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그리울 때 서점으로 가는 이유
여행이 잠시 우리 곁을 떠난 요즘, 여행이 그리울 때마다 나는 파리 곳곳에 있는 서점을 찾는다. 예술이나 여행을 주제로 큐레이션 한 독립 서점뿐만 아니라 각 나라별 책을 모아둔 독립 서점이 많은 파리에서는 책으로 세계 일주가 가능할 정도이다. 그중 몇 곳을 소개해본다.
포르투갈과 브라질 관련 서적을 취급한다. 9,000권에 이르는 방대한 서적을 보유하고 있으며, 여행, 문학, 인문사회 분야는 물론이고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까지 찾을 수 있다. 1986년 문을 연 이 작은 서점은 놀랍게도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나라와 문학’이라는 단 하나의 주제로 30년 이상 유지되었는데 안타깝게도 프랑스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포르투갈 전문서점이기도 하다.
설립자 미셸 샹데뉴(Michel Chandeigne)는 포르투갈 서적을 전문으로 번역하는 출판사의 창립자이기도 하다. 그는 리스본에 있는 프랑스 고등학교에서 문학 교사로 일할 당시 포르투갈 문학에 매료되었다. 프랑스어로 번역된 포르투갈어 서적이 고작 10권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 포르투갈 문학을 알리고 번역하는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이 서점은 지역 사회에서 서점 이상의 역할을 해낸다. 작가 사인회, 번역가와의 만남, 음악회 등 작은 문화행사까지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규모는 작지만, 여행 전문서점다운 큐레이션이 돋보이는 곳. 당장이라도 여행을 떠나고 싶게 만드는 낡은 트렁크 가방과 책을 이용한 아기자기한 인테리어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러시아 문학 및 러시아권 나라에 대한 궁금증을 책으로 해소할 수 있는 장소. 러시아 출신의 오너가 운영하는 곳으로 빽빽하게 차 있는 책장과 높은 천장, 러시아풍 낡은 액자가 아름답다. 책뿐만 아니라 오래된 바이닐도 살 수 있다.
아프리카의 모든 것을 책으로 담아낸 곳으로 문학과 비평, 역사, 신학, 정치, 시사 등 모든 분야에 대한 책이 마련되어 있다. 소개한 곳은 전부 파리 5구에 있다. 현재 파리에는 760여 개의 서점이 있는데, 그중 240여 개의 서점이 5구에 분포되어 있다. 이 지역은 가히 ‘책 마을’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독립 서점이 많다.
아직도 서점에 가서 책을 사는 프랑스인들이 많은 편이지만 오늘날 인터넷 서점과 대형 서점의 공세는 작은 서점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거기에 코로나까지 겹쳐 올해 프랑스의 많은 서점이 문을 닫았다. 요즘 파리의 책애호가들은 동네 서점을 살리기 위해 대형 서점에서 책을 주문하는 대신 사이트(https://www.parislibrairies.fr)를 통해 동네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고 직접 찾으러 가고 있는데, 지역 상권을 한데 묶은 플랫폼이 인상적일 뿐만 아니라 작은 수고를 번거로워하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이 참 예쁘다.
독립 서점이 가야 할 방향에 대해 파리의 서점 주인들은 한 목소리로 말한다. 이제 서점은 단순히 책을 파는 공간이 아닌 특정 주제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고 교류하는 ‘문화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그래서인지 최근 많은 서점에서 독서 토론과 작가 강연회, 글쓰기 모임과 같은 책과 관련된 여러 문화 활동을 기획하고 있다. 최소 10년에서 30년 이상 한 자리를 지켜왔던 이 작은 서점에 깃든 철학과 역사를 지키기 위해 지역사회 전체가 상생을 도모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