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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Apr 15. 2020

수고했다 코란도

 나의 첫차는 구형 코란도였다. 나는 첫사랑과 함께 첫차를 샀다. 수능이 끝나고 막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으레 그래야 한다는 듯 면허를 땄지만, 딱히 운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내가 운전하는 일은 오지 않는 미래의 일 같았다. 아주 오랜 시간 장롱면허 신세였던 나에게 그 먼 미래의 일이 갑작스레 찾아오게 되었는데, 운전으로 출퇴근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서울시에서 고양시로 지하철과 버스를 다채롭게 환승하며 왕복 세 시간여의 출퇴근 시간을 견뎌내고 있었다. 차를 산다면 왕복 한 시간 정도로 출퇴근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내가 차를 사게 된 것은 그럴 때가 되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외투를 걸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따뜻한 봄날이었다. 첫사랑은 내가 선물한 셔츠와 통이 넓은 바지를 입고 귀여운 신발을 신고 있었다. 아직도 첫사랑은 내 이상형에 무척 가까운 사람이다. 우리는 그날 강남에 있는 중고차 시장에 갔다. 중고차 시장은 만만한 곳이 아니다. 가격 흥정을 위한 신경전에서 승리하기 위해 상인의 대부분이 처음부터 강한 어투를 사용할 때가 많다. 코란도를 사기 위해 만난 사람은 엄청난 근육질의 몸에 딱 달라붙는 붉은색 티셔츠를 입고 나타났다. 다소 퀴퀴한 냄새가 나던 어두운 시장 안에 잔뜩 세워져 있던 차들과 공격적인 표정으로 앉아있는 상인들을 보며 나는 아무 차나 사서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는 일을 좋아한다. 사랑이 잔뜩 고여있어서인지 그곳에서는 다른 차원의 공기가 만져진다. 약간의 폭력성이 밴 시장의 버거운 분위기 안에서 그 애가 얼마나 든든하게 느껴졌는지 그날 내가 느꼈던 자랑스러움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첫사랑에게 말해주지 못했다. 앞장서는 그 애의 뒷모습을 나는 마음껏 들여다보았다. 햇볕이 따뜻했고 첫사랑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바지를 입고 있었고 나는 든든한 그 애와 함께 나의 첫차, 코란도를 샀다. 이제는 차에 이름을 붙이지 않지만, 나의 첫차 코란도에는 '란돌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첫차로 코란도를 선택한 이유 중 팔 할은 나의 짚차에 대한 로망 때문이었지만, 공식적으로는 탱크만큼 단단하기로 유명한 차였기 때문이다. 그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이라도 하듯 나는 란돌이를 타면서 수많은 사고를 냈다. 대부분 경미한 접촉사고였지만 두껍고 단단한 란돌이 때문에 큰 사고가 아니었음에도 한 번은 상대 차가 폐차를 하는 지경에 이른 적이 있다. 그때 코란도의 상징과도 같은 보조범퍼가 망가졌는데, 수리비가 아까워 망가진 범퍼를 그대로 단 채 란돌이를 몰고 다녔다. 살짝 망가진 란돌이를 몰고 다닐 때면 나는 꽤 호락호락하지 않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란돌이와 함께 많은 일을 처음 겪었다. 란돌이를 데리고 첫사랑과 함께 세차 데이트를 했다. 정비소에 가서 깨진 백미러를 수리하며 여자라서 바가지를 씌우지는 않을까 염려했다. 마트에 가서 타이어 교환을 맡긴 후 장을 보았다. 창문을 열고서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틀고 도로를 달렸다. 차체가 높은 란돌이는 조금은 힘차게 발을 디뎌야만 탈 수 있었기 때문에 다른 차를 탔을 때보다 더 근사한 시야를 지닐 수 있었다. 란돌이 안에서 나는 이전과 다른 풍경을 보았다. 나는 란돌이가 좋았고 란돌이를 타고 있는 내가 좋았다.


 란돌이보다 훨씬 가볍고, 핸들도 잘 돌아가고, 브레이크도 세게 밟을 필요 없는 데다 속도가 잘 붙는 차를 엄마에게 물려받으면서 나는 란돌이를 제주도에 사는 동생에게 보냈다. 그 무렵 첫사랑과도 헤어졌다. 나는 첫사랑과 헤어진 이후 딱 죽지 않을 만큼만 아프다는 말을 실감했다. 모든 사람이 이런 아픔을 지나간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제주도에서 란돌이와 가장 멋진 곳을 돌아다녔다. 가끔은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무시한 채 달렸고 믿을 수 없는 풍경을 만났다. 특히 성산일출봉을 지나는 동쪽의 해안도로를 자주 달렸는데, 그 도로를 달리면 반찬이 맛있는 조개죽 집에 갈 수 있었다. 낮에는 바다의 색과 까만 돌,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돋아난 제주의 식물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눈부셨고 밤에는 한치잡이 배가 반짝반짝 불빛을 밝히며 까만 바다 위를 둥둥 떠다녔다. 란돌이 안에서 그 풍경을 보며 울었다.


 동쪽의 해안도로를 달려서 조개죽을 먹으러 갔다가 바다를 보며 돌아오기로 한 제주 여행의 여느 뜨거웠던 여름날이었다. 나는 창문을 크게 열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악을 틀은 채 해안도로를 달리다 안전바에 부딪히는 큰 사고를 냈고 란돌이는 손쓸 수 없이 망가져 버렸다. 타이어가 터졌고 브레이크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자동차 키를 뽑아서 차를 멈춰 세웠다. 견인차를 불러 정비소로 란돌이를 데려갔다. 란돌이를 처음 샀을 때만큼의 비용이 수리에 필요했기에 란돌이를 폐차할 수밖에 없었다. 폐차 후 나는 10만 원을 받았다. 란돌이의 어떤 부분은 누군가가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란돌이와 훨씬 더 긴 시간을 함께하리라 생각했지만, 이별은 갑작스레 찾아왔고 아주 자연스러운 일처럼 여겨졌다. 슬펐지만 그것은 단지 그럴 때가 되어서였을지 모른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멍청한 사고로 위험에 처할 뻔했으니 꽤 잔소리를 듣게 될 줄 알았는데, 다치지 않은 게 다행이었기 때문일까? 부모님은 나에게 아무런 질책도 하지 않았다. 다만 아빠가 가족 단체 채팅방에 남긴 말이 비장하면서도 우스워 여전히 가까운 누군가나 무엇인가가 아주 힘든 시간을 겪어내고 나면 여전히 이 말을 명언 쓰듯 우스갯소리로 쓰고는 한다.


 "수고했다 코란도...."


 첫사랑과 함께했던 모든 일이 생생하게 따뜻하지만 유독 예쁘게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외투를 걸칠 필요 없이 따뜻했던 봄날, 우리는 도시락을 싸 들고 창경궁에 갔다. 참치 주먹밥을 함께 만들었고 커다란 보온병에 따뜻한 커피를 담았다. 꽤 큰 보온병이었는데, 뚜껑을 열어 김이 나는 커피를 따르며 그 애가 "나는 이런 것을 좋아해."라고 말했고 나는 "나도."라고 대답했다. 그 순간이 얼마나 완벽했는지 나는 자주 생각한다. 그 애가 내 옆에 있을 수 없음이 나는 여전히 조금 아프다.


 란돌이는 이제 내 곁에 존재하지 않지만, 아직도 란돌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든든해진다. 란돌이 덕분에 나는 란돌이만큼 단단하지 않은 차를 운전하면서도 의연한 마음을 지닐 수 있다. 그래도 란돌이를 탔을 때만 지닐 수 있었던 시야가 앞으로도 늘 그리울 것이다. 지금 운전하는 차 역시 차체가 높아 조금은 힘차게 발을 디뎌야만 탈 수 있다. 란돌이를 만난 이후에야 좋아하게 된 것이 있기 때문이겠지.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이 말을 한 번 더 쾌활하게 쓰고 싶다.


 수고했다 코란도, 수고했다 나와 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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