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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Mar 30. 2020

아는 순간은 오지 않는다

 초등학교 시절 동생과 한국야쿠르트에서 주최하는 어린이 건강 글짓기 대회에 나간 적이 있다. 대회는 동생과 내가 다람쥐 통을 자주 타러 가던 공원에서 열렸는데 그날은 바위에 앉아서 원고지에 열심히 글을 썼다. 한 번도 동생보다 글을 못 쓴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지만 아무런 상도 받지 못했던 나 대신 동생이 금상을 받았다. 상금이 무려 100만 원이었고 나는 동생이 우리 집을 부자로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했다. 동생에게 금상을 안겨준 시의 내용은 이렇다. '새벽마다 무거운 음식 찌꺼기 들고 아빠는 밭에 가신다. 어지러운 아파트 위 공터에 씨앗 뿌려 생긴 밭. 아들처럼 딸처럼 아빤 밭을 아끼신다. 우리 집 밥상엔 아빠가 가져오신 야채가 가득하다. 야채를 먹으면 아삭! 아빠의 정성이 씹힌다. 아빠에겐 밭이 또 하나의 가족일까? 아니면, 우리 가족을 위한 정성일까.' 동생이 20년 전에 쓴 시의 전문을 옮겨올 수 있었던 이유는 아빠가 얼마 전에 부산에 있는 짐을 정리해 서울로 올라오면서 '제21회 전국 어린이 건강 글짓기 대회 뽑힌 글 모음집(1998년)'을 가지고 왔기 때문이다. 


 아빠는 실제로 음식 찌꺼기를 거름으로 주며 텃밭을 열심히 가꿨다. 나는 도통 식물을 기르는 일에 관심도 재능도 없는데 종종 아빠를 따라 텃밭에 가서 감동하거나 놀라거나 궁금해하는 척을 해야만 했다. 아빠는 그런 것을 강요하는 사람이었다. 차를 타고 가족여행을 떠나면 아빠는 늘 창밖을 보라고 화를 냈다. 동생과 나는 산의 풍경을 보며 감탄하기에는 아직 어렸지만 "우와!"하는 감탄사를 내뱉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그런 아빠의 텃밭이 내 기억 속에서 동생의 시처럼 아름다울 리가 없다. 그래도 아주 두꺼운 줄기와 커다란 잎을 가진 토란이 밭에 심겨있던 장면은 동화처럼 기억에 남아있다. 어릴 적부터 토란을 자주 먹었던 동생과 나는 여전히 토란을 아주 좋아한다.


 할아버지는 아빠가 세 살 때 돌아가셨고 아빠는 자라면서 한 번도 풍족함을 경험하지 못했다. 할머니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며 아빠를 키웠다. 예전에는 키가 180cm인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뚱뚱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아빠가 세상에서 가장 마른 사람임을 안다. 아빠는 어렸을 적부터 몸이 약했고 삶을 꾸려나가는 일에 지친 할머니의 구박도 많이 받았다. 그런 아빠는 친구가 놀러 오면 책과 신발을 들고 다락방에 숨어 없는 척을 하고 공부를 했다고 한다. 아빠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대학교에 들어갔고 이른 나이에 교수가 되었다. 한 번은 아빠가 받아올림과 받아내림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는 나에게 불같이 화를 낸 적이 있다. 수학이 어려운 게 잘못도 아닌데 혼이 나는 게 너무 서러워서 몇 시간을 울었던 기억이 난다. 몸이 약한 아빠는 평생 음식에 까다로웠고 우리는 자주 식탁에 앉아 아빠의 눈치를 봐야 했다. 부지런한 아침형 인간을 강요했던 아빠 때문에 한창 늦잠을 자고 싶었던 어린 시절 나는 아빠가 무서워서 아침에 아빠가 일어나는 소리를 들으면 저절로 눈이 떠졌다. 


 아빠는 여전히 몸이 약하고 자주 신경질적인 사람이다. 이제 아빠의 눈치를 보지 않고 늦잠 정도는 잘 수 있는 성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나는 아빠와 보내는 24시간이 편하지 않다. 아빠는 얼마 전에 은퇴 후 서울에 올라왔다. 부산에서 혼자 사는 동안 아빠는 난방도 잘 안 되는 작고 낡은 주택에서 지냈다. 아빠가 그 집을 고른 가장 큰 이유는 집 앞에 있던 감나무 때문이었다. 아빠의 왜소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감나무와 텃밭을 사랑했던 아빠의 70년을 생각한다. 친구 몰래 숨어서 공부하는 아빠, 텃밭 앞에서 토란 이야기를 해주던 아빠, 음식에 까다로운 아빠, 할머니를 무척 사랑했지만 할머니에게 자주 옳지 못했던 아빠, 받아내림 하나를 이해 못하냐고 화를 내던 아빠, 늦잠을 못 자게 했던 아빠, 감나무를 보고 지낼 집을 고르는 아빠, 20년 동안 글짓기 대회의 글 모음집을 아무 말 없이 보관하는 아빠.


 얼마 전에 아빠와 안경을 사러 갔던 엄마가 아빠가 20만 원이 넘는 안경테를 골라서 무척 놀랐다고 이야기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을 졸업하고 교수가 되어서도 아빠는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몰랐다. 감나무 하나만 보고 차가운 방바닥에 누워 매일 밤을 보내는 아빠는 원래 욕심이 없는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아마 아빠는 자신을 그런 삶의 테두리 안에 억지로 욱여넣고 살아왔을지 모른다. 밥을 먹는 아빠의 얼굴에서 아빠가 직접 골랐다는 안경테를 유심히 살펴보며 근사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뿌듯하게 마음이 아팠다.


 살아오는 동안 나를 많이 아프게 했던 아빠의 표정과 말, 행동을 이해하면서도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아빠의 아픔과 나의 아픔은 별개니까. 아빠는 아빠로서 늘 서투른 사람이었고 여전히 그렇다. 예전에 유명한 시인의 강연회에서 듣고 메모해두었던 '아는 순간은 오지 않는다'라는 말을 떠올렸다. 70년을 살았어도 아빠는 여전히 삶에 의문을 품은 채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아빠의 뒷모습은 날마다 작아지고 아는 순간은 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서 우리는 텃밭을 가꾸고 글을 쓰고 노래를 하고 감나무를 좋아하고 공들여 안경테를 고르고 화를 내고 내지 않고 미워하고 사랑할 수 있겠지. 아빠의 서투름을 모두 용서하지는 못하지만, 아빠가 남은 삶에서 더 자주 호기롭게 20만 원이 넘는 안경테를 살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아빠는 삶을 누려 마땅한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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