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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모 Oct 11. 2021

몽중음

어느 날,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여기 산 이래 제 역할을 한 적 없는 초인종이 또 말썽인가 보다. 몸을 일으키려는데 생각처럼 움직여지지 않는다. 한 번 더 들리면 일어나야지. 부스스 떴던 눈을 스르르 감는다.





똑똑.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다음 노크를 기다리다 깜박 잠든 것 같은데, 그동안 계속 문밖에 있었던 걸까. 다른 사람인가. 누구지. 이 시간에 올 사람이 없는데. 이 도시에 나를 아는 사람은 다시 문을 두드릴 리 없는 너, 그리고 나뿐인데. 잘못 들은 건 아닐까.


생각해 보니 이상하다. 누워 있는 방을 넘어 현관까지는 꽤 거리가 있다. 현관문을 두드리는 것이 분명한데, 소리는 귀를 바싹 들이댄 벽 너머에서 한 노크인 듯 가깝고 선명하다. 영 서늘하다.





똑똑.

똑똑똑.


평소대로라면 현관으로 가서 확인했겠지만, 오늘은 좀 다르다. 거듭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어쩐지 오싹해 선뜻 일어날 수 없다. 대체 누구지.


아파트 관리인일까. 동대표나 부녀회장일까. 아니면 가스 점검이나 배수구 소독을 위해 온 담당자일까. 좋은 말씀 전하러 온 사람일지도 모른다김밥을 너무 많이 쌌다며 나눠 주려는 앞집 사람이거나, 인테리어 공사 소음에 대한 양해를 구하러 온 아래층 이웃이거나, 위층에 이사해 떡 돌리러 온 새 이웃일 가능성은 있을까. 집에서 누군가와 만나기로 한 약속을 잊은 것은 아닐까. 그것도 아니라면 혹시, 다시는 걸음하지 않겠다 돌아섰던 너일까.


몽롱한 머리로 생각해 낼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나열해 봐도 뭔가 이상하다. 문밖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구든 이쯤 되면 부재중이겠거니 하고 가야 정상이다. 지인이라면 전화를 하거나 메시지를 보냈을 것이고, 택배기사라면 문 앞에 두고 갔을 것이다. 그러면 누구지.


일단 비디오폰으로 얼굴이라도 확인해 볼까. 봤는데 아무도 없으면 어떡하지. 엄지공주나 소인국 릴리퍼트 사람이라면 시야에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을 거야. 칼이나 총을 겨누면 어쩌지. 현관문은 방탄 소재로 만들어진 걸까.


온갖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일단 몸을 일으키려는데, 감각이 둔하다. 이대로 서서히 굳어 돌이 되는 건 아닐까 싶은 순간 카프카의 변신이 생각났다. 망상 속에서 나는 한 마리 갑충으로 변한 그레고르였다. 어느 날 불안한 꿈에서 깨어나 보니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다만 크고 흉측하고 둔한 형체로 변해 있었다. 세상의 숨쉬는 모든 개체들로부터 철저히 고립되어 현관은커녕 방 밖으로조차 한 발짝도 나갈 수 없게 된 것이다. 그저 방에 갇혀 아직 꿈이라면 얼른 깨기를, 아니 영원히 악몽 속에 살기를,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변하기를, 아니 변하지 않기를, 구출되기를, 아니 이대로 숨이 멎기를 몇 번이고 바랐다.





똑똑똑똑.

똑똑똑똑똑.

똑똑똑똑똑또ㅡㄱ.


스타카토 자체인 그 소리는 모데라토로 시작, 알레그로를 넘어 아지타토까지 광기 어린 템포의 상승을 동반해 제멋대로 변주를 이어가고 있다. 세기는 줄곧 귀를 날카롭게 찌르는 포르티시모. 마디마디 마지막 음을 마침표처럼 눌러 찍는, 인상적이지만 그래서 더 괴이한 악상이다. 연주에 압도되어 숨이 가빠진다.


얼마나 흘렀을까. 격렬하던 연주가 열정을 잃고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한다. 이제 알레그로, 다시 모데라토를 넘어 안단테다. 마치 페이드 아웃처럼 세기도 여려지고 있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꿈결같이 멀어진다. 소리가 의식을 앗아가듯 혼곤하다. 붙잡아야 한다. 아니 그냥 놓고 싶다. 이대로 잠들면 끝도 없는 꿈을 꿀 것 같다.











..

또.....

..........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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