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바닷가.
안녕하세요. P입니다.
여러분은 가장 좋아하는 곳이 있나요? 저에게 어떤 곳이 가장 좋으냐 묻는다면 저는 단번에 말할 수 있어요. 사람이 적어 조용하고, 한적하고 여유가 흐르는 곳입니다. 사람치고 조용하고 여유로운 곳을 싫어하는 이가 있겠냐마는 저는 그런 곳엘 다녀오면 에너지가 정돈되는 것 같아요. 모난 에너지가 다듬어지는 것처럼 말이죠.
강원도는 속초며 양양이며 강릉이며 - 여기저기 다 다녔어도 왠지 정이 가지 않더라고요. (만석 닭강정과 새우튀김이 있었는데도 말이죠.) 그러다 작년 봄엔가, 여행을 좋아하는 한 친구가 고성에 작은 바다를 하나 추천해 주었어요. 바닷가 앞이지만 횟집과 호객꾼들이 많지 않고 어르신들이 운영하는 민박집이 많은 곳이라고 했어요. 낮은 건물들뿐이라 마음이 북적해지지 않고 한가로워진다는 것이에요. 그 말에 저는 버스를 타고 고성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의 첫인상은 이랬어요. 어떤 작은 마을, 이상하게도 노인과 어린이가 많은 동네. 해수욕장이 아닌 거칠어 보이는 바다가 덩그러니 펼쳐진 곳, 택시 기사들이 종종 밥을 먹으러 오는 문어 국밥 식당이 고작 한 개 있는 곳. 민박집 아주머니의 미소가 보기 좋은 곳. 지나치는 여행객을 보면 웃어주고 인사를 하는 동네 사람들이 있는 곳. 민박집에서 뛰어가면 바닷가가 30초 이내에 있는 곳.
파도가 매서운 터라 한여름에도 해수욕을 즐기기엔 적합하지 않고, 작은 자갈들이 많이 역시나 해수욕을 질기기엔 적합하지 않았어요. 자갈을 조금 걷다가, 더 걸으면 갑자기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깊은 바다라 해수욕을, 그것도 온 가족이 즐기기엔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다 앞에 돗자리를 하나 깔아 두고 책을 읽거나 커피를 마시기에 좋은 곳이었어요. 매서운 파도 덕에 철썩철썩하는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요. 그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책을 읽기 좋았어요. 근처 민박집에서는 뜨거운 물을 받아와서 사발면을 먹어도 뜨끈하니 좋았고요. 밤이 되어도 폭죽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에 밤바다를 산책하기도 좋았어요.
저는 올여름 끝자락에 고성을 다시 찾았어요. 사랑하는 이와 나란히 앉아 밀려오는 바다를 보는 일이 좋았어요. 끝없이 플레이하고 싶은 어느 한 장면처럼 다가왔어요. 가만히 맥주캔을 부딪치는 소리가 좋았고, 가만히 오징어 땅콩을 건네주는 손이 사랑스러웠어요.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많은 것을 말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하늘에는 별이 쏟아질 듯이 많고, 바다 저편은 끝없는 어둠이 지속되다가도 아침이 오면 언제 밤이었냐는 듯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어요. 이 동네를 찾아 놀러 온 몇 안 되는 사람들이 새벽에 밖으로 나와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고 어색하게 서 있었어요. 마음이 갑작스레 벅차더라고요. 빛나더라고요.
고성 바다는 저를 행복에 겨운 사람으로 만들어 줍니다. 그 바다를 곱씹어 보면 항상 파도 소리가 들리는듯해요. 너무 고요해서 내 마음도 고요해져요. 울퉁불퉁해진 제 마음을 편평하게 만들어줘요. 제가 제 삶을 사랑하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시기에 적절하게 그 바다에 가는 것이에요. 여름의 끝자락, 고성에 다녀온 후 저는 좀 더 잘살고 있는 기분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