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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모 Oct 18. 2021

혼자 가는 여행 #0

가을소풍이라 부르기로 했어

혼자 가는 여행을 준비한다. 대단히 먼 곳도, 긴 여정도 아닌 1박 2일의 시간인데 가슴이 뛴다. 여행에서 가장 좋은 지점은 떠나기 전의 설렘이라는 말이 이번처럼 와닿은 적 있었나.


온전히 혼자였던 그간여행들과 달리, 이번 여행에는 새로운 이들과의 만남이 예정되어 있다. 몇 명일지, 어디에 사는 누구일지는 알 수 없다. 성별도 나이도 직업도 모른다. 여행지에 도착하기 전 예측 가능한 것은 아마도 낯익을 공간, 같은 이유로 반가울 얼굴들이 있다는 것, 나를 포함한 총원이 열 명 남짓 된다는 것, 둘 내지 넷으로 랜덤하게 조를 이뤄 저녁 식사와 불멍을 함께하게 된다는 것, 위스키와 칵테일과 특제 샌드위치가 아주 맛있을 것이라는 점 정도다.


가까운 지인들과 가본 적 있는 곳이다. 다섯이었다 넷이 된 1박 2일의 시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익숙한 사람들과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고, 나도 몰랐던 취향을 찾았으며, 도시에서는 불가능했을 이야기와 마음들이 오갔다. 단순히 즐거운 추억을 넘어선 무언가 남았다. 그래서인지 돌아온 뒤의 여운이 길었다. 찍어 온 사진과 영상을 거듭 들여다봤다. 여행에서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는 이야기가 무색하도록 기억의 색채가 옅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짙어졌다. 마음을 한 봉지 두고 왔다. 다시, 한 봉지 더 두러 혼자 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심까지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이다. 그러나 결정하고 나면 가속도가 엄청나게 붙는 류다. 백신 접종과 꼬리뼈 골절이라는 변수까지 더해져 지지부진했던 다짐은 2차 접종을 앞둔 어느 날 갑자기 예약으로 이어졌다. 공기가 차가워진 날이었을 것이다. 바람에 실려 온 가을이 내 버튼을 눌렀다.


이 여행을 위해 처음으로 프립을 써 봤다. 앱을 설치하려는데 이미 깔려 있다. 언젠가 또 지금 같은 마음이 있었나 보다. 적당한 날을 골라 결제부터 하고 찬찬히 공지를 살펴봤다. 앞서 다녀간 이들의 편지처럼 진솔한 후기와 정성 어린 답장들도 읽었다. 괜히 내 마음이 썸 타듯 쿵쾅댔다. '대원'이라는 호칭이 새삼 마음에 들었다. 휴가를 냈다.


일력을 넘기는 마음으로 날짜를 세다 보니 이제 꼭 열흘 남았다. 열 밤만 자면 소풍, 아니 여행이다. 이 설렘의 정체가 뭔가 했더니 어린 시절 소풍 가기 전의 그것을 빼다 박았다. 그래, 이것도 소풍이지 뭐. 내가 내게 선물하는 가을소풍. 꼬꼬마 적 나도 봄소풍보다 가을소풍을 더 좋아했다.


혼자 가는 여행인데 새로운 만남이 기다려진다. 서로에 대해 거의 아는 것 없이 만날 이들의 성별과 나이와 직업은 그다지 궁금하지 않다. 대신 어떤 경험들을 해 왔는지, 무슨 꿈을 꾸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앞으로 하고 싶은 것들은 뭔지, 각자가 느끼는 행복은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 나누고 싶다. 분명 나와 다른 길을 걸어왔을 것이고 또 걸어갈 이들과 한자리에서 대화할 수 있는 경험은 생각보다 흔치 않다. 그 다름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며 나도 한껏 솔직해져 볼 참이다.


소풍 며칠 전부터 잠 못 이루던 그때의 나처럼 신났다.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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