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카운터석에 앉기까지의 567일, 그리고 그 후
그 문을 열고 들어서자 세계가 확-하고 넓어졌다.
자타공인 길치이자 방향치에게 을지로는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하는 동네였다. 이직 전까지 계속 강남에서 직장생활을 해서인지 사뭇 다른 무드의 강북은 낯설었고 그중에서도 과거와 현재가, 역사와 도시가, 복고와 힙이 공존하는 을지로는 별세계 같은 느낌이었다. 옛 시절의 어느 때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듯 철물점, 인쇄소, 조명 가게가 빼곡한 골목 사이사이 간판도 없이 바랜 문을 열면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경험이라니.
광장의 문을 처음 열던 날이 생각난다. 처음을 기억할 수 있는 관계란 얼마나 운이 좋은지. 날이 막 더워지기 시작한 오월 중순이었다. 의식하지 않고 걸으면 지나칠 수도 있었을 좁다란 계단을 올라 유리문을 열었고, 어느 자리에 앉아도 내부가 훤히 보이는 공간이 나타났다.
와 푸르다, 가 광장의 첫인상이었다. 한쪽 벽 전체를 차지한 창들이 온통 푸르렀다. 나무에 봄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시기부터 광장의 창밖 풍경을 을지로 수목원이라 부른다는 것은 나중에 안 사실이다. 그 푸른 창 앞에 앉아 치킨남방정식, 함께 내어 주신 줄기콩 절임과 자차이에 한입맥주를 곁들였다. 뜸한 혼밥의 날이었기에 여유롭게 즐기고 싶었지만 저도 모르게 훌훌 마셨던 기억. (맛있어서) 아직 채 오지 않은 여름을 먹은 기분이었다.
이후 금요일 점심에는 혼자, 다른 저녁에는 지인들과 광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갔다는 표현보다 주기적으로 ‘다녔다’는 표현이 적합할 것 같다. 혼밥이 혼술이 되고, 둘이서도 가고 셋이서도 가고, 어떤 날엔 낮에 갔다가 밤에 또 가기도 했다. 어떤 날은 동료와, 어떤 날은 대학 선배와, 또 어떤 날은 취미를 공유하는 이와 광장을 찾았다. 을지로에 놀러 온 가까운 지인 대부분에게 광장을 소개했고, 하나같이 탁 트인 공간과 맛있는 음식과 음악이 녹아든 공기에 빠져들었다. 내가 그랬듯. 광장 안에서 나와 주변인들의 세계가 점점 넓어지기 시작했다.
한 지인은 광장에 오면 하루의 노고를 보상받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내가 처음 광장의 문을 열었던 날 남겼던 메모가 딱 그랬다. ‘금요일마다 자체 보상처럼 가고 싶다’
혼자 카운터석에 앉아 본 적이 없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일행이 있을 때 카운터석이 비어 앉은 적은 있었으나 혼자서는 용기는 나지 않았나 보다. 찐찐찐단골만 앉을 수 있는 왕좌처럼 느껴졌달까. 스스로를 단골이라 칭하기에 조금 쑥스러웠는 지도 모르겠다.
작년 마지막 달, 점심 첫 방문자가 되었던 어느 날 드디어 홀로 카운터석에 입성했다. 감히 단골석에 앉아도 될까 서성이는 내게, 광장장님께서 이 정도면 단골 맞다며 자리를 권해 주셨다. 어쩐지 카운터석처럼 처음이었던 혹가이도 함바그를 주문했는데 뒤에 오신 분들도 줄줄이 함바그를 주문하셔서 함께 조금 웃었던 기억이 난다. ㅡ후에 광장장님께서 보내 주신 연하장의 ‘카운터석 입문자’라는 호칭조차 너무 마음에 들었다.
광장장님과 온갖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카운터석은 내게 또 다른 세계였다. 그렇게 다시 한 번 창가에 머무르던 나의 세계가 넓어졌다.
특유의 안온한 분위기에 위로 받게 되는 곳. 혼자 앉아 있어도 전혀 외롭거나 불편하지 않은 곳. 내 을지로 라이프의 팔 할인 광장에서 광장장님, 미지의 단골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독립잡지 반도 3호에 실린 글의 원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