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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졍 Mar 16. 2020

엽편 분량_다를 리 없는

다를 리 없는



낮엔 온통 눈으로 덮여 땅과 하늘의 경계선이 구별도 되지 않는 풍경, 검은 물감을 뒤집어쓴 듯한 밤의 풍경, 이 모든 것이 낯설다. 통나무로 얽고 천으로 덮은 집, 눈으로만 보았을 때 너무나 허술해 보이는 이곳은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이 매일 밤을 지내는 집이다. 강한 태풍이라도 오면 쓰러져 버릴 것 같아 보일지 몰라도 거의 매일 밤을 이곳에서 보내본 사람은 이 집의 안전성을 믿는다. 어쩌면 집의 안전성 믿는다기보다 그 안전성을 믿는 그들 자신을 믿는 것일지도 모른다. 집 한가운데에는 주춧돌만큼이나 중추적 역할을 하는 난로이면서 가스레인지인 기구가 높게 솟아 있다. 이 난로로 말할 것 같으면, 낮에는 음식을 해 먹는 가스레인지가 되기도 하고, 추운 계절에는 몸을 덮이는 난로가 되기도 한다. 생존의 한 양식 안에서 생활하는 그들이다.


그녀에게는 어제와 다를 것 없는 오늘인데, 평소와 다르게 일찍 일어날 수밖에 없는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큰 잔치가 있는 날이다. 아침 7시부터 마을 사람 모두 한 마음으로 들떠 주변이 소란스럽다. 앞집의 옆집, 옆집의 건너편 집의 수르하의 결혼식이 있어 그렇다. 정확히 말하면, 아파트처럼 한 라인을 줄지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이 표현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녀는 ‘나랑은 전혀 상관없는 일이지만 축하하는 얼굴을 하고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 하며 따분하게 생각했다. 오늘도 침상에서 일어나 세면대라고 하기엔 조촐한 곳에서 쫄쫄 흐르는 물에 손을 적시며 얼굴을 씻는다. 이제는 저 건너 나라 물건들도 제법 들여오는 도시에서 사 온 화장품이라는 것에 재미 들여 있는 터라, 작은 집 안에 들여온 화장품으로 치장을 한다. 굳이 화장품 모델들처럼 볼에 빨갛게 물을 들이지 않아도 안과 밖의 온도 차 때문에 그녀의 볼은 자연스럽게 홍조가 든다. 그녀는 자신의 볼에 홍조가 드는 모습을 정말 싫어한다. ‘왜 내가 싫어하는 모습을 하고 남들 앞에 서야 하는지를 모르겠어.’ 그녀는 평온을 주고 소위 말하는 ‘먹고 살 걱정을 덜어줄 사람’을 만나기를 고대하지만 때로는 이렇게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면 볼에 홍조가 일어있고, 저녁 5시만 되면 잠잘 채비를 하는 일상에 습관이 되어있는 자신을 벗어나기를, 쭉 살아온 곳과 다른 차원의 도시로 데려다 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결혼하는 기쁨에 한껏 젖어 있는 수르하의 날,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채비를 하고 있다. (마을이라고 해봤자, 게르 몇 군락이 고작이지만) 손님, 지인 할 것 없이 평소에 자주 먹기 힘든 음식들을 준비하고, 한창 준비 중인 신부와 신랑을 기다리고 있다. 결혼식의 주인공은 그들인데, 마을 사람들이 더 들떠 보인다. 그런 모습을 보고 그녀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한 명도 빠짐없이 (아니 어쩌면 한 명 정도는 무심한 감정일지도 모른다.) 모두의 축하를 받으며 생애 한 번뿐인 결혼식을 하는 건 어떤 기분일까?’. 그녀는 결혼식 날 단장을 하고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잠깐 상상했다가,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상상 속에서라도 그녀 옆에 서 있는 남편의 얼굴이 보였으면 싶지만 상상력이 부족한 탓일까 혼례복을 쭉 훑는데 딱 얼굴 전에서 시선이 멈춘다.


결혼식이 시작됐다. 결혼식 풍경을 쭉 돌아보다가 그녀는 이런 생각을 한다. ‘겨울의 결혼식은 여름에 하는 것과는 또 다르군’ 하고. 결혼식은 이례없이 다른 결혼식과 똑같은 식순과 방법으로 진행됐다. 그녀는 나른함과 함께 따분함을 느꼈다. 신랑, 신부가 서약의 말을 순서대로 주고받으며 결혼의 신성함과 신뢰를 다지는 모습을 손님들에게 전부 다 보여주고 난 뒤에야 식이 끝났다. 그리고 결혼식의 꽃, 식사 시간이 시작됐다. 식사는 모두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준비된다. 며칠 전에 잡은 양고기와 채소들을 가지고 솜씨 좋다고 소문난 동네 여자들 몇몇이 음식을 준비한다. 그 사이에 그녀도 어설프게 재료를 씻는 정도의 일손을 거든다. 모든 재료가 준비되고, 화로에 재료들이 다 들어가 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그녀도 모르게 잘 익어가고 있는 음식에 소금을 한 주먹만큼 집어넣었다. 물론 양념은 이미 그전에 간을 다 해두어 굳이 양념을 할 필요가 없는 음식이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무도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모두들 신랑, 신부에 대해 떠드느라 음식이 어떻게 익어가고 있는지, 양념은 뭘 넣었는지조차 잊고 있는 듯했다. 그렇게 음식은 푹 익어갔다. 음식이 완성되고, 혼례도 막바지에 다다랐고, 음식을 나눠 먹는 시간이 왔다. 넓게 둘러앉아, 오늘의 메인 요리인 -이 각자의 그릇에 옮겨졌다.  기분 좋게 한 입을 뜬 손님들의 얼굴이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변했다. 그러나 이내 모두들 표정을 바꾸며, “오랜만에 먹으니 맛있군. ”, “얼마 만에 먹어보는 거야”, “역시, 결혼식에 먹는 -이 최고다.” 라며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찬사들을 했다. 그런 그들의 표정을 보고 그녀도 한 입 떠 넣었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렇게 짠 음식을 먹고도 저런 표정을 지을 수가 있나? ’.  물론 그녀가 저지른 일 때문이긴 했지만 그녀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곧이어 전통 혼례복을 차려입은 신랑, 신부가 손님들에게 다가왔다. 수르하는 실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며, 자신의 결혼을 축하하러 온 손님들 한 명 한 명 눈을 맞추며 많이 먹고 가라며 모두에게 친절하게 말했다. 그런 그의 말에 똑같이 웃으며, ‘정말 축하한다, 앞으로 행복하게 잘 살아’와 같은 형식적인 축하의 말들로 화답했다. 수르하와 그의 신부가 그녀에게도 다가왔다. 그녀가 먼저 “축하해”라고 말하자, 수르하보다 먼저 그의 신부가 웃으며 “와줘서, 고마워요. 많이 드시고 가세요.”라고 대답했다. 수르하도 옆에서 방긋 웃어 보였다.


그들이 인사하며 음식을 먹으러 자리를 옮기자 그녀는 짠 음식에서 젓가락을 내려놓고 다른 음식을 조금 더 집어 먹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시끄러운 자리를 피해 제일 가까이에 보이는 게르 안으로 들어갔다. 행복을 기원하는 색의 푸른 혼례복과 신부의 다홍빛 혼례복이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올려져 있다. 다홍빛 실크에 용이 승천하는 것 같기도 하고 화염 같기도 한, 화려한 무늬들이 수놓아진 옷을 그녀가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몸에 대어 보다가 입기 시작했다. 그 옷을 그녀가 입었다기보다는 어느새 옷이 스스로 그녀의 몸에 걸쳐졌다고 하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를 만큼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옷매무새를 고치며 세면대 옆에 걸려 있는 작은 반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이리저리 비춰보느라 ‘누가 들어와서 보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하지 못했다. 그러는 순간, 나무문이 열리며 빛이 새어 들어오는 걸 보고 그제서야 그녀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반사적으로 원래 자신의 옷을 들어 몸을 가리며 출입구 쪽을 바라봤다. 당황한 빛이 역력한 그녀의 눈과 염소의 또랑또랑한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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