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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Mar 02. 2020

콘으로 주세요

 빵빠레와 비얀코. 이 두 아이스크림은 어렸을 적 슈퍼에서 살 수 있는 비싼 아이스크림 계의 양대 산맥이었다. 놀이동산에서나 만날 법한 소프트아이스크림의 형태로 아이스크림이 구불구불 쌓여있는 모습은 모든 어린이의 마음을 훔치기에 충분했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빵빠레는 눅눅해진 콘에 담겨있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이고 비얀코는 플라스틱 컵에 담겨있는 딸기 시럽이 뿌려진 바닐라 아이스크림이다. 비얀코의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나면 플라스틱 컵 가장 아래에는 샤베트가 숨겨져 있다. 그래서 사실 비얀코의 정식 명칭은 '더블 비얀코'. 두 가지 맛을 즐길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나는 두 아이스크림 중 어느 것을 먹어야 할지 자주 고민했지만 대부분 빵빠레의 승리로 고민은 끝이 났다. 빵빠레에만 있는 눅눅한 콘이 그 이유였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컵보다는 콘에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을 좋아한다. 첫 번째 이유는 아이스크림과 바삭한 콘이 만들어내는 맛의 조합을 좋아하기 때문인데 사실 빵빠레의 눅눅한 콘에는 크게 해당하는 이유가 아니다. 두 번째 이유는 단순히 콘을 들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아이스크림이 녹아 손에 흐르고 겨울에는 손이 시리지만 그래도 나는 콘을 들고 아이스크림을 먹는 게 좋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귀엽고 유쾌한 기분이 된다. 그러니 항상 빵빠레가 승리했던 이유는 나에게 딸기 시럽이나 샤베트가 주는 기쁨보다는 콘을 들고 아이스크림을 먹는 행위가 주는 기쁨이 더 컸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름도 빵빠레니까. 콘을 들고 빵빠레를 먹을 때면 스스로가 조금 더 좋아졌다.


 빵빠레와 엄마에 얽힌 어린 시절의 일화가 하나 있다. 그 날도 나의 선택은 수많은 아이스크림 중 빵빠레였다. 한창 맛있게 빵빠레를 먹고 있는 나에게 엄마가 "엄마도 한입만 줄래?"라고 물었다. 어린 나에게 그것은 청천 날벼락과 같은 말이었다. 그런 나의 의중을 조금 눈치챘는지 엄마는 "지원이는 맛있는 아이스크림 부분 먹고, 엄마는 과자 부분만 먹을게."라고 말했다. 콘을 아주 좋아했던 나는 "나는 콘이 더 좋은데...."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엄마가 "그럼 엄마가 아이스크림 먹을게!"하고 엄청나게 크게 입을 벌려 빵빠레의 아이스크림을 거의 다 먹어버린 것이다. 기억 속의 엄마는 콘을 제외한 대부분의 아이스크림을 먹어버렸지만, 사실 지금은 엄마가 그렇게 큰 한 입을 먹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쨌든 언제, 어디에서 있었던 일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 이 사건이 나는 종종 생각이 나서 엄마에게 이야기해주며 깔깔 웃고는 한다. "엄마가 내가 과자가 더 좋다고 하니까 과자 빼고 아이스크림을 다 먹어버렸다니까?" 그럴 때면 엄마는 별 이상한 것만 기억한다고 대답하며 덩달아 웃는다. 나는 엄마와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엄마는 정말 아이스크림을 다 먹어버렸을까? 그때의 엄마와 지금의 내 나이가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나는 조금 마음이 아파진다. 내가 지금도 여전히 콘 아이스크림을 들고 어깨를 조금 들썩이며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것처럼, 두 딸을 키우는 엄마 역시 그때 그저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어렸을 때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어 하던 마음과 엄마가 되어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어 하는 마음의 크기에는 사실 별 차이가 없는데, 자라났기 때문에 자라나지 못 한 마음과 달리 '다 큰 어른'이 되어야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자라난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실 자라나는 일은 영영 일어나지 못 하는 일이 아닐까.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얼마나 같은지 깨달을 때면,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많은 일을 견뎌온 엄마 아빠 역시 사실은 젊은 시절의 그들과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새삼 놀라게 된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유치함이 한결같이 삶에 남아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엄마가 달콤한 아이스크림이나 씹을 때마다 바삭바삭 소리가 나는 스낵을 좋아하는 일과 장보기를 좋아하는 아빠가 마트에서 물건을 구경하다 종종 사라지는 일. 삶의 기쁨은 훌륭하게 성장하는 일과는 조금 동떨어진 곳에 있는 것일지 모른다.


 엄마 역시 나처럼 손에 콘 아이스크림 하나를 들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거리를 거니는 일을 좋아한다. 그래서 콘이냐 컵이냐 하면 엄마도 언제든 콘을 외친다.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엄마는 여전히 소프트아이스크림 기계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엄마와 나는 "아이스크림 하나 사서 들고 다닐까?" 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이제는 빵빠레보다 훨씬 더 맛있는 소프트아이스크림을 주문한다. 점원이 "콘으로 드릴까요, 컵으로 드릴까요?"라고 물으면 엄마와 나는 늘 대답한다.


 "콘으로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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