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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Feb 24. 2020

마지막 휴게소입니다

 장롱 속에서 오래된 필름 카메라를 찾은 적이 있다. 아빠가 젊었을 때 쓰셨던 펜탁스 카메라. 나는 아빠가 한쪽 눈을 찡긋 감고 찰칵 소리를 내며 나와 동생을 찍어주던 장면이나, 가족사진을 찍기 위해 아빠가 아주 기다란 삼각대에 카메라를 놓고 달려와서 우리와 함께 포즈를 취하는 동안 카메라의 작은 막대기가 윙윙하며 돌아가던 장면을 영화처럼 떠올렸다. 그리고 한동안 열심히 무거운 카메라를 목에 걸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펜탁스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코닥과 후지, 아그파 필름이 가진 색감의 차이를 골똘히 고민하고 필름을 현상소에 맡기고는 들떠 온종일을 행복해하면서. 하지만 수많은 취미가 그렇듯 나는 곧 시들해져 카메라는 또다시 장롱 신세가 되었다. 모르는 일이다. 또 누군가 장롱 안에서 카메라를 발견하고는 몹시 기뻐할지도.


 장롱은 본래 옷을 넣기 위해 만들어진 장이나 농을 말하는데 옷이 아닌 것이 참 많이 들어있다. 대체로 장롱 안에 들어간 물건은 기억 속에서 잊혀 다시 발견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고는 한다. 오죽하면 장롱면허라는 말이 생겼을까? 장록 속 물건은 야심 찬 애정을 가지고 사용되었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보이지 않는 곳에 보관된 것이다. 장록 속에서 어떤 물건을 다시 발견한다면, 그것은 있었다가 없었다가 다시 있게 된 것. 애초에 없어진 적이 없지만, 없다고 착각하거나 없게 만들고 싶었던 것. 혹은 의지와 상관없이 그냥 잊힌 것이다.

 

 장롱 속의 물건은 음악 같은 데가 있다.


 어느 겨울에 나는 영화 '잠수종과 나비'를 보고 그 영화의 OST인 'Don't Kiss Me Goodbye'를 부른 Ultra Orange & Emmanuelle의 'Sing Sing'이라는 노래를 들으며 코끝에 닿는 바람이 참 차갑고 상쾌하다고 종종 생각했다. 그 겨울날에는 동그란 털실들이 잔뜩 엮인 귀엽고 이상한 짧은 재킷을 주로 입었다. 나는 그 영화처럼 아름다운 꿈을 자주 꾸었는데, 이 노래를 들으면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이 노래에는 'Someone shakin' my knee bone'이라는 가사가 있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노래를 다시 듣다가 나는 무릎이 없어질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시절의 나는 참 이 노래와 같았구나. "I'm gonna fly away, I'm gonna fly away."*


 책꽂이에 한동안 꽂혀있던 얇은 시집에서 엽서를 하나 발견했다. '해피 밸런타인, 미안해요.'라고 적혀있는 나의 것이 분명하지만 생소하기 그지없는 글씨를 여러 번 읽으며 그 엽서를 쓰던 나를 떠올렸다. 그 겨울날에는 자주 발그레해져 웃었는데 그런 나를 보며 동생은 문학 속의 문장 같다고 이야기했다. 사랑에 빠진 내가 좋았지만 곧 매일이 아팠다. 시집을 읽으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 시집을 선물하고 싶었다. 그 시절의 나는 이 시집과 같았을까. "당신이 희박해서 숨을 못 쉬겠어요 그렇게도 맛있게 마셔 버렸으니 없지 없는 게 당연하지"*


 고속도로를 달릴 때면 내비게이션에서 '마지막 휴게소입니다.'라는 안내가 나올 때가 있다. 도착지까지의 휴게소 중 마지막 휴게소이니, 필요하다면 반드시 이 휴게소에 가야만 한다는 뜻이다. 이 안내가 나올 때면 나는 나의 필요와 상관없이 조급한 마음이 든다. '마지막이라는데, 휴게소에 들러야 할까? 마지막이라는데 어떡하지?' 하지만 나는 마지막 휴게소임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할 때가 많다. 마지막 휴게소를 지나친 나는 대체로 곧 깨닫는다. 마지막일 것 같았던 모든 것은 마지막이 아니었음을. 나는 수십 번 더 마지막 휴게소를 지나쳐야만 한다는 사실을. 삶에서 마지막은 존재하지 않음을 알게 되고 나서도 '마지막 휴게소입니다.'라는 말에 끊임없이 어쩔 줄 몰라 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아빠가 한동안 잊어버린 장롱 속 카메라로 나는 아주 많은 것을 찍었다. 때로는 용기나 결심 없이 찍은 사진이 참 아름다워서 나를 오래 행복하게 했다. 장롱 속 물건은 다시 발견되어 새로운 의미를 지닌 채로 또다시 얼마간의 삶을 담당한다. 나는 이제 다시 너에게 주려고 했던 시집을 정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밑줄 친 문장이 아닌 다른 문장에 밑줄을 긋고, 따뜻해져서 '좋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시집을 너에게 주려고 했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겠지. 또 다른 누군가가 장롱 속 펜탁스 카메라를 발견하게 된다고 해도, 아빠가 젊은 시절 카메라를 들고서 나와 동생이 빵빠레 아이스크림을 들고서 혀를 내밀고 있는 모습을 보며 잠깐 웃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은 채로 남아있을 것이다.


 나에게 마지막이었던 휴게소가 누군가에게는 첫 번째 휴게소가 될 것이고, 나는 언젠가 나에게 마지막이었던 휴게소를 또다시 지나가게 될지 모른다. 가끔 그 사실만이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단 하나의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삶이란 매번 '마지막 휴게소입니다.'라는 이야기를 듣는 일의 연속이며, 그럼에도 그 사실에 영영 무뎌질 수 없다는 속성이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단 하나의 원동력이 아닐까 하고.





*Ultra Orange & Emmanuelle, 「Sing Sing」, 『Ultra Orange & Emmanuelle』, (2007)

*성기완,「당신이 희박해서」, 『당신의 텍스트』,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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