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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Dec 23. 2019

권이윤, 유재화

 엄마는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드립 커피를 마시면 가슴이 두근두근 뛴다면서도, 삼박자 커피를 마셔야 정신이 깨는 것 같다면서도 내가 출근하지 않는 주말의 늦은 아침이면 "커피 좀 내려봐." 하고는 예쁜 커피잔을 찬장을 뒤져 내놓는다. 이 시간에 엄마는 쓸모없이 기다란 데다가 화려한 무늬에 금색 테두리까지 둘린 접시에 여행 기념품으로 사 오거나 받은 이국의 초콜릿, 캐러멜과 같은 디저트를 차려서 티타임을 갖고 싶어 한다. 그런 날이면 나는 엄마와 긴 수다를 떤다. 내가 데이트를 한 이야기를 들으며 엄마는 소녀처럼 기뻐한다. 그러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커피의 향과 맛의 좋음과 나쁨을 오래 이야기한다.


 엄마는 종종 "브런치 먹으러 가자."라고 말한다. 지나가다 본 현수막에서 '주말 브런치'라는 문구를 보았다면 그곳을 꼭 기억해놓고서는, 그곳에 가서 엄마 얼굴처럼 큰 머그잔에 담긴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함께 크루아상 샌드위치를 먹으며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한다. 나도 엄마와 함께 보내는 그 시간이 좋다. 약간 싱거운 커피나 재료가 부실한 샐러드는 사실 크게 상관이 없다. '엄마와 함께 먹는 브런치'는 그 어감만큼이나 따뜻하다. 그 시간은 온통 연둣빛 잎으로 뒤덮인 봄에도, 뜨거워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 반가운 여름에도, 햇살과 하늘과 단풍이 눈부신 가을에도, 시린 하늘과 마른 가지가 아름다운 겨울에도 유효한 시간이다.


 엄마의 이름은 '권온화'. 엄마가 얼마나 예쁜지는 아무리 많이 말해도 부족하다. 나는 평생 살면서 엄마만큼 예쁜 사람을 본 일이 없다. 엄마에게는 오빠가 다섯이나 있고, 엄마의 엄마 아빠는 모두 엄마가 스물다섯 정도가 되었을 무렵 돌아가셨다. 엄마는 방앗간 집 딸이었다고 한다. 그때 방앗간을 꾸리는 집은 꽤 부유한 집이었다. 엄마는 그런 집에서 여섯 번째인 막내로, 그것도 하나뿐인 딸로 태어났다. 온갖 예쁨과 사랑을 엄마 아빠, 그리고 오빠들로부터 듬뿍 받으며 살았다. 하지만 그런 엄마도 그 시절의 '딸' 역할을 해야만 했는데, 그것은 어느 정도의 '어른스러움'을 의미했다. 엄마는 어리광을 부리면서도 스스로 많은 것을 책임져야 했다. 


 엄마는 스스로 모든 것을 잘하는 자랑스러운 딸로 자랐다. 엄마는 원하는 대학에 가기보다는 다른 대학에 차석으로 입학하기를 택했다. 엄마의 딸인 내가 그때 엄마가 원하던 대학에 입학했는데, 엄마는 아직도 그때의 이야기를 나에게 종종 한다. 불문학을 전공한 엄마는 대학을 졸업하고 기자 생활을 했다고 한다. 나는 기자 생활을 하던 엄마를 자주 상상한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 엄마는 우리 집에서 불어 과외를 했다. 대학생 언니나 오빠들이 우리 집에 드나들며 나에게 인사를 했던 장면이 어렴풋하게 기억난다. 아무것도 몰랐지만 나는 엄마가 아주 자랑스러웠다.


 얼마 전에 엄마는 아빠와 함께 동남아로 여행을 떠났다. 추운 날씨를 견디기 힘들어하는 탓이다. 곧 환갑을 앞둔 엄마의 요즘 최대 걱정은 '치매'다. 그것이 너무 두려워 엄마는 뭐라도 배워야겠다며 주민센터에서 운영하는 '라인댄스'나 '서양화' 따위를 신청했다. 그마저도 경쟁이 치열해 당첨되어야지만 수강할 수 있다. 만약 당첨되면 직접 가서 수납해야 한다고 엄마는 나에게 수납에 필요한 서류를 맡겨두고 떠났다. 엄마의 주민등록증과 가족관계 증명서. 

 "책상 위에 두고 갈 테니까 엄마가 연락하면 수납해 줘." 

 "응, 알았어. 걱정하지 마!" 

 책상 위의 가방을 챙기다 우연히 나는 엄마의 가족관계 증명서에서 엄마의 엄마 아빠, 그러니까 나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이름을 처음 보았다.


 권이윤, 유재화.


 살면서 마주할 일이 없었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이름을 한 번도 궁금해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이제야 처음 깨달았다. 권이윤, 유재화. 엄마의 '온화'라는 이름만큼이나 독특하고 아름다운 어감을 가진 그 이름들을 잠시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나에게 살아있는 조부모는 친할머니뿐이었다. 친할아버지는 아빠가 세 살 때 돌아가셨고,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엄마가 결혼하자마자 돌아가셨다. 엄마는 외할아버지에게 결혼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아빠와 서둘러 결혼했다. 친할아버지는 아빠가 세 살 때 돌아가셨지만 나는 늘 교장 선생님이셨다는 친할아버지의 무용담을 들으며 자랐다. 물론 친할아버지의 이름 석 자도 또렷하게 알고 있다. 엄마가 결혼한 후에 돌아가셨는데도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이야기는 거의 들은 적이 없다. 가끔 엄마의 화장대 위에 놓여있던 종 모양의 투명색 액자에 담겨있던 외할머니의 흑백사진만을 기억한다. 엄마는 외할머니의 사진을 보며 우는 모습을 나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까. 나는 왜 그 사진을 보며 외할머니의 이름을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을까. 너무 예쁜 엄마가 아빠를 닮았는지, 엄마를 닮았는지도.


 내가 엄마에게서 지웠을 많은 것을 떠올린다. 권이윤, 유재화라는 아름다운 어감처럼 엄마의 것이어서 아름다웠을 수많은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그런 일이라서, 주말 아침이면 엄마를 위해 따뜻한 커피를 내린다. 엄마의 가슴이 너무 뛰지 않게 뜨거운 물을 부어 묽게 농도를 맞춘다. 엄마는 이건 묽어도 너무 묽지 않냐며 핀잔을 준다. 때때로, 아니 아주 자주 실패하지만 엄마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한다. 젊은 내가 사랑을 하고 여행을 하고 문학을 하는 이야기. 권온화, 그 이름만큼이나 단 한 번도 사랑스럽지 않은 적이 없었던 엄마의 커피를 영원히 내려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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