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다는 것에 관하여

불안의 실체

by 노용기

살면서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있다. 숨 쉬는 것, 두 다리로 걷는 것, 두 눈으로 보는 것 등. 보통의 경우 좋은 직장을 가지지 못한 것을 불만족하는 사람은 있어도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에 무한 감사를 하며 사는 사람은 드물다.


최근 넷플릭스 영화 '버드 박스'를 시청했다. 영화에서 사람들은 어떠한 환영을 보게 될 때 자살 시도했다. 그래서 살기 위해서는 두 눈을 가려야 했다. 두 눈을 가리지 않으면 환영에 의해 정신이 이상해지고 자살 충동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영화에서 가끔씩 주인공의 시선을 비출 때가 있었다. 카메라가 주인공의 두 눈이 되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장면을 비추었다. 주인공은 울창한 삼림에서 두 눈을 가리고 환영을 피해 도망친다. 주인공을 둘러싼 거친 바람소리가 공포감을 극대화시킨다. 나도 모르게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이 되었다. '얼마나 답답하고 무서울까?'


그런 생각하는 가운데 나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슴속 답답함과 두려움을 안고 사는 내가 보였다. 미래를 볼 수 없는 나. 두 눈에 안대를 하고 손을 앞으로 뻗어 더듬거리며 조심스럽게 미래를 향해 한 발 자국을 내밀고 있는 나의 모습 말이다. 그렇게 한 발자국씩 내딛을 때마다 내 귀 속으로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들렸다. 그 이야기들은 점점 증폭이 되어 공포로 다가오기도 했다. 나의 모습과 버드 박스에서 주인공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순간이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 두려움 속에 무엇을 해야 할지도 보였다는 것이다. 불안의 실체가 보인 것이다. 나의 불안은 나의 앞날을 보지 못하는 데 있었다. 안대를 끼고 현재를 살고 있기 때문에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어 불안 해 하고 있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미래가 보인다면 그리고 어느 정도 준비를 할 수 있다면 조금은 덜 불안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나 보다 앞서 인생을 사신 분들이 있고, 그분들의 인생 경험이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버드 박스라는 영화를 초반에 보다가 멜로 영화나 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굳이 불편한 영화를 보면서 주말을 보내 싶지 않아서였다. 말랑 말랑한 사랑 이야기로 잠시 내 안에 걱정과 근심을 덜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현실과 미래를 마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속 주인공은 어려움을 어떻게 헤쳐나갈까도 궁금했다. 불편한 영화였지만 끝까지 보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내 불안의 실체와 마주할 수 있게 되었고 어떻게 대처해나가야 할지도 조금은 명확해졌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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