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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찬하 Jun 08. 2016

돌이킬 수 없는

어바웃 타임

 대부분의 시간여행은 과거를 바꿔놓는다. 자신이 태어나기 이전으로 돌아가 부모의 만남을 방해해 하마터면 자신의 존재가 사라질 뻔한 이야기부터 과거의 경찰이 무전기를 통해 현재의 경찰과 수사를 공조하는 이야기까지. 시간 여행을 하게 되는 동기 또한 개인의 과거만큼이나 다양하다. 바뀐 과거로 인해서 펼쳐지는 현재의 모습도 천차만별이다. 변함없는 사실 하나는 누군가는 바뀐 현재를 후회하고 과거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이다. 바뀐 과거를 원상복귀시킬지 아니면 더 나은 현재를 만들지는 이야기의 형태에 따라 달라지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시간 여행을 하는 사람은 그 권능을 딱 한 번만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렇다. 한 번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나에게도 이런 능력이 주어진다면 어떨까. 아마 남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인생에서 결정적인 실수가 일어난 때라고 생각하는 부분으로 돌아가 온갖 과정을 뜯어고칠 거다. 행복했던 하루로 돌아가 그 순간을 만끽할 시간에 당시의 깜냥으로는 감당하지 못한 일들을 돌아보며 후회를 줄여나가고 싶다. 바뀐 과거로 인해 그보다 더 불행한 현재를 맞게 된다고 해도 다시 바꾸면 되니까 상관 없다. 어떻게든 한 번만이라도 바꿔보고 싶은 것들이 있다.    

 처음에는 어바웃 타임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팀은 성인이 되던 날, 자신이 시간여행을 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첫눈에 반한 메리를 시간을 돌려가며 자신의 여자친구로, 아내로 만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실수로 후회할 때마다 시간을 돌린다. 어떤 결점도 없는 완벽한 사랑을 만들어 나간 것이다. 여기까지는 능력의 남용이라고 생각했다. 

 결혼식 장면에서 생각이 좀 달라졌다. 팀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 결혼식을 감행한다. 시간을 다시 돌려 화창한 날에 사랑하는 이와 부부가 될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는다. 모두가 그 순간에 만족했기 때문이다. 팀이 원한 건 메리와의 행복한 일상이었고, 그는 그 이상을 이루기 위해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여기서부터 그의 능력이 행복을 만든 것인지, 그 능력을 사용하는 그의 태도가 행복을 만든 것인지 판단이 모호해졌다. 

 팀이 아버지의 조언으로 같은 하루를 두 번 보내는 장면에서 판단이 확실해졌다. 그의 행복은 능력이 아닌 태도에 기인한다. 그는 끔찍한 어제로 돌아가 끔찍하지 않은 일상을 보낸다. 바뀐 사건은 없다. 출근을 하고 일에 쫓기다가 지하철을 타고 퇴근한다. 다만 일에 쫓기다가도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 상점에서 주인과 웃음을 나누며 지하철 옆 자리에 앉은 이가 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즐긴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나쁘지 않은 하루였다 말한다. 그의 능력이 개입한 부분이라고는 하루를 되돌린 것 빼고는 없다. 그럼에도 그는 행복하다. 

 대개 시간 여행자의 고뇌는 자신이 바꿔놓은 수많은 인과 관계들이 엉켜 한꺼번에 문제를 일으킬 때 발생한다. 능력의 남용이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애시당초 주어진 능력을 거대한 일에 사용하지 않는다. 물론 다른 이들의 일상을 바꿔놓기는 한다. 여동생의 짝에게 문제가 있음을 알고 과거로 돌아가 그녀가 그를 만나지 못하게 막는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가 능력을 사용하는 범위는 명확하다.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과의 일상을 찾는 용도 외에는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금방 해결할 수 있다. 그렇게 그는 일상을 지켜나간다. 

 결국 그가 '바꿀 수 있는' 능력을 통해 얻은 건 아이러니하게도 '바꿀 필요가 없는' 일상이다. 그리고 그는 더이상 시간 여행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매일을 위해 시간여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하루를 보낸다. 나는 그가 찾은 일상이 그의 말처럼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어쨌거나 그가 느낀 일상의 가치도 특별한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능력을 버리고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버지로 평범하고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장면은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다.   

 팀은 이제 능력을 죽기 전까지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을까. 아마 한 번쯤은 사용할 것이다. 바꿀 필요가 없는 하루를 만들겠다 다짐했음에도 언젠가 한 번쯤은 바꾸고 싶은 게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바꿀 수 있는 게 없으므로 바꾸고 싶은 것들이 생기지 않게 하는 수 밖에 없다. 이 이야기가 가장 크게 위안이 되는 건,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능력을 포기했음에도 행복하기 때문이다. 

 항상 대책없이 긍정적인 것들을 보면 믿음보다는 불신이 간다. 사실 이 이야기도 사랑스러운 레이첼 맥아담스(메리 역)의 모습을 필두로 한없이 좋은 것들만을 보여줘 당황스러웠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수긍하게 된 건, 팀이 마지막에 능력을 버리고 일상에 만족한다 말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바꿀 수 있는 사람은 돌이키지 못하는 것들의 소중함을 알기 전까지 행복할 수 없다. 바꿀 수 없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행복의 전제 조건은 돌이킬 수 없음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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