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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연 Nov 26. 2016

시아누크빌(Sihanoukville)

적당히 붐비고, 적당히 들뜬 여행지

캄보디아에서는 '본옴뚝'이라 불리는 물 축제가 하반기에 크게 열린다. 몇 주 전부터 깐달과 프놈펜 강변에서 연이어 카누 대회가 열리더니, 이번 주에는 화끈하게 국가에서 연휴까지 주면서 축제를 거창하게 벌였다. 팀원들 모두 카누 경기에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이때다 싶어 시아누크빌(Sihanoukvile)이라는 바다마을에 가보기로 했다. 

씨엠립 갈 때와 마찬가지로 벤을 타고 이동했다. 어느 나라든 긴 연휴를 맞아 잠시 일상을 놓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도로를 가득 메우는 것은 마찬가지인가 보다. 4~5시간이면 가는 거리를 6시간이 넘어서 도착했으니 말이다. 좁고 불편한 좌석에 앉아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벤 안에서 우리는 여행을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지칠 대로 지쳐 버리고 말았다.

휴게소에서 잠시 내려 시원한 커피를 마시면서 목을 축이려고 했더니, 아무리 기다려도 내 차례가 오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이곳에서는 계산대에 먼저 돈을 들이밀어서 악착같이 내가 먹을 음식 값을 지불해내야 한다는 것을 10분이 넘도록 기다리고 나서야 알아챘다. 주문을 받는 점원조차도 누가 먼저 왔는지, 얼마나 기다렸는지 고려하지 않고, 눈앞에 서있는 고객의 주문을 먼저 계산하고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내가 서있는 곳이 줄이겠지", "언젠가 내 차례가 오겠지" 하면서 넋 놓고 기다렸던 것이다. 

멀미로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서 멍해지고, 복잡한 생각을 중지시킬 잠도 모두 소진됐을 즈음 우리는 드디어 시아누크빌에 도착했다. 모래사장에 발을 딛고 바라본 바다의 경치는 벤과 휴게소에서 받았던 스트레스를 말끔히 날려 주었다. 비수기라서 그런지 아니면 덜 알려진 관광지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시아누크빌의 바닷가는 딱 불쾌하지 않을 만큼 붐볐다. 또 군데군데 비어있는 관광지 특유의 공허한 공기를 시원한 파도소리가 메우고 있었다. 따스한 햇볕이 들고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곳이 훤히 보이는 곳에 우리는 미리 예약해둔 숙소를 발견했다. 매우 흡족한 선택이었다고,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생각했다.

시아누크빌에는 동양인보다 서양인 관광객이 더 많았다. 몇 달 동안 까만색 머리카락과 눈동자만 보아오다가, 오랜만에 명도 높은 외양의 서양인들에게 둘러싸여 있자니 상당히 어색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음식 선택지가 많아져 우리는 신이 났다. 시아누크빌 길거리에서는 중동 음식, 일본음식, 동남아 음식, 유럽 음식 등 전세계 요리를 모두 만날 수 있다. 저렴하면서도 다양한 음식점들 중 우리는 어디를 들어가야 하나 한참을 고민했다. 결국 선택한 것은 캄보디아에서 흔해 빠진 피자였지만.

하루 종일 쫄쫄 굶은 배를 두둑이 채우고 바닷가를 천천히 거닐며 한껏 여유를 즐겼다. 밤이 되어 번화가에는 네온사인이 켜지고, 오랜만에 접하는 향락과 유흥의 장면들에 우리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래, 잠시 쟁기와 소똥 생각은 접어두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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