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현 Feb 21. 2019

글쓰기 가이드는 어떻게 써야 할까

배달의민족 글쓰기 가이드 제작 후기


어느 날 날벼락같이. 그러나 일어나야 했던 일.

"큰 회사로 가서 느낀,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5명의 스타트업에 있다가, 천여 명의 우아한형제들에 오고 난 후 가장 많이 받은 질문입니다. 스타트업 입사를 생각하고 계신 분들은, 작은 회사와 큰 회사의 차이를 많이 궁금해하시더군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얼버무리곤 했었는데요. 이제는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가이드입니다.


큰 회사는 많은 부분에 가이드가 만들어집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회사가 크니까요. 사람이 많으니까요. 가이드에 익숙해질수록 저는, 작은 조직도 가이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가이드는 하나의 목표를 바라보게 하고, 업무 방식을 통일하여 고민의 시간을 줄여줍니다.


입사 후 다양한 가이드를 받아 보았고, 저도 여러 가이드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이 가이드를 만들게 되는 날이 왔습니다. 네, '우아한형제들 글쓰기 가이드'입니다.


괜찮아.. 침착해..

우아한형제들은 회사의 이름입니다. 회사 안에는 다양한 서비스가 있습니다. 배달의민족, 배민라이더스, 배민마켓, 배민장부, 배달로봇 딜리, 아직은 밝힐 수 없는 미래의 서비스 X 등등이지요. 그리고 각 서비스 안에는 또 많은 부서가 있습니다. 회사가 커질수록 서비스와 고객들의 접점은 넓어지게 됩니다.


이 각각의 부서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글로 고객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배민라이더스의 오토바이 음식 보관통에 붙은 문구들을 디자인실에서 제작해서 바로 붙이는 경우도 있고요.

저의 식욕도 타오르고 있습니다.

배달의민족 앱에서, 사장님 사이트에서, 기능을 안내 할때도 결국 다 글을 써야 하지요.


이 때 톤앤매너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하나의 서비스에서 각각의 목소리를 내게 됩니다.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요. 그렇기에 가이드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모두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2018년 9월의 어느 날, 우리는 모이고 말았습니다. 장인성 이사님, 이승희, 강세영, 이성국 그리고 저. 이렇게 다섯이서요.

 

시작은 까페 구석에서..


그런데, 왜 내가.

왜 하필 저였을까요. 제가 뛰어나서! 라면 참 좋겠지만.. 다양한 포맷의 글을 다뤄봤기 때문입니다.


배달의민족에는 두 갈래의 타깃이 있는데요. 주문 고객님과, 가게를 홍보하는 사장님입니다. 저는 그중 '사장님'과 배달의민족을 잇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넓은 범위의 글로요. 그래서 운이 좋게도 월급을 받으면서, 다양한 포맷의 글쓰기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었습니다.


주 업무 외에도, 타부서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일도 잦았습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기능 안내 글부터 배너, 공지사항, 홍보문구, 경고문구... 다양한 포맷의 글들을 다뤘습니다. 그렇다보니 하나를 관통하는 가이드를 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여겨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꺼이, 제 경험을 토대로 가이드를 정리해보기로 했습니다.


물론, '다뤄봤다.'만으로 담당자가 되진 않습니다. 회사는 그런 곳이 아니죠. 쑥스럽지만 얼마 전 있었던 연말 평가의 한 구절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겠네요. 정말 어쩔 수 없군요^^


좋은 글을 쓸 줄 알고, 좋은 글을 쓰기 위한 고민을 즐기는 분입니다. 지현님 덕에 배민이 사장님들에게 전하는 이야기들이 훨씬 맛깔스럽고 쉬워졌습니다.
- 김용훈 이사님



좋은 글?

‘좋은 글을 위한 고민을 즐긴다.'라니. 좋은 글은 뭘까요?

개인적으로는 좋은 글, 나쁜 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각자의 취향에 맞는 수천만 가지의 글이 있을 뿐이죠. 하지만 마케팅을 위한 글은 다릅니다. 배달의민족이 쓰는 글은 다릅니다. 심사위원이 있거든요. 그게 저에게는 '사장님'입니다. 사장님들의 행동 변화를 끌어내고, 우리의 다음을 기대하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다른 심사위원들.

저의 심사위원은 '사장님'이지만, 다른 심사위원도 있습니다. 전체 구성은 이와 같습니다.


- 고객님께 글쓰기

- 사장님께 글쓰기

- 세심하게 글쓰기

- 홍보 기준에 맞는 글쓰기


'고객님께', '사장님께'는 역시 타깃(심사위원)을 기준으로 나눈 것입니다. 배달의민족의 키치한 문화는 이미 너무 유명합니다. 고객님께 글쓰기는, 이 문화를 담는 카피를 어떻게 쓸 수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배달의민족 크리에이티브 가이드인 '풉! 아~' 하는 포인트를 살리는 글쓰기에 대해서요.


‘고객님께 글쓰기’를 맡았던 성국님도 이야기하셨지만, 사실 글쓰기라기보다는 배민다운 '발상'에 좀 더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배민다운 '발상'으로, 고객에게 배민다운 '문화'를 지속적으로 전하기 위한 가이드인 거죠.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아한형제들은 문화를 지켜나가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거든요.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아..


‘사장님께 글쓰기’는 다릅니다. 사장님에게 유행어나 말장난을 쓸 수 없죠. 사장님의 연령대가 높아서라고 단정하실 수 있는데요. 저는 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장님과 배달의민족은 사업 파트너로서, 재미보다는 '신뢰'를 쌓아가야 합니다. 그런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가져가기 위해서는 자칫 가벼워 보일 수 있는 어투는 지양하는 것이 맞습니다.


'세심하게 글쓰기'는 배달의민족의 모-든 접점에서 중요한 것입니다. 남녀평등, 동물권, 인권, 환경 등등 다양한 사회 문제에 대해서 우아한형제들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이 고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고백컨대, 우리는 이미 몇 번의 실수를 했습니다. 아직도 오해하고 계신 분들이 있고요. 다시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 과정이 꼭 필요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마케팅을 위한 글을 쓰다 보면, 설득을 위해 수치들을 사용하곤 합니다. 사용자수, 주문수, 이익률 등등.. 저도 배달의민족의 다양한 수치들을 숙지하고 있는데요. 이 중에는 대외비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기준을 각각의 구성원이 개별적으로 결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때마다 대표님께 여쭤볼 수도 없고요. 그래서 홍보팀이 공개 가능한 데이터를 정해서 공유하는 과정까지 포함했습니다.


이렇게 우아하게 글쓰기 TF팀이 시작되었습니다.


시작하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  

가이드 역시, 하나의 콘텐츠입니다. 그리고 이 콘텐츠의 타깃은 사내의 구성원들입니다. 판매를 위한 콘텐츠의 경우 고객이 구매를 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가이드는 하나의 목표를 바라보게 하고 행동에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래의 두 가지를 신경 쓰며 작성했습니다.


사내의 구성원들이 가이드의 목적과 방향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끝까지 읽으며 행동으로 이어지게 할 수 있습니다. 서류를 위한 서류가 되어선 안되지요.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뜬구름을 잡지 말아야 합니다. 각 구성원들이 바로 따라 해보고 싶을 수준으로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손끝에서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가이드다운 가이드?

가이드라니, 모든 글쓰기 방법에 대해서 안내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열하며 쓰기, 강조를 위한 쓰기, 그리듯이 쓰기.. 온갖 글쓰기 방법을 이론화해서 적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장수가 늘어날수록, 담지 못한 이야기는 더 많아지고 있었습니다.


82장을 넘어가고 있었지만, 끝이 안나는 아이러니.


그 때, 장인성 이사님이 말했습니다.

"글쓰기를 다 설명하려고 하면 너무 장황해져요. 우리가 가이드 하는 이유에 집중해야 해요."


김지현 띠옹.


아, 저는 이 가이드를 왜 쓰고 있었던 것일까요. 구성원들에게 글쓰기의 테크닉을 알리려고 했던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글쓰기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개개인마다 각자의 글 스타일이 있습니다. 결론을 먼저 쓰는 방식을 사용할 수도 있고, 사례를 다섯 개쯤 든 후에 결론을 내릴 수도 있죠. 그런데 저는 이 하나하나를 다 이론화하고 있었습니다. 방대했지만, 전부를 다 담지 못하는 문서가 되어버린 것이죠. 철저할수록 내용은 이도 저도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글쓰기 테크닉을 설명하고 있던 부분을 모두 삭제했습니다.


다시 작성했습니다.

'이렇게 써야만 합니다.'가 아니라, 우리는 이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라는 ‘태도’에 대한 글로요. 사장님에게 우리의 진심을 전하려고 하면, 자연스럽게 그 이후는 정해지게 됩니다.


흐름은 명쾌해졌습니다.

- 우리는 사장님을 생각해야합니다. 왜?

- 사장님을 생각한다는 것의 정의

- 사장님을 생각하는 방법

- 생각을 글 쓰기에 녹여내는 다양한 방법

사장님에 대한 생각을 탄탄히 해두면, 그 이후의 글쓰기 방법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목장에 문구를 덧붙였습니다.



상품이라면, 마케팅해야죠.

앞서, 가이드도 콘텐츠라고 했습니다. 가이드가 콘텐츠 상품이라면, 더 많은 구성원들이 관심을 갖고 볼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위키에 올려두고, 찾아서 보세요. 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보도록 하긴 힘들 거예요. 챙겨봐야 문서는 한두 개가 아니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가이드를 널리 알리기 위해, 마케팅을 했습니다. 강의로요.


사내에 붙은 포스터.


같은 내용이라도 포맷에 따라 포장은 달라져야 합니다. 마케터들이 하나의 소스를 멀티로 활용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죠.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글에는 상세히 적어줘야 하는 것들이 있는데요. 말로 전달할 때는 표정이나 행동을 더해 갈음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강의용 PPT는 좀 더 사례와 이미지 위주로 간략하게 구성되었습니다.


간.. 간략하게


물리적 한계로 사내의 모든 구성원을 모실 수는 없었습니다. 아쉽게도 각 팀에서 한 명 정도만 참여할 수 있었어요. 120명 정도요. 하지만 강의를 들은 구성원은, 팀에 돌아가 내용을 전할 것입니다. 그 내용이 좋다면, 자발적으로 궁금증이 생기고, 보고 싶은 자료가 되겠지요. 그렇게 모든 구성원이 갖고 싶은 가이드가 된다면 성공입니다.


신청을 받았고, 다행히 빠르게 마감되었습니다. 다양한 팀에서 참석 의사를 밝혔습니다. '다양한 팀'은 다양한 포맷을 다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하나의 포맷에 집중하기보다는, 여러 포맷을 관통하는 하나의 태도를 전달하는 데에 집중했습니다. 경우의 수를 많이 이야기 할수록, 오히려 모든 걸 담지 못할 테니까요.   

 

'생각한다'의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일까요.



결과적으로 우리의 의도는 통한 것 같습니다. 유관부서에서 먼저, 가이드 자료를 요청하기 시작했거든요. 그리고 더 많은 사례들, 더 심화된 내용들을 요청하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적어도, 억지로 봐야 하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가이드가 되는데는 성공했습니다.


강의 후, 구성원들의 후기는 모두 감동적이었습니다.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요.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듣고 싶었던 후기는 '태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가이드의 목적과 방향이 그것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이 태도에 대한 후기는 저를 춤까지 추게 만들었습니다.


"오늘 강의 유익했습니다. '글쓰기 방법' 도 좋았지만 강의를 해 주신 세 분의 열정과 일을 대하는 태도가 멋있었습니다. 자신의 일에 깊은 고민을 하고 해답을 찾아내는 세 분의 태도를 보고, 일을 하는 제 자신의 태도에 대해서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글쓰는 방법, 고객과 소통하는 방법에 대한 좋은 팁도 얻고 일을 대하는 진심 어린 태도에 감동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그래서, 결론. 어떻게 써야 할까.

강의 이후, 가이드는 다시 정리되었습니다. 더 추가된 건 아니고요. 오히려 줄어들었습니다. 입 밖으로 꺼내고, 피드백을 나누다 보니 전해야 할 것이 명확해졌거든요. 그래서 최종적인 가이드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가이드의 마지막 장에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물론 가이드에는 사장님을 생각하는 글의 구체적인 사례들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그 사례들로 구성원들을 규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편일률적인 진심이 어디 있을까요. 다만, 글을 쓰기 전에 한 번 더 고려해보게 되길 바랬습니다. 사장님을 생각하는 글은 무엇일까. 하고요. 구성원 모두가 한 번씩만 더 고민한다면, 그리고 그 글들이 쌓인다면, 그것으로 이 가이드의 역할은 다한 것입니다.


가이드가 만들어진 이전과 이후의 정량적인 변화는, 아마 체크하기 어려울 거예요. 하지만 한 달 뒤, 두 달 뒤, 일 년 뒤. 분명 정성적인 변화들이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유의미한 변화가 생긴다면, 저에겐 또다시 업무가 생기겠지요. 가이드를 고도화해야 할 테니까요. 꼭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문서로 만들어진 가이드까지 공유를 끝내고 나니 속이 후련합니다. 하지만 바로 다음 프로젝트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번엔 사장님들을 위한 가이드입니다. 자, 조심스럽게 손목 운동을 시작해봅니다.


(끗)

우아하게 글쓰기 TF팀 잠정 해체.



매거진의 이전글 우아한형제들 개발자 채용을 위한 페이스북 한 달 운영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