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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Mar 17. 2020

평생 할부로 할게요

 따끈따끈한 모양으로 누워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우리 집 강아지 옆에 나란히 누워있노라면, 나는 이 행복을 평생 할부로 데려온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옆에 와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나를 쫓아와서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존재를 알려주는 너. 나는 항상 여기 있겠다고 표정과 몸짓, 숨소리만으로도 충분하게 알려주는 너. 그런 자신에게 화답하지 않아도 걱정할 필요 없다고 안심시켜주는 너. 이 사랑을 나는 평생 그리움과 미안함으로 갚게 될 것이다.     


 나는 살면서 많은 강아지를 만났다. 첫 번째 강아지는 초롱이였다. 초롱이는 하얀 털이 길었던 똥개였는데 눈이 초롱초롱해서 초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침에 일어나면 우리 집은 초롱이가 사방에 싸놓은 오줌과 똥으로 가득했다. 초롱이의 오줌과 똥을 징검다리처럼 건너야지만 거실에서 부엌까지 걸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초롱이는 부모님에게 야단을 많이 맞았다. 나는 초롱이가 바보여서 그런 줄 알았지만, 사실 시골에서 온 아기 강아지 초롱이가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초롱이는 몇 개월이 되지 않아 다른 집으로 갔다.     

 두 번째 강아지는 아롱이였다. 아롱이는 벼룩시장이나 교차로라는 이름을 지닌 생활정보신문에서 샀다. 지금은 보기 힘든 생활정보신문을 통해 그 시절엔 아주 많은 것을 할 수 있었다. 아롱이는 요크셔테리어였는데 아직 아기여서 내가 생각했던 요크셔테리어의 금빛 털이 아닌 아주 까만 털을 지니고 있었다. 슬프게도 아롱이에 관한 기억이 별로 없다. 아롱이도 곧 다른 집으로 갔다.     


 세 번째 강아지는 하동이였다. 하동이는 하얀 동이에서 따온 이름이다. 하동이는 집 근처 동물병원에서 데려왔다. 동물병원의 간호사 언니는 하동이를 꼬맹이라고 불렀는데 정이 많이 들었는지 꼬맹이를 보내기 참 힘들어했다. 하지만 꼬맹이는 우리 가족 마음에 쏙 들었고 곧 하동이가 됐다. 하동이는 몰티즈였는데 산책을 할 때면 나를 끌고 사냥개처럼 뛰어다녔다. 등산을 좋아하는 아빠와는 자주 산 정상까지 지치지 않고 올라갔다. 아빠는 그런 하동이를 아주 좋아했는데, 특히 등산로 초입의 추어탕집 앞을 지키고 있는 진돗개에게 의기양양하게 화를 낼 때면 더욱 그랬다. 우리는 나름 강아지에게 해주어야 할 모든 것을 하동이에게 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지만, 사실은 아주 부족했다. 수컷인 하동이에게 불쌍하다는 이유로 중성화 수술을 시켜주지 않았고, 시골 강아지를 생각하며 엄마는 자주 하동이에게 사료가 아닌 국밥을 주었다. 가끔은 사료를 잔뜩 쌓아두고 1박 2일 정도의 가족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하동이는 차를 타고 창밖을 내다보며 바람을 쐬기를 참 좋아했는데 그 사실을 잘 알면서도 데려갈 수 없을 때가 많았다. 여행 후에 집에 돌아오면 가득 쌓아놓은 사료가 단 하나도 줄어들지 않았던 장면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때는 그 사실이 참 신기했는데 지금은 마음이 아프다.     


 하동이를 아파트 뒤뜰에 풀어주면 하동이는 토끼처럼 자유롭게 뛰어다녔다.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았던 하동이는 베란다 문 앞에서 매일 하울링을 하더니 밖에서 하동이를 풀어주었던 날 집을 나가버리고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동생과 나는 전단지를 붙이고 다니다가 집 안에서 아무 말 없이 울며 누워있었다. 하동이가 누군가의 집에 가서 더 큰 사랑을 받으며 살다가 죽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네 번째 강아지는 지금 내 옆에서 쌔근쌔근 소리를 내며 살아있는 강아지, 복동이다. 복동이는 펫숍의 부조리함을 몰랐던 시절 펫숍에서 샀다. 우리는 펫숍의 작은 케이지 안에 갇혀 있는 수많은 강아지 중 하동이와 같은 몰티즈를, 그리고 가장 크게 짖고 있던 강아지를 선택했다. 아빠와 함께 산 정상까지 올라갔던 하동이처럼 활발한 강아지를 데려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데려온 복동이는 하동이와는 정반대였다. '산책'이라는 말 한마디면 목줄을 들고 달려오던 하동이와는 달리 복동이는 살갗에 무언가가 닿는 것을 무척 싫어해 목줄을 채우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복동이는 겁이 많고 예민해서 막상 산책을 데리고 나가면 안아 달라고 하기 일쑤였고, 강한 바람이 불 때면 견디기 힘들어했다. 수컷인데도 불구하고 밖에서 배변을 보기까지 3년이 걸렸다. 우리는 복동이에게 하동이에게 해주지 못했던 것을 해주려고 노력했다. 때에 맞추어 귀의 털을 뽑아주고 발의 털도 깎아주었으며 늦기 전에 중성화 수술도 시켜주었다. 피부에 좋은 사료를 선택하여 주고, 절대 복동이를 혼자 두고서는 1박 이상 집을 비우지 않았다. 산책을 무서워하던 복동이는 이제 밖에 나가서 위풍당당하게 배변을 보고, 다른 개의 흔적을 찾아 코를 킁킁 벌름거리며 돌아다닌다. 그래도 아직 강한 바람, 시끄러운 차 소리, 다른 개의 울음소리나 낯선 이의 인사를 달갑지 않아 한다. 나는 그런 복동이 그대로가 무척 사랑스럽다. 복동이가 없는 삶을 생각하면 벌써 두려워진다. 그건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복동이는 그렇게 열한 살이 되었다. 그러니 내 삶의 3분의 1을 함께한 셈이다. 복동이가 나이 들어갈수록 나는 무척 조급해진다. 잠이 많아진 복동이에게 맛있는 것을 더 많이 주고 싶고, 풀과 꽃 냄새도 더 많이 맡게 해주고 싶다. 매일매일 노력하지만 많이 해줄수록 더 부족해진다. 복동이는 늘 더 큰 사랑을 나에게 주기 때문이다. 내 감정을 일순간에 알아채고는 내 옆에 와서 웅크리고 있는 복동이를 볼 때면 나는 항상 할 말을 잃는다. 내가 훌쩍이면 복동이는 내 얼굴을 핥는다. 충분하지는 않겠지만 그런 복동이에게 이야기해준다. 사랑해 복동아. 나도 복동이를 정말 사랑해.     


 초롱이, 아롱이, 하동이 그리고 복동이. 나는 복동이가 세상을 떠나면 다시는 강아지를 키우지 않을 것이다. 강아지가 나에게 주는 사랑에 충분히 보답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초롱아. 그때 네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뜻하지 않게 갑자기 낯선 아파트에 살게 되어 많이 힘들었지. 잘못은 네가 아니라 우리가 한 것인데. 아롱아. 까만 네가 내가 생각하는 금빛 털의 요크셔테리어가 되기 전에, 아주 까만 네 모습 그대로 어떤 이의 품의 안겨 떠나던 모습을 어렴풋이 기억해. 새로운 주인과 함께 나이를 먹어 금빛 털을 얻을 때까지 사랑받으며 살았기를. 하동아. 너를 키우며 우리 참 책임감 없는 바보 같은 주인이었지. 자유로운 너를 가둬두고 너로부터 행복을 얻으며 그만큼의 행복을 너에게 주지 못하고. 힘차게 산 정상까지 달리던 네가 이제는 천국에서 원 없이 달리고 있기를.     


 그리고 내 곁에 남아있는 복동아. 최고의 강아지인 너에게 최고의 주인이 되어주지 못해서 항상 미안해. 그래도 네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내 곁에 있어줘. 나도 최선을 다해 항상 네 곁에 있을게.     


 오늘도 침대에서 내 옆에 누워있는 복동이의 등을 하염없이 쓸어내리며 불안해 묻는다. 복동아 행복해? 복동아 정말 행복해? 이보다 더 편안할 수 없다는 듯 발라당 누운 나의 복동이가 귀찮다는 듯 한숨을 내쉬면 나는 그제야 마음을 놓고는 말을 걸기를 멈춘다. 그리고 다행스러운 마음으로 생각한다. 내 삶에 너와 같은 구원은 없을 것이라고. 평생 할부일지라도 내 삶에 너를 들여온 것이, 살면서 최고로 잘한 일이 될 것이 틀림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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