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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쭉정이 Jun 01. 2024

'좋은 사랑' 구별하기

당신의 사랑은 얼만큼 예쁜가요?

한 때 나는 나 자신을 혐오하던 때가 있었다.

당시에 마주하던 상황들은 그때의 내가 마주하기엔 버거운 일들이었고, 현재의 자신에게 만족할 수 없어 늘 달려야만 했으며, 나를 이해하지 못하던 친구들은 하나둘씩 멀어져 갔다. 분명히 외로운 시간이었지만 나의 감정 따위는 돌봐줄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나의 내면은 아무도 모르게 어두워져 갔다.


그런 시간 속에서 이런저런 사람을 겪었고 사랑 비슷한 감정을 느꼈지만 그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았다. 나 스스로를 예쁘게 생각하질 않으니 상대가 나를 조금이라도 좋아한다고 하면 금방 사랑에 빠져버렸다. 만나는 상대가 파리든 똥파리든 구별하질 못했고 누구든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줬다. 감정에 허기가 져서 그 누구라도 담아내야 했다.


그렇게 시작한 사랑의 결과는 참으로 암담했다. 상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을수록 자기혐오는 더욱 커져갔고, 사랑을 받고자 상대에게 더 큰 사랑을 주었지만 그럴수록 더 큰 실망으로 돌아왔다. 사람에 대한 상처는 더욱 커졌고 가끔은 사람이 무서웠다. 상대를 탓하기 전에, 스스로를 참 아프게 한 사랑이었다.




시간이 지나 이제 서른 중반이 되었다.

이래저래 살다 보니 또다시 누군가를 알게 되었지만, 불행히도 나의 연애 스타일은 그대로였다. 여전히 여유가 없었고,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완전히 알지 못하면서 다시 사랑을 시작했다. 변한 것 한 가지는 상대에게 마음을 온전히 주지 않았다.


상대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마음으로 느끼고 있으면서도, 맥이 다 빠지도록 그를 의심했다. 사실은 그의 진실된 사랑을 확인받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사랑이 커져갔고, 그러면서 분명 이쯤 되면 그도 떠나겠지, 그래 사람은 원래 그런 거지 하고 스스로를 비관했다.




그러나 상대는 지금까지 만난 사람과는 사뭇 달랐다. 가장 큰 차이점은 내가 불안해할 틈을 주질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연락을 했고 보러 왔으며 내가 사랑을 주기 전에 먼저 한없이 사랑을 퍼부었다. 가끔 내가 이유 없이 감정적인 투정을 부리면(잘못된 행동인지 알고 있다) 오히려 그가 불안해했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나를 불안하게 두질 않았다. 과거의 사랑들이 위태로웠던 이유는 모두 불안했기 때문이다. 불안이 생기는 원인은 상대뿐만이 아닌 나 스스로에게도 있었다.

그러면서 비로소 깨달았다. 진정한 사랑은 내가 불안함을 느끼지 않는 안정감이었다.




차이점이 무엇일까. 구질했던 과거를 지나온 자로서 좋은 사람을 만났을 때 나타나는 징조 몇 가지를 알게 되었다.


첫 번째, 상대가 어디에서 무얼 하든 불안하지가 않다.

상대에 대한 무한 신뢰가 생긴 만큼 그가 어디에서 무얼 하든 그다지 신경 쓰이질 않는다. 그 기분이 좋은 게 그가 없는 시간에도 나는 자유로이 내 할 일에 집중할 수 있고, 그 시간들이 참으로 안정감 있다.


두 번째, 같이 있는 게 오히려 더 편안하다.

상대를 맞추기 위하여 애를 쓸 필요가 없고 오히려 내 감정을 상대에게 드러내는 것이 당연해진다. 자연스러운 감정 교류가 되면서 함께 있을 때 오히려 더 편안해진다.


세 번째, 서로가 진정으로 잘되길 바란다.

선한 의지 속에 서로가 잘되길 바라는 강력한 마음이 든다. 그가 잘될수록 내가 잘되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 희생하는 마음이 따른다. 서로가 진정으로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처음으로 사랑이란 게 무엇인지 조금 알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다소 늦은 나이에 시작된 사랑이지만, 사랑을 알게 되는 것에 정해져 있는 나이는 없는 것 같다.

감정의 허기짐을 좋은 재료로 채워야 한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모두 예쁜 사랑을 할 자격이 있다.

사랑이 없어도, 억지로 애쓰지 말자.

사랑을 하고 있다면, 더 이상 아프지 말자.


우리는 이미, 아름답고 소중한 시간을 보낼 자격이 분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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