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과 대화하는 법
코로나를 못 이긴 누군가의 제안으로 오랜만에 MBA 졸업 동기 모임을 가졌다. 내가 이 모임을 좋아하는 이유는 나의 관심사와 90% 이상 일치하는 대화의 주제가 오고 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40대인 내가 가장 어린 축에 속하는 관계로 동기들 대부분이 나름 회사나 사회 선배들이 대부분이어서 나의 향후 5년 후에 일어날 일들을 미리 접할 수 있어 나의 삶에도 자극제가 될 때가 많다.
그 날 모임에서도 다양한 주제들이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각자의 회사 이야기부터 역사, 문화, 철학을 포함 해 주식과 부동산에 대한 경제 이야기까지 네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다양한 레시피들의 경연이 펼쳐졌다. 그중에 나의 관심을 끈 것은 모임에 참석한 어느 두 분의 토론 과정이었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부동산과 세금 그리고 사회적 책임 등에 관련한 내용이었다.
정부 경제 정책은 단순히 이론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경제는 정치와 연결되어 있고, 정치 성향에 따라 경제관도 영향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제 토론도 결국 정치 토론처럼 합의를 보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날도 토론의 주제는 경제였지만, 그 이면에는 드러나지 않은 정치 성향에 따른 의견 차이여서 팽팽한 접전이 있었다.
그런데, 사실 여기서 내가 주목한 것은 대화의 내용이 아니라 대화의 방법에 있었다. 내가 만약 그 상황에서 대화를 했었다면, 나는 아마 내가 옳은 이유와 상대방의 논점에서 벗어난 부분에 대해 말하며 대화를 이끌어 갔을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아마도 나는 내가 옳고 상대방이 그르다는 것을 계속 이해시키려 했을 것이다. 이렇게 대화를 하다 보면 상대방은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계속 대화가 평행선을 달리게 된다. 그렇게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점점 편협한 주제로 빠져들고 어느 순간 갈등이 증폭되기도 한다. 그래서 결국에는 논리보다는 감정이 대립하게 되며 상대방의 말투까지 트집 잡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그러나 내가 본 두 분의 대화를 그렇지 않았다. 그분들은 주장보다는 서술 위주의 대화를 하였다. 즉, 상호 대립되는 지점이 있을 때는 잠깐 논점에서 거리를 두고 주장보다는 알려진 사실(Fact)을 확인하는 작업을 했다. 즉, 굳이 따지자면 주장은 20~30%, 사실은 70~80%인 대화였다. 주장보다는 사실 확인이 오고 가는 대화를 하다 보니 서로 알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정보를 습득할 수 있게 되고 전체 대화가 풍성해졌다. 과거 MBA에서 협상을 배울 때 합의가 되지 않으면 발코니로 나가*라는 방법론을 배운 적이 있는데, 마치 그 광경을 보는 것 같았다. (*Go to the balcony - 발코니에 나가 상쾌한 공기도 마시고, 상대방과 논쟁에 벗어난 얘기도 하면 오히려 합의에 이르기 쉽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우리는 모두 함께 공부를 했던 동기들이다. 누구를 설득해야 할 의무도 없고, 그저 즐거운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대화법이 회사에서 의견 대립이 있을 때 나도 한 번 사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그 모임을 가기 전에 회사의 어떤 분과 의견 대립이 있어 전화를 한 시간 가까이했다. 긴 시간 통화했지만 결국 상호 설득은 되지 않은 채 감정만 좋지 않게 끝났다. 이런 일은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주장을 20~30%로 줄이고, 대전제나 논거 그리고 사실에 좀 더 비중을 늘려야겠다.
에필로그:
그런데, 점점 나이가 있으신 분들은 다들 각자의 세계가 있어 설득이란 게 점점 불가능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나 역시도 최근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설득을 받았던 때가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이런 게 나이 들었다는 징조인가 보다. 그리고 나이 들면 친구가 줄고,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고, 그래서 점점 고립되어 간다고들 하는데, 지금부터라도 내 마음에 경종을 울려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