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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졍 Jul 04. 2020

오랜만에 꽤 괜찮은 드라마를 발견했다

tvn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


지금까지 살면서 최종회까지 본 드라마는 몇 편 되지 않는다. 손으로 세어 보라고 해도 셀 수 있을 정도로 인상 깊게 본 드라마 수가 적다. 숨도 못 쉬며 첫 화부터 마지막 화까지 손에 땀을 쥐어가며 봤던 <나인>이나 프랑스 풍경 보려고 시작했던 <더 패키지> 등 몇몇의 드라마를 제외하고는 내 인생의 드라마라고 할만한 드라마가 많지 않다. 더군다나 넷플릭스라는 좋은 플랫폼을 이용하고 있으면서도 드라마 한 편을 제대로 정주행 해서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런 내가 푹 빠져들어 보게 된 드라마가 생겼다. 그 드라마는 바로 서예지, 김수현 주연의 TVN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이다.

 <구해줘>라는 드라마에서 처음 서예지라는 배우를 알게 되었고, 그때 연기력에 반해 팬이 되었다. 이후로 믿고 보는 배우가 되었다. 그래서 이 배우가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역할을 어떻게 소화할지가 궁금했고, SNS에 돌아다니는 범상치 않은 예고편을 보고는 결심했다. 오랜만에 드라마를 한번 시작해볼까? 하고.



드라마는 총 4 회차째 접어들고 있는데, 다른 드라마와 달리 질질 끌어서 사람 속 태우는 일이 없어 좋다. 또 주인공들이 뱉어 내는 대사들이 시원시원해서 사이다를 벌컥 마시는 것 같이 시원하고 짜릿하다. 대사뿐 아니라 드라마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독특한 연출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 드라마에서 단연 돋보이는 연출 중 하나는 요즘 드라마 답지 않게 자칫하면 유치해 보일 수 있는 나름(?) 귀여운 CG들을 많이 사용한다는 점이다. 또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남자 주인공의 형, 문상태의 시선에 비친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동화적인 연출도 독특하다. 또 과거 회상 장면이나 고문영이 본인의 고향집을 찾아가면서 자주 보이는 으스스하면서 환상적인 장면 묘사들이 이 드라마의 묘미이자 꽃이라고 할 수 있다.  


드라마를 볼 때 연출뿐만 아니라 드라마의 몰입도를 높여주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캐릭터의 개연성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은 왜 그런 성격이나 심성을 가지고 있는지, 그렇게 행동하는 동기는 뭔지 등을 개연성 있게 잘 풀어내야 캐릭터의 완결성이 더 높아진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극 중 남자 주인공인 문강태(김수현 분)와 여자 주인공 고문영(서예지 분)의 캐릭터는 비교적 완결성 있게 형성되어 있다. 과거 둘의 이야기를 중간에 삽입해 보여주며 그들이 왜 그런 성격이나 태도를 가지게 되었는지 보여주면서 개연성을 높였다. 두 주인공 모두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받았던 학대나 결핍 때문에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둘의 사연은 다르지만 어린 시절에 겪은 트라우마로 인해 겉모습은 어른이지만 정신적인 측면은 어렸을 때 그 시절에 갇혀 자라지 않은 아이의 모습이 보인다. 이렇게 이 드라마에서는 심리, 감정의 문제를 주되게 다루고 있는데, 등장인물들의 에피소드들을 통해서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나 결핍, 정신병적 기질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우리는 항상 정신병자와 아닌 자를 정상인인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이분법적으로 나누는데, 이 드라마를 통해서 그 구분이 사라진다. 정신병동 안에 있는 사람이나 밖에 있는 사람들 모두 아프다는 것이다. 드라마 속에서 정신병동 환자나 비환자 구분 없이 모두 병든 사람임을 은연중에 보여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캐릭터에 개연성을 부여해주는데 일조하는 건 연기자들의 뛰어난 연기력이다. 처음에 이 드라마를 보게 된 동기였던 고문영 역을 맡은 서예지 배우 연기가 빛을 발하며 드라마를 주도적으로 끌고 가고 있다. 저음 보이스로 전달력 있게 내뱉는 대사나 맞춤복을 입은 것처럼 찰떡같이 역할을 소화해내는 연기력이 일품이다. 그리고 자폐인을 연기하는 오정세 배우도 이 드라마의 관전 포인트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한 얼굴 이면의 아이 같은 모습을 잘 표현해낸다.

또 연극계에서 익숙한 연극배우들이 이 드라마에 많이 출연한다. 김주헌 배우부터(김주헌 배우는 이미 방송계 인물이라고 봐도 무방하겠지만) 강기둥, 강지은 배우 등 연극계에서 연기력이 입증된 배우들이 나온다. 앞으로 그들이 펼칠 에피소드나 연기도 기대가 된다.


"자폐인에게 가족이란 가장 가까운 타인과도 같다"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문상태(오정세 분)와 문강태 형제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다. 극 중에서 자폐인인 문상태가 동생 문강태에게 "자폐인에게 가족이란 가장 가까운 타인과도 같다"라는 말을 한다. 나의 자폐인에 대한 정보나 지식이 전부 TV나  인터넷 등에서 간접적으로 전해 들은 단편적 지식이 다라서 말하기 조심스럽긴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폐성을 가지고 태어난 그들만의 언어나 세상을 이해하기 힘든 것처럼, 우리 모두는 각자의 세계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전부 이해할 수 없지 않을까.


4화 장면 중에 문강태가 고문영에게 쏘아붙이듯 "넌 난 몰라"라고 하는 대사에서 불현듯,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실격>이 떠오르기도 했다. 이 소설에서 제일 좋아하는 구절인데, 거기서 이런 화자의 독백이 나온다. "아아, 인간은 상대를 전혀 알지 못한 채 완전히 잘못 보고 있으면서도 둘도 없는 친구라 하고 평생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상대가 죽으면 울며 조사나 읽는 것은 아닐까요." 사람은 서로가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할수록 그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가까운 친구나 가족일수록 더 모르는 게 사람의 마음인 것 같다. 단지 그 세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만이 최선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같은 자식인데 하도 투명 인간 취급하길래 그냥 그냥 나 좀, 나 좀 제발 나도 좀 봐달라고 미쳐 날뛰다가요 그러다 진짜 미쳐버렸습니다. "      


 4화에서 권기도(곽동연 분) 에피소드가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정신병원에서 도망 나온 권기도가 국회의원 후보인 아버지 유세 현장에 뛰어 들어와 무대에서 마이크를 잡고, 가족들이 자신에게 한 행동과 그로 인해 자신이 탈선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쏟아낸다. 그러고 나서 그는 벌거벗은 채로(외투를 걸치긴 했지만) 춤을 추고 신나 하며 무대를 휘젓고 다닌다. 그런 그를 잡기 위해 경호원들이 같이 뛰어다니는 장면이 그려진다. 그 장면에서 권기도의 얼굴이 문강태의 얼굴로 바뀌며 현실과는 달리 살고 싶은 문강태의 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들뢰즈가 말하는 도주선, 탈영토화가 이런 모습일까? 드라마 장면 하나로 들뢰즈를 들먹이는 게 너무 논리에서 벗어나거나 비약일 수도 있겠지만, 정형화되고 코드화 된 것을 부정하고 탈코드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들뢰즈의 말이 생각났던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우리 모두는 정해진 규칙과 규범 속에서 혹은 정상인이라고 정한 범주 안에서 행동하고 살아간다. 가깝게는 내 모습을 먼저 떠올려 볼 수 있었는데, 싫어도 웃어야 하고 누군가의 비위를 맞추고, 자리마다 지켜야 할 예의와 격식을 차려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왔던 모습들이 떠올랐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테고) 그런데 이런 코드에서 벗어난 사람이 정신병원을 오고 가지만 현실세계에서 비정상인으로 낙인찍힌 권기도다.


권기도 캐릭터뿐 아니라 범상치 않은 캐릭터들이 이 드라마에 많이 등장하는데, 특히 고문영의 캐릭터가 그렇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할 말, 못할 말 구분 없이 다 직설적으로 쏟아내고 남이 상처를 받건 말건 본인이 꽂히는 대로 행동하고 말하는 캐릭터다. 입고 싶은 대로 입고, 갖고 싶은 건 훔쳐서라도 갖는다. (고문영의 화려한 스타일과 말투에서 잠깐 한예슬이 연기했던 환상의 커플의 나상실이 생각나기도 했지만 그와는 전혀 다른 존재감을 가진 캐릭터다.) 도도하고, 까칠한 성격을 가지고 독설을 내뱉는데, 이 독설은 타인을 각성하게 하기도 한다. 정의감이나 사람에 대한 연민도 있어 결핍이 있긴 하지만 나름 이상적인 인간상이란 느낌도 들었다. 인간이란 어쨌든 완벽할 수 없기에.


이렇게 캐릭터들이 살아 움직여서 좋고, 매회 갱신될 대사들과 에피소드들이 기대되고 기다려진다. 또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나비의 의미와 고문영과 문강태가 치유되어 갈 과정도 궁금하다.

오랜만에 (나에게만큼은) 평범하지 않은 드라마를 만나게 되어 기쁘다.


두서없이 감상평을 쏟아내었지만 어쨌든 하고 싶은 말은, 이 드라마 볼수록 매력이 있고, 곱씹을수록 매력 있다는 것. 여러 가지 논란에 휩싸이며 낮은 시청률을 보이고 있지만 나에게만큼은 꽤 괜찮은 드라마라 (중간에 큰 실망을 주지만 않는다면) 이번엔 최종회까지 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과 함께 다음화를 기다리고 있다.


#사이코지만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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