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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쓴이 Jul 19. 2023

마음이 넉넉해지는 토요일.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아무래도.

노란 커튼을 뚫고 들어오는 햇살에 잠이 깼다. 고양이 세수만 하고 통이 큰 바지에 박스 티셔츠를 걸치고, 현관문에서 모자만 쓰고 집 밖으로 나간다. 얼마 전에 생긴 베이글 가게는 인기가 좋아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 먹는데, 근처에 사니까 오픈 시간에 맞춰서 대기 없이(!) 베이글을 살 수 있다. 가장 좋아하는 플레인 베이글에 바질 크림치즈를 사고, 커피 한 잔이 1,500원인 테이크아웃 커피점에서 커피도 하나 사 들고 5층 계단을 오른다.


주말 아침, 9시도 안 된 시간이다. 집에 도착해선 희고 큰 원형 테이블에 앉아 커피와 베이글을 먹는다. 좋아하는 영상을 틀어놓고서. 후다닥 식사를 마치면 그다음은 샤워해야지. 주말, 토요일에 샤워할 때는 항상 화장실 청소를 겸하기 때문에 매우 오래 걸린다. 지난 몇 주 동안 비가 연속으로 내렸기 때문에 해가 잘 들지 않는 화장실 이곳저곳에 곰팡이가 피었다. 솔로 박박 문대고, 화장실 벽을 물로 먼저 샤워시킨다. 변기에는 린스를 몇 번 짜 넣고, 뚜껑을 덮어둔다. 청소하느라 데워진 몸을 찬물로 가라앉힌다. 샤워하고 나와 머리를 대-애-충 말리고 집 밖으로 나간다. 딱히 약속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장마가 그친 뒤 햇살이 좋아 집 근처 호수를 걸어보기로 한다. 마침 읽을 책이 있어 책도 챙겼다. 호수를 30분쯤 걷고 사람이 없는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다가, 서서히 졸음이 몰려오면 집으로 향한다. 낮 잠시간이군. 집에 도착해 짧은 낮잠을 즐기고 일어나 점심을 챙겨 먹는다. 요즘은 노화 방지 겸 다이어트를 위해 저녁을 거르고 있어서, 점심만큼은 단백질, 탄수화물 그리고 지방이 적절을 조합해 든든하게 먹어줘야 한다.


기지개를 켜고 뭐 할 거 없나 집 안을 둘러보는데 눅눅해진 이불이 시야에 걸린다. 이불을 낑낑대며 돌돌 말아 큰 부직포 가방에 넣고 세탁방으로 향한다. 세탁을 기다리는 동안 할 일이 없으니, 아이패드도 함께 챙겨준다. 발급하자마자 VIP가 되는 카드에 1만 원을 충전해 세탁을 돌리고, 기다리고, 또 건조를 돌리고, 기다린다. 약간 지루해졌을 때쯤 이불이 뽀송하게 말랐다는 알림이 들려온다. 다시 한번 더 낑낑. 이불을 개켜서 가방에 넣고 집으로 돌아와 원래 있던 모습으로 세팅한다. 후하. 시계를 보니 벌써 5시다. OTT 플랫폼을 여기저기 전전하다가 얼마 전 영화관 상영이 끝난 영화를 하나 고른다. 건조를 마치고 와서 뽀송해진 이불에 몸을 뉘이고 영화를 본다.


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연약해진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가 거리를 걸어본다. 주말 저녁이라 그런지 거리에 사람이 많다. 나는 동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새로 생긴 가게를 둘러보고, 지도에 저장한다. 가게 안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길 나누거나 깔깔깔 웃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트럭 꽃차 아저씨나 화분상점에 들어가 새로 들어온 식물을 구경한다. 곳곳에 참 아름답게도 피어있구나. 때때로 자전거를 타고 집 근처 큰 공원까지 간다. 높은 곳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제 갈 길 찾아 달리는 자동차를 보고 있으면, 아! 이게 내가 원하던 토요일이지. 싶다.


집으로 돌아가 샤워를 하고 찬 물을 한잔 들이켠다. 침대에 누워 요가 명상 영상을 틀어놓고 잠에 든다. 하루종일 그 누구도 만나지 않고, 어떤 큰 이벤트도 없었지만 행복과 사랑으로 충만하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나의 토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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