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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Sep 20. 2017

06. 직접 지은 집 이름 짓기

<제주에서 내 집 짓고 살기>

우리가 집을 짓기 전부터 고민하고 고민했던 부분, 바로 이름 짓기다. 우리집을 표현하는 간결하고 결정적인 한 방의 어떤 것! 한 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는 이름, 기억하기 좋은 이름. 촌스러워도 안 되고, 너무 고급스러워도 안 되고, 부를 때 발음이 불편해도 안 되고, 안 예뻐도 안 되고, 너무 길어도 안 되고, 영어라면 모르는 단어는 싫고 등등.

이런 얘길 하면 사람들은 “그냥 집이나 빨리 지어!”라고 딱! 잘라 얘기했지만,‘ 이름’은 우리가 절대적으로 고민했던 부분 중 아주 중요한 한 토막이었다.

한번은 남편과 나의 지인 전부에게 공모를 한 적도 있었다. 우리 집에 어울리는 이름을 지어주면, 당첨되신 분께 소정의 상금을 쏘겠다고 했다. 모두들 나름대로 열심히 이름을 지어주었지만, 어찌나 개성들이 강하신지 들으면 헉! 소리 나는 이름을 내놔 우리를 당황하게도 했다. 서태지 빠순이인 내 동생은 무조건 노래 제목을 응용해보라며 환상속의 펜션, 너와 함께한 펜션 속에서, come back 펜션 등 말도 안 되는 이름들을 잔뜩 늘어놓고는 이렇게 지으면 나중에 서태지 오퐈~!가 올지도 모른다며 찐덕찐덕한 사심을 나에게 강요하기도 했다. 나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빠순이지만, 그렇게 지으면 왠지 팬들에겐 고소당하고 서태지 오빠는 창피해할 것 같아 동생을 자제시켰다.

어머님께서 은근슬쩍 ‘가시고기’는 어떠냐며 넌지시 물어보셨지만, 못 들은 척하고 싶은 이름이라 아무 대꾸 안 하고 있다가, 조심스레 “나이 들어 보이는 이름이라 싫어요”라고 어머니 가슴에 살짝쿵 스크래치를 내기도 했다.

남편과 내가 항상 중요하게 얘기했던 부분은 우리 둘이 직접 집을 지은 부분을 잘 살릴 수 있는 이름이길 바랐고, 그것이 시간이든 공간이든 느낌이든 노동력의 가치도 어필할 수 있는 이름이길 바랐다.

조소과임에도 용접을 못 배웠었는데… 남편에게 친히 전수받았다. 우린 어쩌면 사이가 되게 좋은 걸 수도 있다.


어느 날, 둘이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이름에 대한 얘기가 또 주제에 올랐고, 남편이 말을 건넸다.
“아, 우리 이러다 진짜 환상 속의 펜션 되는 거 아냐? 빨리 뭔가 맥락이 잡혔으면 좋겠는데.”
“안 돼! 창피하게!”
“왜? 서태지 팬 많으니까 팬은 30% DC 해주고… 그 팬들만 다 와도, 의외로 대박 나는 거 아냐?”
“그만해. 난 부끄럽지 않은 팬이 될 거라고. 그러지 말고, 우리가 일한 날을 숫자로 표시해보는 건 어때? 예를 들어서 387일이라든가 아니면 시간으로 따져도 되고.”
“좋은 생각이긴 한데, 막상 따져보니까 444일 이렇게 나오고, 막 기분 나쁜 숫자가 나오면 어쩌지.”
“그른가?”
“개월 수로 따져도 되겠다. 중간에 쉰 날짜는 빼고 오로지 일한 달 수만 따져서. 완공이란 기준은 애매하니까 딱! 서류상 준공을 기준으로 따져서 지어보자!”

그렇게 우리집의 이름은 맥락을 잡아갔고, 우리집의 준공시일에 따라 이름이 정해지게 되어 있어서 나름 재미있고 기대되기도 했다.

2015년 8월 21일 금요일. 하늘이 청명하고 해가 부서지게 반짝거리는 날 우리는 준공허가를 받았다. 오롯이 일한 달만 따져보니 13개월 15일이었다.

13개월 15일을 두고 과연 이 단어를 그대로 쓸 것인지 아님, 좀 더 다듬을지를 고민하다 결국 발음이 좀 편한 쪽을 생각해〈13보름〉이라는 타이틀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숨을 못 쉴 정도의 사포질과 우유 같은 눈물을 쏟아내도 우리집에 들어갈 수 있다는 기대심리로, 얼굴과 몸은 엉망진창이 되어도 즐겁게 일을 했던 날들.


앞으로 펜션의 분위기를 좌지우지하는 인테리어와 기타 소품 등 오픈을 위해 할 일이 다시 눈앞에 한가득 생겼지만‘, 13보름’을 얻고 나서 마음은 누구보다 부자가 된 듯 든든하고 기뻤으며, 나와 남편에게 잘했다고 수고했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13보름을 얻은 오늘!
준공을 받은 오늘!
오늘은 술 먹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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