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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현 Mar 19. 2024

J가 되고 싶은 P

즉흥적인 계획, 계획적인 즉흥?

"2023년도는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운 한 해였어!"

달 만에 만난 재윤이에게 한 말이었다.

사실이었다.

"요즘? 별일 없어. 그냥 잘 지내고 있어. 내 걱정은 안 해도 돼" 등의 안심시키기 위해서 한 말이 아니었다.



 

 22년도 12월, 입사를 계획했던 회사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 구직 영업전화가 걸려왔다. 평소 같으면 받지 않았을 텐데. 덜컥 받았다. 전화 속 남성의 목소리가 꽤 친절했고  홀린 듯 면접 약속을 잡았다. 면접을 보고 나오면서 지나쳤던 사람들의 표정에 그늘이 없어 보였다. 합격통보를 받기 전에 이미 마음속으로 입사결정을 했다. 그렇게 1월에 입사를 하게 되었다.


 입사 후 회사에 적응하기 위해 그림을 내려놓은 채 직장인으로 지내고 있었다. 3개월쯤 되었을 때 몇 년 전 지원사업을 통해 알게 된 담당자의 연락을 받았다. "도서관에서 강의를 해줄 수 있겠냐"라고 물었다. 내가 원하는 시간을 맞춰 주었고, 그렇게 긴 호흡의 강의를 수락했다. 몇 개월간의 강의가 끝나고 수강생들의 그림과 내 그림 몇 점으로 작은 전시가 진행되었다. 전시가 끝나곤 지원사업의 성과공유회가 열렸다고 했다. 성과공유회를 통해 다른 부서의 담당자가 내 그림을 보게 되었고 연락을 주었다. 그렇게 연말에 재단 후원자들에게 보내는 엽서북을 작업하게 되었다.



 2023년도가 마무리될 때쯤 깨달았다.
한 해가 내가 의도한 대로 흘러간 것이 아님을.

 일을 할 수 있음에, 닿았던 우연에 분명히 감사했지만 내가 주도한 것도, 계획한 것도 아니었다. 올해뿐만이 아니었다. 돌이켜보니 여태 흘러가는 대로 즉흥적으로 살아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년에도 난 똑같이 살아갈 것 같았다. 유유자적, 작심삼일. 나는 달라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J형의 삶을 꿈꾸기 시작했다.



다이어리요? 그냥 캘린더 앱 쓰는데..

  내가 생각하는 J형의 특징은 다이어리였다. 왠지 다이어리에 빼곡하게 기록하고, 계획을 세우고, 반드시 지킬 것 같았다. 근데 신기할 정도로 주변에 J형은 없었고, 특히 다이어리를 쓰는 사람은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다이어리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빼고. 결국 다양한 캘린더 앱을 소개받고 나서야 정반대의 길을 걷기로 했다.

 그 길로 영풍문고에 들러 두툼한 양지 다이어리를 구매했다. 다이어리를 제대로 써본 적도 없었기에 유튜브에 '다이어리 쓰는 법'도 검색해 봤다. 여러 영상들을 둘러보며 결론을 내렸다. 다이어리 작성은 '계획과 리뷰'라고. 뭘 할지 계획을 세우고, 리뷰하고 또 반성까지.


호기롭게 다이어리를 펼쳐보았다.


'어?'

'이거 어떻게 채우지?'


 현관을 나서면서 '오늘은 뭐 하지?' 하면서 살던 내게 빈 다이어리를 바라보는 건 막막함 그 자체였다.

'이걸 채워야 하나? 억지로 채우는 게 계획형인가?' 하고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너무 큰 다이어리를 산 걸까. 다이어리가 너무 빈곤했다.

억지로 채우기 위해 첫 번째로 짜낸 것은 독서였다. '그래 책을 읽자. 책은 읽으면 좋잖아?'

일주일에 한 권, 한 달에 4권, 일 년에 48권. 그럴싸했다.

첫 번째로 고른 책을 읽는 데에 2주가 걸렸으며, 두 번째 책부터는 속도가 붙어 첫 달에 목표했던 4권을 겨우 채울 수 있었다.


 현실은 1월 1일이 되었을 때 눈앞에 크게 다가왔다. 독서를 제외하고 도저히 세울 계획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유산균&비타민 먹기, 꽉 채운 물 한잔 마시기가 한동안의 계획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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