (ORIGINAL : MUSICAL <IL TEN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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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oyun Kim. South Korea, All rights reserved. No commercial use.
ⓒ The original author has the copyright on every original footage quoted in this video.
참고 문헌

- <뮤지컬 '일 테노레(IL TENORE)' 프로그램북>(2023), 오디컴퍼니(OD COMPOANY)
- 황시원 외 7인, "만화로 보는 교과서 인물", (주)북이십일 아울북
- 삼호뮤직 편집부(2022), "파퓰러음악용어사전 & 클래식음악용어사전", 삼호뮤직
- 위키백과, "푸가", https://bit.ly/fugue_bach_1, 2025.06.29. 방문
- 부산일보, "[이성훈의 소아시아 기행] 죽음의 푸가 ②", (2021.08.05) https://bit.ly/fugue_bach_2, 2025.06.29. 방문
- 아트인사이트, "[Opinion] 파울 첼란과 죽음의 푸가 [도서]", (2020.04.05.) https://bit.ly/fugue_bach_3, 2025.06.29. 방문
- WIKIPEDIA, "Todesfuge", https://bit.ly/fugue_bach_4, 2025.06.29. 방문
- 에이블뉴스, "장애인 학살의 역사도 기억하라!", (2018.01.26.) https://bit.ly/fugue_bach_5, 2025.06.29. 방문
- 글로벌이코노믹, "[이슈 분석] 나치는 왜 음악을 통해 유대인과 포로 대학살, 부녀자 집단 강간 부추겼나", (2021.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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