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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쭉정이 Apr 11. 2023

30대, 제주에서 깨달은 사랑의 정의

자연, 그리고 존재의 의미에 대하여


나는 항상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 때면 여행을 계획한다. 그중에서 여행지를 제주도로 선택할 때면 깊은 사색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걸 뜻하기도 했다.


이번 여행이 그러했다. 작년 말부터 계속하여 쌓아 오던 알 수 없는 답답함이 있었고, 해결을 위해선 깊은 생각이 필요하단 걸 직감하고 있었다.




제주도에 도착했다. 혼자 여행은 10번 정도 온 것 같고, 특히 쉬고 싶을 때 항상 예약하는 숙소는 7번 정도 온 것  같다. 이 동네 가게 사장님들과 안면을 텄을 정도이니 꽤 자주 온 편인 것 같다.


보통 제주도에 오면 첫날은 짐 풀고 적응하는 데에 시간을 보내고 둘째 날부터 몸이 풀린다. 그렇게 활기차게 환기를 시키면 그날 밤에 보통 마음속 응어리가 풀어지는데, 이번 여행은 이상하게 그러질 못했다. 둘째 날이 다 가도록 해결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늦은 밤이 되었는데도 계속해서 마음속에 해결되지 않은 응어리가 있었다. 비행기에서나 숙소에서 낮잠을 자면 계속 악몽을 꾸었다. 놀라서 잠을 깨면 여기가 제주도라는 사실에 겨우 안도감이 들었다. 서울에서의 상태가 좋지 않았구나, 제주에 너무 늦게 왔구나 싶었다.




그렇게 늦은 밤 산책을 나갔다. 계속해서 하염없이 걸었다. 무엇이 또 나를 제주도에 오게 하였고, 무엇이 걱정된 것이었을까. 주변에 사람 1명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혼자 계속해서 앞만 보고 걸었다. 내 옆은 어둠 속 바람소리와 파도소리뿐이었다.


그렇게 걷는데, 문득 무언가에 집착하고 있던 나를 발견했다. 이렇게 그냥 바람이 부는 대로, 파도가 치는 대로 가만 두면 될 것을, 무엇에 그렇게 집착을 하던 거였을까.


우선 직장이 먼저 떠올랐다. 최근 팀에서 작은 일이 있어 갑작스러운 인사이동을 겪었다. 부서는 바뀌지 않았지만 함께 일해오던 동료들이 모두 바뀌었고, 거기에 신임 직원분까지 내 조원으로 들어왔다. 사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늘 막내였던 내가 주변 동료들이 바뀐 것을 비롯하여 나의 위치 또한 바뀐 것에 적응해야 하니 참으로 낯설었다. 그러면서 잘해야 된다는 완벽주의가 나를 더욱 버겁게 했다.


그다음은 '사람'이었다. 최근 누군가와 연락을 주고받는 일이 생겼는데, 그 사람의 연락에 집착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잘 보일까, 이렇게 말을 하는 게 더 좋을까, 잘해보고 싶은 마음에 신경이 많이 쓰였던 것 같다. 그런데 상대는 나의 조급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늘 같은 패턴으로, 그러나 꾸준하게 연락이 왔다. 나는 점점 더 궁금해지고 그럴수록 마음이 커져가는 것 같은데 이 사람은 참으로 '어르신' 같았다. 속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런 생각이 들 때쯤 제주도의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참으로 자연스러운 소리였다. 그래서였을까, 사랑을 정의한다면 억지스러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에 가깝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사랑은 집착하거나 갈구하는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천천히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다면, 무엇보다 성숙하게 그러나 무엇보다 순수하게 서로의 기대가 맞닿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었다. 그간의 조급하고 속앓이해왔던 나의 연애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모든 면에서 스스로를 다그치듯, 조급하게 살아오지 않았나 싶다.




그러면서 내게 필요했던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것도, 잘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사랑', 그리고 '지금'이었다.


남녀관계사랑뿐만이 아니라, 직장에서도 애정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고, 밖에 어딜 가나 사랑은 존재할 수 있다. 다만, 오랜 시간 동안 그것의 의미와 가치를 잊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 싶다.


누군가 보내준 글을 읽어봤는데, 베르그송이라는 철학자는 시간의 개념을 3가지로 분류했다.

1) 물리적 시간, 2) 심리적 시간, 3) 체험적 시간으로 분류했는데, 1)은 말 그대로 시계에 의존하는 물리적 시간을 말하고, 2)는 마음이 조급한 심리적 시간, 그리고 3)은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감을 느끼는 체험적 시간을 말한다.


위 철학자의 말에 의하면 3가지의 시간은 모두 다르게 흐른다고 했다. 그리고 물리적 시간만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고 전했다.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시간이지만, 특히 3)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그 순간이 참 충만한 시간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존재 의미, 행복이라는 게 결국 성공 성취를 위해 집착하는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것이 피어나는 것, 이런 시간들로 가득 채우는 것, 그러한 지금 오래도록 즐기는 것아닐까 싶다.





어찌 되었든, 제주도에서 사랑과 행복의 의미를 깨달았다. 이 감정바람이라도 불면 언제 또  하고 흔들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조급함을 내려놓고, 순간 자연히 충만하게 보내는 것, 그리고 물리적 시간 그 이상의 의미를 보내는 것. 그게 바로 행복이고, 그게 곧 존재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결국 사랑일 뿐이리.

결국 필요했던 건 사랑이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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