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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있는 류이치 사카모토를 위하여

류이치 사카모토 플레잉 디 오케스트라2014 GV 리뷰

by 프리즘 리플렉팅

류이치 사카모토 플레잉 디 오케스트라2014

류이치 사카모토의 죽음을 생각하며, 한강 작가의 <빛과 실> 강연문을 떠올렸다.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영원한 과거가 되어버린 음악가의 연주를 들으러 가는 이유. 현재의 나는, 나를 구하기 위해 위대한 소년이었던 류이치 사카모토를 만나고 왔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과거가 현재를 돕고 있다고,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구하고 있다고 느낀 순간들이 있었다. 이따금 그 묘지에 다시 찾아갔는데, 이상하게도 갈 때마다 날이 맑았다. 눈을 감으면 태양의 주황빛이 눈꺼풀 안쪽에 가득 찼다. 그것이 생명의 빛이라고 나는 느꼈다. 말할 수 없이 따스한 공기가 내 몸을 에워싸고 있다고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동시에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다는 사실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의 참혹과 존엄 사이에서, 두 벼랑 사이를 잇는 불가능한 허공의 길을 건너려면 죽은 자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 작가 스웨덴 한림원에서 발표한 '빛과 실' 강연문 중에서


이미 없는 사카모토를 위하여


2011년, 독일에서 류이치 사카모토 ⓒ clemisan from Germany

당신이라면 가능한가? 손가락 하나면 더 빠르게, 더 쉽게 차단하고 볼 수 있는 세상에서 2시간을 기꺼이 내어주는 일 말이다. 지금 여기, 볼 수 없는 사람의 연주를 들으러 일부러 살아있는 시간을 낸 사람들 속에 내가 있다. 엄청난 팬도 아니었는데, 나는 그의 연주가 보고 싶다. 왜일까.


GV가 있다고 해서 무지성으로 예매를 하고선 계속 생각한다. 유튜브나 음악 앱으로 얼마든지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는 편한 시대에 멀고, 긴 시간을 굳이 낼 이유가 있을까? 실제론 더 이상 볼 수 없는 연주를 굳이 영화관에 가서 그의 부재를 확인할 필요가 있을까. 실시간 공연이 아니면 의미가 없나? 실시간이 아니면, 살아 있지 않으면 의미는 퇴색하는 것일까? 클래식은 80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연주되는 클래식도 아닌, 장르로도 모호하다는 평을 받는 녹화된 연주를 구태여 영화관에서 비싸게 돈을 주고 봐야 하지? 물음표는 멈출 생각을 안 한다. 후회할 수도 있는 시간. 과거를 다시 보는 행위. 죽은 자를 보러 가는 산 자들. 그게 추모인지, 소비인지, 아직 모른다. 하지만 오늘 나는, 과거를, 죽은 자를 만나러 간다.

사카모토의 서재 ⓒ NHK

죽음의 프리미엄


거장의 죽음엔 프리미엄과 트리뷰트가 붙었다. 나 또한 단독 개봉 하는 영화의 이벤트인 GV에 하루라도 빨리 참여하고 싶어 한, 그런 거장의 유명세와 죽음에 붙은 프리미엄에 한몫한 사람이었다. 거장의 공석은 다른 이들의 공연과 살아생전 그가 다 풀고 가지 못한 영상들로 채워졌다. <오퍼스(Opus)>를 시작으로 <류이치 사카모토|플레잉 디 오케스트라 2014>는 사카모토의 죽음 이후 개봉한 두 번째 영화이다. 단순한 협연자가 아닌, 그가 직접 지휘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가 즐겨 쓰던 호피 무늬 안경, 류이치 사카모토는 어떤 세상을 보고 있었을까 ⓒ NHK
생전 자연의 소리를 닮은 종소리를 즐겨 들었던 사카모토였다. ⓒ NHK

나머지는 소음이다


월드타워에 가는 길은 참 멀었다. 도로에 차는 어찌나 많은지. 걷는 사람이 더 빠른 길 위에서, 한참을 정체하는 버스 안에서 사카모토만을 생각한다. 기도한다. 제발 광고 시간이 끝나기 전에 도착하게 해주세요. 버스 뒷문에 발등을 한껏 찧은 채 달린다. 숨을 헉헉대며 도착한 200여 석 남짓한 영화관엔 사람들이 꽤 가득하다.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조심히 자리에 앉는다. 마치 클래식 공연장처럼 누구도 쉽게 소리를 내지 않는다. 유달리 머리를 긁적이며 헛기침을 계속하는 한 사람, 다시 볼 수 있는 영화를 굳이 폰으로 촬영하는 한 사람이 보인다. 고요한 음악 사이로 들려오는 머리를 벅벅 긁는 소리와 헛기침. 정말 견디기 힘들어서 눈살을 찌푸리며 스크린을 다시 본다. 사카모토의 온화한 미소가 신경 쓰지 말라고 하는 듯, 그의 연주가 모든 소음을 이긴다.

마치 클래식 공연장에 와있는 것만 같은 정적이었다. ⓒ commmons

악장이 넘어가는 사이에 고요한 틈을 타 물을 먹는 사람들이 들렸다. 영화관에서 힘들게 물을 먹는 모습은 참 오랜만에 보는 희한한 풍경이었다. 팬데믹 이후로 무너진 매너들을 마주했던 영화관에서 이렇게 고요하고 정중한 매너가 깃든 장면은 오랜만이었다.


시간이 돌아가는 것만 같았다. 팬데믹 이전으로, 사람들에 대한 인상이 더 사라지기 이전으로, 사카모토가 아프기 이전으로….


주홍빛 톤의 조명 탓일까. 그의 손이 비출 때마다 마치 온기가 느껴진다. 아직 일본이나 뉴욕 어디에 사카모토가 있을 것만 같다. 당장이라도 잡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그가 투병으로 애쓰며 촬영한 <오퍼스(Opus)>를 볼 땐 느껴본 적 없는 것이었다. '아아. 보고 싶어라. 보고 싶어라.' 속 말이 나올까 숨을 삼켰다.

<류이치 사카모토 : 플레잉 디 오케스트라 2014>(Ryuichi Sakamoto | Playing the Orchestra 2014) 중에서 ⓒ WOWOW FILMS

이상하게 영화관을 가득 채우는 온기와 미소를 본다. 손이 클로즈업될 때마다 마치 아직 일본이나 뉴욕 어딘가에 사카모토가 있을 것만 같다. 당장이라도 보고 연락할 수 있는 사람처럼 여유를 느끼기도 한다. 살아생전 그의 연주를 직접 들은 사람들이 부러워진다. 이따금 사카모토의 시시콜콜한 유머에 웃는다.


'류이치 사카모토'하면 중학생 시절을 빼놓을 수 없다. 그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 한창 싸이월드에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Merry Christmas, Mr. Lawrence)>를 해놓는 게 가장 큰 멋이었던 때의 일이다. 아직 일본 문화 개방이 되지도 않았던 일본 음반을 구하기 어려웠던 중학생 시절, 그저 사카모토가 너무 좋아 전 앨범을 구입해 소장하고 있다던 친구의 얘기를 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단짝 친구의 친구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나는 마치 그 친구가 단짝처럼 느껴졌다. 누군가를, 무언가를 사랑해 기꺼이 정성을 쏟는 사람의 모습을 상상하니 이름 모를 낯선 이도 친구 같았다.


사카모토의 부고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도 그 친구였다. 그 친구는 지금 어디 있을까. 그 친구도 혹시 이 영화를 보고 있을까. 마치 영화관에 모인 사람들이 그때 그 친구 같았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사카모토의 음악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사카모토와의 어떤 추억이 있을까. 그의 실제 라이브 연주를 들은 사람도 있을까. 어떤 추억 속에서 지금 음악을 들고 있을까. 모두가 오케스트라 앞에 앉은 관객 같았다. 스크린 속 사카모토는 마치 그런 우리를 위해 지휘하는 것만 같았다.

<류이치 사카모토 : 플레잉 디 오케스트라 2014>(Ryuichi Sakamoto | Playing the Orchestra 2014) 중에서 ⓒ WOWOW FILMS
류이치 사카모토만큼 온화하고 단단한 사람이 되면 세상은 고요해질까 아니면 시끄러워질까 ⓒ WOWOW FILMS

세상에 온갖 다정함과 음악을 모아 만들면 이런 사람이 나올까. 사카모토란 사람은 2014년에도 '역시나' 사카모토였다. 영화 <코다(CODA)> 속 사카모토와 다르지 않았다. 실황 연주 속 틈틈이 사카모토의 멘트가 이어진다. 동일본대지진 이후 자연의 소리와 악기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그의 이야기 곳곳엔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가치관을 지녔는지를 알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이 위대해 보이는 작곡가가 지휘를 독학했다는 것, 동일본대지진 이후 도호쿠(동북) 유스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지냈다는 것, 음악을 잘하고 못하고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팬들에게 40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다고 말하는 모습이었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오케스트라 단원들 <류이치 사카모토|플레잉 디 오케스트라 2014> 중에서 ⓒ WOWOW FILMS

"이번 콘서트의 가장 큰 차이는 지휘자가 없다는 점입니다. 제가 직접 지휘를 하고 있지만, 완전히 독학이고, 배운 적도 없어서 그냥 눈치껏 흉내 내며 하고 있는 수준이라 정말 아마추어입니다. 그런데도 (단원들이) 이렇게 훌륭하게 이해해 주시고, 잘 따라와 주셔서 정말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류이치 사카모토, <Playing the Orchestra 2014> 중에서


"음악은 잘하고 못하는지 중요하지 않아요.
음악을 하려는 그 마음이 바로 소리에 드러나죠.
아이들과 함께 연주하고 있으면
'음악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고,
저 또한 많은 걸 배우게 됩니다."
- 류이치 사카모토, 도호쿠 유스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이야기 중에서


"관객석에서 어떤 저음의 목소리가 계속 들리는데…. 참. 여러분들도 변하질 않네요. 여러분들도 이젠 40대가 되었을까요? 대지진이 있었고, 물론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었지만, 제가 음악가라서일까요. 여러 피해 사진 가운데 특히 악기가 진흙에 뒤덮이거나 부서지거나, 바다에 가라앉아있는 모습을 보면 정말 가슴이 아팠어요.


그때부터 악기 복원을 시작하게 됐는데, 조사해 보니 피해 지역에 있는 학교가 1,800교 이상이나 되더라고요. '이건 정말 큰일이다.' 싶어서 기금을 만들었고, 정말 많은 분들이 기부해 주셔서 거의 1년 만에 악기 복원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후 피해 지역의 아이들이 모여 콘서트를 열기도 하고, 지금도 그 활동을 계속 이어오고 있어요. 그중에서, 동북 유스 오케스트라라는 초·중·고등학생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만들었는데요. 불과 며칠 전, 3.11, 3주년 하루 전인 3월 10일에도 후쿠시마현에서 연주하고 왔습니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사망하기 이틀 전까지도 동북 유스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지켜보며 음악감독을 이어 나갔다. 사진은 동북 유스 오케스트라와 함꼐한 모습 ⓒ commmons
2019년 후쿠시마에서 동북 유스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류이치 사카모토 ⓒ The Asahi Shimbun

물론 초등학생도 있는 아이들 오케스트라이기 때문에 미숙한 부분이 있지만, 음악이라는 건 기술의 문제가 아니에요. 음악을 하는 그 마음가짐이 고스란히 소리에 담기기 때문에, 아무리 잘 연주해도 그게 음악이 아닌 경우도 많거든요.

도호쿠 유스 오케스트라 with 류이치 사카모토(Tohoku Youth Ochestra with Ryuichi Sakamoto) ⓒ tokytunes.com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연주하고 있으면 '음악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고, 저 또한 많은 걸 배우게 됩니다. 며칠 전 함께 연주한 곡, 드라마 <야에의 벚꽃(Yae no Sakura)>의 테마곡입니다."


바로 이어 나오는 대금 같은 관악기의 소리가 소름 끼쳤다. 생명을 불러일으키듯 무언가를 부르는 힘찬 소리는 마음에 무언가를 일으키는 것만 같았다.


영화 <마지막 황제(The Last Emperor)> 중에서 ⓒ COLUMBIA PICTURES
비가 흠뻑 내리던 날마다 늘 류이치 사카모토와 함께했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유작이 되어버린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괴물> 중에서 ⓒ 미디어캐슬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Merry Christmas Mr. Lawrence)>가 울려 퍼지는 작은 내 방, 싸이월드 화면 속 어디론가를 향하는 어두운 고속도로 이미지. 사카모토 전집을 구하는 친구 얘기를 하는 단짝이 앉아있던 비가 올듯한 고요한 풍경, 유튜브에서 본 <마지막 황제(The Last Emperor)> 속 강렬하고 서늘한 안경 쓴 창백한 남자의 시선, 영화 <코다(CODA)> 속 비 오는 후쿠시마의 거리의 사카모토, 누군가의 아픔을 공감하며 기도하는 소리, 추우니까 공연 중에 뛰어다녀도 좋다고 말하는 사카모토의 목소리, 그가 마지막으로 참여한 영화 <괴물> 속 숲 속으로 뛰어가는 요리와 미나토의 뒤로 들리는 <Aqua>를 듣던 날, 두려움과 아픔을 딛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용기, 타인을 이해하고 다가서려는 마음. 햇빛 보다 비가 더 많은 풍경들.


갑자기 모든 것이 몰아치듯 마음을 훑고 지나간다. 왜 그리 울컥한 지 눈물을 훔치며 스크린을 바라본다.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까지 앙코르곡을 마친 사카모토가 사라진다.


아쉬운 마음이 들 때쯤 엔딩 스크롤이 올라가는 스크린 앞으로 스태프들이 GV를 위해 분주하게 책상과 의자를 옮기기 시작했다. 이날 GV엔 월간 재즈피플 기자의 류희성 기자님과 재즈보컬이자 싱어송라이터인 박선주 님이 함께했다. 실황 연주로만 가득한 이 영화를 두 사람은 어떻게 바라봤을까.


류이치 사카모토에 대한 촘촘한 질문과 대답 속에서 음악 얘기로만 가득한, 행복한 한 시간이었다. ⓒ 직접 촬영(김도윤, PRISM REFLECTING)
"류이치 사카모토를 다섯 글자로 표현한다면?"
"위대한 소년"
대학에 입학할 무렵 프리 재즈 밴드에서 연주하던 사카모토는 전설적인 밴드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YMO)의 멤버로 데뷔한다. 위대한 소년의 시작. ⓒ YAMAHA

'위대한 소년'. 류이치 사카모토를 다섯 글자로 표현해달라는 질문에 박선주 님은 이렇게 답했다. 이보다 더 찰떡같은 표현이 있을까. 그 다섯 글자에, 류이치 사카모토가 전부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류이치 사카모토에 진심이었다.


이전에 유명한 배우, 감독, 기자가 운영하는 GV를 가본 적은 몇 번 있었지만, 이번만큼 GV로서 영화가 완벽해진 느낌은 처음이었다. 음악에만 푹 빠져 이야기를 나눠본 게 얼마나 오랜만인지.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만큼 행복한 게 없었다. 류희성 기자님과 박선주 님의 대담은 그간 쉽게만 들어온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을 새롭게 생각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류이치 사카모토, 1988년. (Sakamoto on stage in 1988.) ⓒ Photograph: Ebet Roberts/Redferns
Q.
음악가들의 음악가라고 불리기도 하는 류이치 사카모토.
장르로 구분을 짓기엔 아까울 정도로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들을 해온
그가 가진 음악적 힘은 무엇일까요?

두 사람의 대담 속에서 음악을 듣는 기쁨을 다시 한번 느낀다. ⓒ LIVET 시리즈(@livet_series)


"저를 그래서 부르신 거 아닐까 하는데. 사카모토 선생님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해요. 장르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 떠오르는 생각을 음악이라는 도구로 전달하기 위해서 가장 가까운 장르를 택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표현이 이 장르에 있기 때문에 장르를 택하는 거예요. 뮤지션으로서 사카모토 선생님의 입장이라면 그렇게 말씀하셨을 것 같아요. 너무 감사하게도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앨범에 수상을 받았던 <아포리즘(A4rism)> 앨범의 경우엔 20개 트랙이 다 다른 장르예요. 청중 입장에선 다를 수 있어요. 좋게 봐주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남과 여> 같은 거 20개 해주지. 왜 이렇게 복잡다단하게 넣었냔 반응도 있어요. 아마 선생님도 그냥 하고 싶은 표현 흐름에 맞춰서 가신 것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 그걸 우리가 장르로 나누고 싶었던 건 아닐까? 감히 말씀드리고 싶어요."


류이치 사카모토는 <Async>를 발표했을 때, '너무 마음에 들어 아무한테도 들려주고 싶지 않다."며 비로소 올라야 할 더 높은 산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 PROG
<seeing sound, hearing time> 전시 중 Ryuichi Sakamoto + Shiro Takatani, «TIME TIME» (2024) © KAB Inc.
류이치 사카모토, 음악으로부터 자유로워지다


"저는 그 부분을 영향받은 것 같아요. '지금, 이 순간. 내가 하는 것이 음악이다.'는 것이요. 류이치 사카모토 선생님에 대한 가장 큰 존경심은 그 부분. 한계선을 정하지 않고 본인이 가는 방향을 그때그때 맞춰서 간 것. 그게 사실 음악가로서 굉장히 어렵거든요. 히트곡 한 곡 더 내면 저작권도 더 나오고, 돈도 더 벌고 그렇게 되는데, 사카모토 선생님은 그러지 않으셨어요. '나는 사카모토니까 가고 싶은 데로 다 갈 거야.' 이런 게 아닌, 그 순간에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면 그 길을 가는 그런 모습이 저한텐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그런 모습이 제게 가장 큰 영향이 되어 주시지 않았나 싶어요."


사카모토의 음악적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영화 속 가장 강렬한 불협화음 곡이었던 <Anger> 코드 진행 방식, 악기 구성에 대한 설명을 시작으로 관객들의 질문들까지 굉장히 밀도 높은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다.

<류이치 사카모토|플레잉 디 오케스트라 2014(Ryuichi Sakamoto | Playing the Orchestra 2014)> 중에서 ⓒ WOWOW FILMS
<류이치 사카모토|플레잉 디 오케스트라 2014(Ryuichi Sakamoto | Playing the Orchestra 2014)> 중에서 ⓒ WOWOW FILMS
Q.
작곡을 배웠는데도 불구하고 <Anger>의 클라이맥스는 조금 듣기 불편해요.
불안정한 화음을 많이 쓰잖아요. 류이치 사카모토가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고 구사하는 작곡가가 아니라 실험적인 곡만 발표했어도 지금처럼 성공했을까요?

"박) 답을 이미 알고 질문을 해주신 것 같아서 제가 특별히 대답할 건 없는 것 같아요. 정확하죠. 음악을 하셨다고 하시고, 또 여기 계신 분들이 음악을 전문가 이상으로 좋아하시고 많은 정보를 갖고 계신다는 전제하에 감히 말씀드리면, 대중성이 음악성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학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그래요. "대중적인 코드를 쓰면서 대중적인 음악도 하고 싶고, 음악적인 실험성도 갖고 싶습니다." 이러면 1, 2학년 친구들의 귀때기를 잡고 이렇게 얘기하죠.


"대중성이 음악성이야.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음악은 그게 무엇이든 음악이 아니야."라고 이야기를 하거든요? 제가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거는, 류이치 사카모토 선생님이 몇 년 동안 어떻게 뭘 했고, 선생님이 몇 년에 어떤 곡을 발표했고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처음부터 그려온 길을 오셨기보다는 흐르다 보니 오셨을 경우가 많겠지만. <Anger>가 좋은 이유는 시작점에 있어요. 사실 뮤지션으로서 가장 질투 나는 부분이에요. 시작부터 이미 저희를 압도하죠. 한 곡조차도 누구에게나, 어느 나라에서나 이해되는 곡이지 않나 싶어요. 대중들. 우리 인간 본연의 마음을 건드리는 게 있어요. 존경하는 부분이에요.


만약에 <Anger>만 들으라 하면, 저도 Anger 할 거예요. 정말 정말 화날 것 같거든요? 음악을 하셨다니까 잘 아시겠지만, 굉장히 불편한 음악이죠. 음악에서 희로애락이 있으면, 극노(분노가 극에 달한)의 상태를 <Anger>로 표현하신 것 같아요. <Anger>는 코드 진행이나 구성에 있어선 굉장히 위험한 선택이기도 하죠. 음악가로서 그런 선택을 해주셨다는 부분이 후배로서 저희가 한 번 더 나갈 수 있는 마련해 주신 것만 같죠."

류이치 사카모토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중에서 ⓒ 직접 필사(김도윤, PRISM REFLECTING)
Q.
음악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음악을 듣다 보면 슬픔이나 아픔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찾다 보면 맞아떨어질 때도 있고요. <Anger>처럼 불협화음이나 작곡가들이 의도한 코드가 들어가서 청자인 제게 그렇게 들리는 건지 궁금해요.


"류) 일단은 음악을 들었을 때 즉각적으로 느껴지는 감정들이 있잖아요. 그게 저는 100% 전달되기는 좀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특히나 연주할 경우에는 더 그렇죠. 그렇지만 저는 거기에 되게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오히려 가사가 주는 직접적인 메시지가 없기 때문에 도리어 우리가 많은 걸 이입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어떤 슬픈 멜로디가 나왔을 때 각자 슬픈 이유는 제각기 다르잖아요. 누군가는 가족을 잃어서일 수도 있고, 누구는 강아지가 죽어서일 수도 있고, 이별을 해서일 수도 있는데. 작곡가가 느꼈었던 감정과 내가 느끼는 슬픔의 감정의 토픽(Topic, 주제)은 다를 수 있지만, 공유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연주자들을 인터뷰할 때, 곡에서 얘기하고 싶은 걸 제목 말고 우리가 알 수 없으니 소개해달라고 요청드리면 의외로 열어두는 걸 원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관객들이 공연이 끝나서 와서 누구누구가 생각나서 슬펐다던가 어렸을 때, 어머니와 어디 갔었을 때 기뻤던 생각이 났다고 얘기하는 게 너무 좋대요. 자기가 의도한 대로 일치하지 않아도 되고, 일치한다고 생각도 안 하지만 그렇게 느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건 굉장히 좋다고 했었어요.


실제로 그래서인지 더더욱 오픈을 안 하시는 분들도 있는 것 같아요. 여러분들이 이렇게 내 감정을 이입해서 내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고, 감상하는 게 되게 좋고 올바른, 건강한 감상법이라고 생각해요."

관록 있는 매끄러운 진행을 해주신 류희성 기자님 ⓒ LIVET 시리즈(@livet_series)
Q.
영화 속 장면 중에서 "어떤 저음의 목소리가 계속 들린다." "여러분은 세월이 변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사카모토가 팬에 대해 얘기한 부분 기억나시나요?
사카모토가 활발히 활동하던 때의 팬의 모습은 지금과 좀 다를 것 같아요.
SNS로 즉각적인 피드백이 오가는 현대사회에선 피곤할 수도 있을 텐데, 공연장이나 SNS에서 팬으로서, 감상을 나누는 게 조심스럽습니다. 어떻게 다가가는 게 좋을까요?


"박) 제가 아까 '시간을 훔친다'라는 표현을 드렸는데, 제가 만약에 여러분의 시간을 훔치면 그 시간은 어디로 갈까요? 제가 훔쳐서 주머니에 넣고 가져가지 않잖아요? 제가 시간을 훔칠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얘기는 그 시간을 저한테 주셨기 때문에 같이 있는 거거든요. 그 시간을 함께 같이 가는 거죠.


설령 훔쳤다고 치죠. 훔쳤어요. 그럼, 제 주머니 속에 우리 같이 있는 거예요. 저는 그런 것 같거든요. 음악이라는 게, 예술이라는 게. 음악뿐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음악이 됐건, 미술이 됐건, 영화가 됐건 어떤 모멘트에서 마치 접속되듯 - 서로가 연결되는 것. 그거를 '공감'이라고 많이들 표현하는데. 공감이 기본적으로 없다면 그건, 예술이 아닌 것 같아요. 아티스트와 플레이어가 무슨 차이냐 하면, 시간을 함께 공유하고, 시간을 함께 공감할 수 있고 그 시간을 거침없이 내어주어도 받을 수 있는 관계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저는 아티스트라고 생각해요. 그걸 팬이 했다면, 같이 재밌게 놀았다고 기억하거든요. 저의 무대에서도 그렇고, 공연을 할 때도 저는 그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박선주 님이 작사·작곡을 모두 맡은 좌) <남과 여>가 실린 <아포리즘(A4rism)>, 우) <사랑.. 그 놈>이 실린 바비킴(Bobby Kim)의 앨범 ⓒ 벅스(Bugs!)

사실 싱어송라이터로서 가장 힘든 건, 제게 실제 일어난 일을 작사·작곡·편곡을 했어요. 딱 들었는데 스스로 어머 너무 좋아! 하는 <남과 여>란 곡도 있고, <사랑.. 그 놈>이란 곡도 있고. 너무 많죠. 그 외에 사실 200 몇 곡을 발표했는데, 그렇지 않은, '너랑은 공감이 안 돼'라는 곡이 백몇 곡이 넘는 거예요. 그렇게 따지면.


제가 평생을 36년 동안 작곡가로서 있으면서 300곡 가까운 곡을 썼지만, 그중 결국 기억나는 몇 곡. 근데 그 곡이 사랑받기 때문에 '박선주'라는 싱어송라이터나 작곡가를 기억해 주시는 그 모멘트. 그게 제 첫 번째 옵션이 되어야 할 것 같고요. 그런 분이 저한테 와서 SNS를 쓰건, 옆에 와서 껴안건 뭐 뽀뽀를 하건 저는 너무 좋을 것 같거든요.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지만, 저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더라도. 이 공간에 앉아 있는 자체가 시간과 공간을 함께하고 있는 거니까. 어떤 행동을 해도 된다는 기본의 약속을 우린 하고 앉아 있는 거니까. 우리가 서로 위협하진 안잖아요? 그렇죠? 서로 위협하지 않고, 서로 간의 눈을 바라보면서 얘기하고 있는 이 공간. 이 공간의 거리. (줄을 세어보며) 둘셋넷다섯여섯일곱 칸에 계시잖아요? 저랑 멀어 보이지만, 제게 물어봤다고 해서 제가 그만큼 뒤로 가진 않잖아요. 이 물리적 거리감은 아티스트와 관객 간의 공간으로서 만의 간격이죠."

밀도 높은 답변으로 GV를 채워주신 박선주 님 ⓒ LIVET 시리즈(@livet_series)
"마치 류이치 사카모토 몇 분이 앉아계신 것만 같아요."


참고로 조금 덧붙이자면. 여러분들이 류이치 사카모토 선생님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아요. 지금 제가 Q&A를 받으면서 굉장히 수준도 높고, 깊고, 가볍지 않다는 표현보다 라이트(Light) 하지 않다고 해야 할까요. 굉장히 무겁지 않지만, 라이트 하지도 않다는 이런 느낌. 공기에서도 느껴져요. 마치 류이치 사카모토 몇 분이 앉아계신 것 같은. 지금 그 정도 수준이거든요? 제가 이렇게까지 Q&A에서 질문을 깊이 받아 본 적이 없어요.


도윤 씨가 어떤 아티스트를 좋아하신다면, 아마 도윤 씨랑 거의 같은 성향이실 것 같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그 아티스트를 좋아하는 거고. 그럼, 그 아티스트도 아마 도윤 씨를 좋아하게 될 거예요. 저의 생각은 그냥 가시면 될 것 같아요.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살아계시지 않은, 어떻게 보면 선배님이시자 류이치 사카모토 선생님을 좋아하시는 마음은 리스펙(Respect, 존경하는) 마음이라 생각해요. 이게 사실 굉장히 너무나도 놀라운 마음이거든요. 이건 쉬운 정도가 아니고, 굉장한 레거시(Legacy, 유산)고 굉장히 대단한 귀한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그런 마음을 갖고 계신 분들이라면, DM으로 감상을 보냈는데 그 사람이 씹었다면 저한테 DM을 보내세요. 제가 혼내줄게요. 도윤 씨, 충분히 그렇게 하셔도 돼요."

어떻게 세상을 바라봐야 곳곳에 류이치 사카모토가 앉아 있는 것만 같단 표현을 어떻게 할 수가 있을까. 난 아직도 멀었다. ⓒ 직접 촬영(김도윤, PRISM REFLECTING)

나는 죽은 자가 사람을 살리는 일은 사회 역사뿐만 아니라 예술에서도 일어난다는 걸 이날 느꼈다. 이 GV는 평생 못 잊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할아버지를 찾아줘서 고마워요.
작별 인사를 할 수 있었어요."
- <Kizuna World>와 함께 울려 퍼진, 기쿠타 신의「고마워요」 시 중에서
NHK 다큐멘터리 류이치 사카모토 중에서 ⓒ NHK

며칠 후 오늘처럼 비 내리던 날. 카페 구석에 앉아, 한때 재빠르게 사놓고도 좀처럼 펼치지 않았던 그의 자서전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를 꺼냈다. 그리고 이내 나는 그의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 그와 인터뷰하며 그의 죽음에 가까이 있었던 인터뷰 취재를 담당한 스즈키 마사후미의 말에 한참을 울먹거리며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


임종을 5일 앞두었던 3월 23일, 사카모토는 가족들이 곁에서 돌봐주길 바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폐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렇게 아프고 지쳤을 와중에도 본인이 대표로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도호쿠 유스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21일부터 26일까지 연달아 열리는 것을 빠짐없이 병원에서 원격으로 지켜봤다. 리허설을 포함해 진도를 했다. 링거를 맞으며 휴대전화 메신저를 통해서 말이다. 의사는 사카모토의 뜻대로 하도록 했다.

<Last Days> 중에서, 스마트폰으로 도호쿠 유스 오케스트라를 지켜보는 사카모토의 모습 ⓒ NHK
"26일 도쿄 공연의 온라인 중계를, 병상에 누운 채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실시간으로 보고 있던 때의 일이었다.

도호쿠 유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Kizuna World>와 함께 지진 재해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미야기 현의 기쿠타 신 씨가 쓴 「고마워요」라는 시를 요시나가 사유리 씨가 낭독하기 시작하자 사카모토 씨는 보이지 않는 지휘봉을 흔들 듯 누운 채로 오른팔을 허공에 흩날렸다."
문구들 고마워요.
연필, 각도기, 컴퍼스 소중히 쓸게요.

꽃의 모종 고마워요.
엄마와 함께 화분에 심었어요.
꽃이 피는 게 기대돼요.

부채 고마워요.
더울 때 부채로 부치고 있어요.

운동화 고마워요.
축구할 때 정말 차기 편해서 온 힘을 다해 달리고 있어요.

쿠키 고마워요.
집에서 맛있게 먹었어요.

참고서 고마워요.
앞으로 공부 열심히 할게요.

도서 카드 고마워요.
책을 많이 샀어요.

야키소바 만들어줘서 고마워요.
맛있게 많이 먹었어요.

교실에 선풍기 고마워요.
이제 공부가 잘돼요.

응원의 말 고마워요.
마음이 힘을 얻었어요.

마지막으로,
할아버지를 찾아줘서 고마워요.
작별 인사를 할 수 있었어요.

- 「고마워요」 기쿠타 신(가호쿠 신포 출판센터, 2012) 중에서
-『ありがとう』 菊田 心(河北新報出版センター刊・2012年)より
"마지막으로…"의 낭독이 시작되자 곡에 맞춰 허공을 맴돌던 오른손이 멈추더니 "작별 인사를 할 수 있었어요"라는 요시나가 사유리 씨의 목소리가 들리자 사카모토 씨는 그 손을 왼쪽 가슴에 가져다 대고는 "굉장하네… 이거 큰일 났다"라며 미처 목소리가 되지 못한 소리를 내며 통곡했다고 한다. 이것이 마지막으로 사카모토 씨가 마지막으로 지휘한 음악이 아니었을까‥."

- 류이치 사카모토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중에서
동일본 대지진에 휩쓸렸던 피아노를 보는 류이치 사카모토. 영화 <코다(CODA)> 중에서 ⓒ MUBI
동일본 대지진 이후 남겨진 피아노를 치는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CODA)> 중에서 ⓒ MUBI

"<Kizuna World>는 3년 전 3월 11일(동일본 대지진) 이후에 만든 곡인데요. 여러분도 그러셨겠지만. 저도 한동안, 거의 한 달 가까이는 음악을 듣거나 작곡할 기분이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이 곡은 그런 상태에서 3월 11일 이후 처음으로 만든 곡이기에, 저 자신에게도 굉장히 추억이 깊은 곡입니다."

- 류이치 사카모토 <Playing the Orchestra 2014> 중 <Kizuna World>를 소개하며


시 낭독 영상을 찾다가 NHK에서 그의 생전 마지막 다큐멘터리 <Last Days>를 찾았다. 한껏 수척해졌지만, 소년처럼 환하게 웃으며 브이를 그려 보이는 소년 같은 모습의 사카모토. 비록 공연장은 아니지만 침상에서 하는 지휘하는 모습은 영락없이 영화관에서 보던 다정한 미소의 사카모토였다.


그런 그가 이젠 힘껏 소리 내어 울지도 못했다. 그의 눈물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난 아마 평생을 그의 마음을 가늠만 해볼 수 있을 테다. 어떤 마음으로 작곡했는지, 그 마음이 어떻게 다다랐을지, 가장 아플 사람들 가까이에 늘 함께했던 음악가는 죽음을 앞두고 어떤 마음이었을까.


사카모토의 치료를 담당한 의사의 말에 따르면, 사카모토는 항암치료 부작용으로 인해 손가락 마디 끝에서 통증이나 저림이 오는 경우가 있어 건반을 누를 때나, 페달을 밟을 때 찌릿하고 전기가 흐르는 듯한 통증이 상당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사카모토는 치료에서도 음악 제작 활동에 어떠한 피해가 없길 바란다는 말을 전했다고 한다. 사카모토에겐 치명적인 통증이었을 텐데도 누구에게도 섣불리 말하지 않고, 기꺼이 자신의 음악을 남겼다.


Ryuichi Sakamoto <오퍼스(Opus)> 중에서 © KAB inc.
Ryuichi Sakamoto <오퍼스(Opus)> 중에서 © KAB inc.
"설령 위선자라는 비판을 받는다 해도
그로 인해 사회가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면 좋은 일이 아닐까 싶어서요."
- 류이치 사카모토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에 대한 세간의 거부감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사회에 목소리를 내는 사카모토에게 유한 반응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이름을 파는 것이 아니냔 부정적인 반응에 대해 자신의 이름을 팔 수 있는 이름이 있다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고 말한 사카모토. 나는 이 정도의 위대하고 힘 있는 사람은 두려움이 없을 줄 알았다. 있더라도 사카모토라면 지킬 수 있는 힘이 더 커서 언제나 당당하고 적극적이었을 거로 생각했다. 그런 사카모토도 두려움이 많았다.


사카모토는 1990년대부터 환경보호 활동을 해왔다. 영화 <코다(CODA)>에서 볼 수 있듯이 동일본 대지진 이후로 반원전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자객한테 당하기라도 하는 게 아닐까 싶어 조금은 겁이 나는 마음을 파트너에게 털어놨는데, 그럴 때면 파트너는 암살당하면 되례 여론이 반원전 쪽으로 쏠릴 테니 그건 그것대로 괜찮지 않냔 대답을 들으며 마음을 달래기도 했었다.


제아무리 사카모토처럼 대단한 사람도, 지휘를 배운 적 없는 아마추어라고 무시당하기도 하고, 사회에 목소리를 내면서도 두려워했다는 점이 뜻밖이었다. 난 그가 대단한 용기를 가지고 나서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Merry Christmas Mr. Lawrence)> 곡도 자신이 팬이었던 아티스트의 공연에서 앙코르곡을 기다리다가 팬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어 다시 연주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놀라웠다. 에고로만 가득한 아티스트로 계속 남을 수도 있었을 텐데, 누군가를 이해하는 마음으로 가장 낮은 곳에서 자신의 음악을 들려주고, 사회에 목소리를 내며 세상에 온기를 더하고 있었다.


저서를 읽으면 읽을수록 사카모토 같은 사람이 있을까 싶다. 작년 12월 계엄 때, 예술에 대한 무용을 생각한 적이 있었다. 어제까지 너무 사랑하고 즐기던 음악도 한순간 즐길 수 없었다.


쌀도, 비를 막아줄 우산도, 추운 날씨를 막아줄 이불도 집도 되어주지 못하는 예술이 무얼 할 수 있을까. 두려움과 막막함으로 가득하던 때 주변 예술을 한다는 사람들의 냉소적인 반응이 이어졌다. 정말 너무 실망스러웠다. "뭐요."라고 그런 곳에 왜 목소리를 내야 하냔 아티스트, 사람마다 각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말하는 인스타 스토리를 내리는 게 좋지 않겠냐며 다소 폭력적으로 보인다고 말하는 가까운 지인의 반응들까지. 이후로 나는 작곡가와 음악을 별개로 놓고 볼 수 없게 되었다. 민주주의에서 자유로운 음악을 하면서, 책임 없는 방종의 길을 걷는 아티스트에게 어떤 예술이 있겠는가.


사카모토가 대단하다고 느끼는 점은 그가 이룬 업적들뿐만이 아니라 음악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다. 사카모토는 내려다보는 사람이 아닌, 올려다보는 사람이었다.

"2023년 3월 28일, 세상을 떠나기 한 시간 전 의식을 잃은 뒤에도 마치 피아노를 연주하듯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었다." <Last Days> 중에서 ⓒ NHK
"2023년 3월 28일. 오전 4시 32분. 비가 내리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다." <Last Days> 중에서 ⓒ NHK

류이치 사카모토 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 생각할수록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린 것만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글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어떤 말로도 이 영화의 기억을 마무리 지을 수 없을 것 같다.

<류이치 사카모토 | 플레잉 디 오케스트라 2014> 예고편 ⓒ LIV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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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콘텐츠 및 원문 출처>
- 류이치 사카모토,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위즈덤하우스, 2023.
- NHK スペシャル <Last Days> 坂本龍一 最期の日々 (NHK 스페셜 라스트 데이즈 사카모토 류이치) (2024)
- <RYUICHI SAKAMOTO Playing the Orchestra 2014> DVD (2015)
- GV 내용 및 질의응답은 매끄러운 흐름을 위해 일부 수정되었습니다.
- 번역은 ChatGPT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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