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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쭉정이 Mar 19. 2023

수사, 법대로만이 과연 최선일까

법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비논리적인 것들


어떤 할아버지께서 우리 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하셨다.

할아버지는 민사소송과 관련된 위자료 지급에서 패소한 적이 있는데 위 패소 판결문이 문제가 있다는 취지의 내용이었다. 민사는 사실 형사사건은 아니지만, 우선 할아버지 얘기를 들어보았다.


고소인께서는 위자료를 받지 못한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하셨다. 누군가의 모략으로 어떤 기업이 파산했고, 파산채권자들은 모두 거짓이며, 결국 법원과 파산회사의 변호사끼리 입을 맞추어서 고소인에게 위자료를 지급하지 않았다는 내용인 것 같았다.


그런데 사실 고소인 주장이 이해되진 않았다. 원인과 결과의 인과관계가 없고, 자료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오로지 고소인의 추측에 의한 내용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고소인에게 몰입되었던 나는 어떻게든 이해를 하고자 노트에 필기까지 하며 조사를 했다. 고소인과 열띤 토론을 했지만 끝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고소인은 귀가하셨고, 머리를 한 김 식힌 후 조사 내용을 검토하니 고소인과 내가 열띤 토론을 할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었다. 고소인의 논리는 애초부터 말이 안 되는 논리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비논리를 논리 있게 풀어보려고 했으니, 연히 마무리 짓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그때 문득 든 생각이, 고소인에게 필요한 건 논리가 아니구나 싶었다. 고소인은 사실관계를 떠나서 본인의 논리가 무조건적으로 맞다고 믿고 계셨고, 열띠게 설명을 하실 때 상당히 흡족해하셨다. 고소인은 그저 누군가 가자신의 얘기 맞다고 맞장구 쳐주길 바라셨던 것 같다.


과연 논리적인 것, 즉 법대로만이 선인 걸까 생각하게 되었다.




수사를 배울 때 가장 먼저 배운 것은 '법과 원칙'이었다. 그만큼 수사에 있어서는 원칙이 가장 중요하다. 수사가 아무리 어렵게 진행돼도 원칙이라는 중심이 잡혀 있으면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세상은 매번 법대로 흐르진 않는 것 같다. 세상이 법대로만 흘렀다면 모든 것이 효율적이면서냉정했을 것이다. 그런데 대로, 원칙과는 다르게 흐르는 일들이 있다.


배가 고프더라도 다 같이 나눠먹으면 더 든든하듯이, 일이 힘들어도 동료들의 농담에 음이 나듯이, 삶이 매번 수학공식처럼 똑 떨어지는 일들만 있지는 않다.  조금 감성적인 것들이 삶을 더 윤택하게 해주는 것 같다.


그런데 우리는 대게 앞만 보고 달리는 것에 더 익숙하다. 해야만 하는 일들에 치여서, 또는 현재 상황이 좋지 않아서, 각자들 만의 이유로 바쁘게 살 보니 가끔은 강박적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러다보면 다른 더 중요한 것들을 놓치는 건 아닌가 싶었다.


조금의 여유가 필요한 요즘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은 변수의 연속이고 앞날 또한 결국 정해진 게 없으니, 기 조금의 여유 가진다면 오히려 인생이라는 레이스를 오래, 건강하게 달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특별히 새로울 게 없는 일상에 작은 즐거움 필요하다.




할아버지를 겪으면서 꼭 논리만이 정답은 아니는 것을 알게 됐다. 원칙에 입각하되, 조금은 상대의 마음을 더 잘 헤아릴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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