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의 비밀은 여기에 있다.
맛있는 냉면집의 물냉면의 핵심은 시원 육수가 관건이다. 육수 맛에 따라 냉면 맛이 전반적으로 다른 맛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냉면뿐만 아니라 콩나물 해장국에도 어떤 종류의 육수를 사용하여 끓이느냐에 따라 한결 맛이 달라진다. 갈치조림이나, 고등어조림, 각종 찌개를 만들 적에 어떤 종류의 육수를 사용하여 만드냐에 따라 그 집의 음식이 제대로 평가를 받느냐 못 받느냐가 좌우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름난 음식점의 전통적인 육수 제조법은 직계 가족에게조차도 비공개가 원칙이다.
육수를 만드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고기나 생선 그리고 각종 채소류, 과일 외에 한약재 등이 포함되어 오랫동안 끓이면서 얻어낸 국물을 이용한다는 점이다.
20세기 초 전후 셰프 중의 셰프로 명성을 날린 프랑스의 오귀스트 에스코피(1846~1935)는 “실로 육수는 요리에서 모든 것에 해당된다. 육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좋은 육수를 만들면 나머지는 식은 죽 먹기다.”라고까지 말할 정도였다. 그는 설탕이나 소금, 식초 등을 일체 넣지 않고 단지 살점이 없는 힘줄과 소의 꼬리, 셀러리 대궁, 양파와 당근을 다듬고 남은 자투리들을 이용하여 깊은 맛이 우러날 때까지 푹 고았다. 이것을 바탕으로 다른 요리를 만들 때 밑바탕으로 사용하였는데 고객들의 만족도는 최고였다. 그는 당대 프랑스 레스토랑과 유명 호텔에서 최고의 맛을 요리하는 셰프로 정평이 나 있었다.
이런 재료들을 푹 끓이면 어떤 성분들이 나오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MSG 성분이다. 미역을 오랜 시간 동안 끓이면 맛이 좋아지는 것처럼 육수 재료로 고기로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부분이나 채소의 경우도 버리는 부분의 식재료에 해당하는 것들이지만 이것을 오랜 시간 우려내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맛 성분이 나온다고 믿었던 것이다.
사실 동물이나 사람을 구성하는 단백질 중 가장 많은 아미노산이 바로 MSG 성분인 글루탐산이며 채소에도 이런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 그러나 동물의 경우 글루탐산은 유리된 형태로 존재하기보다는 다른 성분들과 강하게 결합하고 있어 짧은 시간 우려내어 보아야 글루탐산 성분이 많이 나오지는 않기 때문에 보통 12~24시간 푹 삶아야 하는 것이다. 오랜 열처리 과정을 거치면서 단백질의 변성과 분해를 유도해 내고자 하는 것이다. 반면 채소의 경우 글루탐산의 전체적인 양은 많지 않지만 유리된 상태로 존재하는 글루탐산이 육류보다도 훨씬 많아 짧은 시간 동안 끓여도 충분히 맛난 맛 성분이 우러나는 효과를 얻게 된다. 그러한 이유로 고기는 오랫동안 삶아 끓이는 반면 채소를 첨가하면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가열 처리를 하여도 우리가 원하는 구수한 맛을 기대할 수가 있다.
<토마토와 토마토 해산물 스파게티>
그런데 채소 중에서 글루탐산이 가장 많은 채소 다름 아닌 토마토이다. 이런 이유로 지중해식 요리에서 토마토를 넣고 끓인 요리로 파스타 요리를 비롯하여 많은 요리에 토마토가 사용되고 있으며 한결같이 가열 과정을 통해 글루탐산의 유리된 형태가 음식의 국물 부분으로 이행되어 마치 MSG를 첨가한 것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가 있다. 토마토의 라이코펜 성분도 가열 처리하였을 때 오히려 우리 몸에서 더 많이 흡수되는 이유도 유사하다. 여기에 올리브유를 첨가하면 더욱 효과를 기대할 수가 있다. 이런 이유로 서양요리에는 토마토가 첨가된 다양한 요리들이 있다.
한 번은 수제비를 만들어 먹고 있는데 유럽에서 온 친구가 “수제비 제조하는 데에 토마토를 넣어 끓여 보라”라고 권하였다. “무슨 토마토를 수제비에 넣느냐! 맛이 이상할 텐데” 처음엔 설마 이것이 조화를 이룰까 염려하였지만 생각하였던 것보다도 훨씬 더 맛이 있었다.
그렇다! 육수의 맛은 바로 이 글루탐산, 즉 MSG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여겨지며 각 주방의 비법이라고 하는 것은 경험을 통해 과연 어떤 채소에 글루탐산이 유리된 형태로 많이 함유되어 있는가를 나름 파악하고 있는 것이라 여겨진다. 지금처럼 화학물질을 분석할 수도 없었던 시절이나 상황에서 글루탐산의 분석 치를 토대로 레시피를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것저것 넣어 만들어 보면서 어떤 식재료들이 첨가되거나 만났을 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가를 알아내고 자기만의 비법 레시피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일본에서 처음 아지노모토(감칠맛 성분인 MSG)가 생산되기 시작한 1910년대 이를 조선과 만주, 중국에까지 판매를 확대하고자 노력한 적이 있다. 일본인들이 생각해낸 타깃은 국물에 혼합할 수 있는 것이 냉면이었다. 간장이나 장 혹은 김치를 통해 발효의 감칠맛을 오랫동안 즐겨왔던 우리 민족입니다. 겨울철에 동치미국물이나 백김치를 냉면에 넣어 만들 땐 문제가 없으나 냉장고가 보급되지 못한 시절인지라 여름철에 제맛을 내기가 어려웠습니다. 식량이 부족하였던 일제치하 시절엔 충분한 재료가 부족하고 동치미국물이나 백김치를 사용하는데 한계가 있다보니 냉면의 맛은 밋밋하였다. 여기에 감칠맛을 내는 아지노모토(MSG)를 첨가하니 훨씬 맛이 좋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즐기기 시작하자 일본인들은 평양에 냉면 가게를 내고 또 국수집을 운영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평양면미회를 비롯하여 경성면미회, 원산면미회, 인천면미회 등을 조직하여 냉면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MSG를 첨가하여 냉면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고 이의 사용을 격려한 적이 있다. 한마디로 아지토모토를 판매하기 위한 전략에 하나였다. 이 당시 우리들의 입맛은 다양한 식재료가 부족하여 맛도 다양한 것을 즐길 수 없었던 시절이라 색다른 맛에 흠뻑 빠지기 시작하였고 이렇게 우리들의 입맛도 MSG에 차츰 익숙하게 변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시절 평양냉면이 맛있는 음식으로 소문나자 많은 사람들이 이를 찾아 나서기 시작하였다. 오늘날 우리가 기억하는 동치미국물로로 만든 평양냉면의 맛도 결국은 육수에 포함된 MSG를 통해 감치맛을 느끼는 것과 유사하며 MSG를 직접 넛거나 아니면 다른 음식재료를 우려내어 MSG를 추출한 것을 사용함으로써 감칠맛을 내는 맛있는 냉면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화학조미료라고 기피를 해 온 것이지만 실상 우리 몸을 구성하고 우리 뇌에서도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글루탐산이 바로 MSG로 우리 몸에 이것이 부족하면 글루탐산의 원활한 공급을 원한다는 메시지를 뇌로부터 받게 되면 맛난 맛이 있는 것을 찾아 먹으려고 하였던 것이다. 우리 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면 결국 이것을 먹고 싶어 하고 우리 몸에 필요하니 빨리 공급을 해 달라는 요구이기도 하다.
육수의 핵심은 바로 이 MSG이며 어떤 재료를 통해서 보다 더 많이 추출해 얻어낼 것이냐 하는 문제와 부수적으로 다른 식재료 성분들과의 상호 조화가 또 다른 육수의 비결로 남아 있는 것이다. 구태여 MSG를 사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처음으로 음식점 사업을 스타트업 하고자 한다면 우선 먼저 육수의 비법을 어떻게 가지고 갈 것인가를 고민해 보아야 한다. 여기에 성공의 열쇠가 숨어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