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에 관하여

공감과 조언, 그 중간 어디엔가.

by 노용기

최근, 아니 그보다는 좀 더 오래전부터 공감에 대해 많이 화자 되고 있는 듯하다. 공감이란 보통 타인의 상황과 기분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친구가 힘들어할 때 그 친구의 어려움을 같이 느끼는 것이 공감이다. 사회적 약자에 있는 누군가가 여름철 선풍기 하나에 의지해 창문도 없는 곳에서 더위에 힘들어하고 있을 때 마음속에서 그 불편을 함께 느끼는 것이 공감이다.


공감 능력이 없으면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해진다. 쌀이 없으면 빵으로 때우라는 생각은 공감 능력이 제로에 가까울 때 나올 수 있는 말이다. 이렇게 공감력이 사라지면 감정은 점점 메말라져만 간다. 나만 보이고 타인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자기 안으로만 고립되다 보면 오히려 우울감에 빠질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은 다 괜찮게 사는 것 같은데 역으로 나만 힘들고 어렵다는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공감과 관련된 글과 책이 많아지는 추세다. 경제적으로 힘들고, 꿈을 이루지 못해 힘들고, 직장과 학교 등 공동체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도 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런 글에서는 너만 그런 것이 아니다 또는 나도 너처럼 유사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준다. 그러면서 세상에 나 혼자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은 위로를 얻는다.


문제는 이러한 공감과 위로의 지속시간이 짧다는 것이다. 다시 현실에 내 던져졌을 때 아무것도 달라져 있지 않은 상황에 또다시 좌절할 수 있다. 잠깐의 위로와 오랜 시간의 고통, 그 주기가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위로와 공감도 어느 정도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군 복무 시절의 이야기다. 당시 나는 군 생활에 적응을 잘하지 못하였다. 열악한 시설과 험악한 선임들 그리고 모든 것이 낯선 환경에 참으로 힘들어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선임 중 한 명이 나의 대학 그리고 학과 선배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병장이었고, 나는 이병이었다. 나는 조금이나마 그가 나를 이해해 주고 이 어려움에서 조금은 도움을 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함께 밤 근무를 함께 서게 되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군생활의 어려움에 대해 얘기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선임이 나에게 말했다. "정신 차려 이 XX야!" 그 뒷말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반이 욕이었다. 정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곤히 낮잠을 자고 있는데 누군가 나에게 얼음물 한 바가지를 껴 얹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때 따뜻한 공감이 아닌 둔기로 가슴을 후려치는 듯한 충고를 들었다.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고 그가 미워졌다. 그 후로 그가 제대할 때까지 그와 최대한 말을 섞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의 상처가 나에게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다. 나는 더 나약해지지 않았고 스스로 설 힘을 가지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군 생활을 해 나갔다. 아름답게 서로를 기대고 의지하는 군생활이었으면 좋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덕분에 정말 정신 차리고 군생활을 해 나갔다.


요즘 힘든 사람들이 많다. 학업과 취업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와 사회생활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주는 책들도 많고 조언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리고 따끔한 조언을 해 주는 사람들보다는 대개는 따뜻하게 위로해 주고 공감해 주는 사람들을 더 선호한다. 그런 인기에 편승 해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정신 차려!"라는 조언보다는 "힘들지?"라는 공감을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무엇이 옳은지는 알지 못한다. 사람마다 필요한 공감과 조언의 레벨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감이 넘치다 보니, 점점 나이가 들어 마음이 나약해져 가는 요즘의 나를 볼 때, 한 두 번 정도는 조금은 불편한 조언을 듣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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