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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졍 Jan 06. 2021

ep03. 가족의 식습관 (D+671)

베지테리언이 되기로 결심한 지 671일이 지났다.

베지테리언이 되기로 결심한 지 671일이 지났다.




가족의 식습관;


어렸을 때부터 나의 몸은 육식하는 것에 거부 반응을 보였다. 부모님이 고기 좀 먹으라고 사정해야 좀 먹을까 했던 어린 시절을 지나왔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무슨 이유로 육식을 거부했는지 정확히 알진 못한다. 어렴풋이 그때의 감정을 떠올려보면 적어도 내게 ‘고기’는 맛있는 음식이 아니었기 때문인 것 같다. 고기 외에도 맛있는 음식은 많았기에 굳이 고기를 찾아서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대신 밀가루 음식을 그만큼 즐겨 먹었고, 이런 식습관 때문에 부모님의 걱정이 나날이 늘어 갔었다.  


이런 나와는 반대로 우리집 남자들, 오빠와 아빠는 육류 먹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오빠는 고기라면 사족을 쓰지 못하는 고기 킬러인데, 지금도 고기가 먹고 싶으면 하루 일정이 고되고 피곤할지라도 귀찮음을 불사하고 삼겹살을 사다가 직접 구워 먹는 열성을 보인다. 이런 오빠의 식습관 덕분에 집에서도 고기를 구워 먹는 날이 꽤 많았는데, 물론 그럴 때도 나는 한두 점 먹는 것에서 끝이었다. (베지테리언이 되기 이전의 일이다.) 한번씩 가족 외식하는 날이 생기면 어쩌다 하는 외식이니 ‘좋은 것을 먹어야 하고’, ‘잘 먹어야 하기 때문에’ 고기를 먹었다. 지금이야 따로 떨어져 살아서 함께 외식하는 일이 적어졌지만 어렸을 때 한 번씩 외식하는 일이 생기면 메뉴에서 ‘고기’가 빠진 적이 거의 없었다. 다른 고기에 비해 가격대가 좀 있어 평소에 잘 먹기 힘든 소고기나 갈비 등 고가의 음식을 주로 먹으러 갔었다. 그리고 나는 그나마 비계가 없는 소고기나 돼지갈비는 좀 먹었으므로, 나를 위해 소고기를 먹으러 가는 일도 상대적으로 많았고, 고기를 피해 대게나 회를 먹으러 가는 날도 있었다.

      

오빠, 아빠와는 달리 엄마의 식성은 나와 비슷하다. 4명 가족 중에 한 명은 내 편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엄마도 고기보다는 자연주의식 식사를 더 좋아한다. 깨끗하게 씻은 배추에 쌈장을 찍어 먹거나, 들기름 넣고 조물조물한 나물 반찬 등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고기를 먹겠다는 오빠나 아빠가 의견을 내면 나와 함께 편을 먹고 잔소리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분명 그들도 고기를 많이 먹는 것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긴 하지만 길들여진 입맛을 바꾸기는 힘든가 보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장식 축산 문제나 환경 문제 등에 대한 것은 대중적인 매체에서 거의 다루지 않기 때문에 육식을 줄이는 일의 필요성을 알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한 번은 아빠가 건강을 생각해서 나에게 고기는 좀 먹어야 한다는 의견을 강하게 밀어붙인 적이 있었는데, 이때 나는 '정말로 고기를 먹어야 영양 보충이 되고, 내 건강에 도움이 되는 걸까?' 하는 궁금증을 품기도 했었다. 그런 강요에 못 이기는 척 한 점씩 먹기도 했다. 이런 문제로 부모님과 몇 번 부딪혔는데, 정식으로 육류를 먹지 않겠다고 결심한 후 가족들에게 선언하고 나서는 가족들 중 누구도 나에게 고기를 먹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리고 본가에 한 번씩 가는 날이면 이제는 내가 먼저 말하지 않아도 엄마는 김밥을 싸도 햄을 빼고 싸주거나 미역국을 끓여도 소고기를 빼고 해 주신다. 까탈스러운 딸로 받아들여주지 않고, 내 식습관을 배려해주는 엄마의 마음이 고맙다. 이렇게 몇십 년을 함께 먹고 자고 살아온 가족 사이에도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마음을 알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 가치관과 다른 생각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지테리언이 된 이유에 대해 아직 가족과 터놓고 이야기해본 적이 없다. 나중에라도 기회가 된다면 왜 이렇게 육류를 거부하는 베지테리언이 됐는지 진지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봐야겠다. 말뿐이 아닌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나도 좀 더 공부해서 그들의 진짜 공감을 사는 날이 오면 좋겠다.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의 식생활에 동참하여 비건까지는 아니더라도 육식을 줄여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되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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