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화만사성과 용서의 유무는 왜 필요한 가.
<가화만사성과 보통의 가족>
일륜지대사 가화만사성이라 할 만 하다.
뿌리 없는 나무 없고 그 뿌리는
토양 그리고 자연환경으로 만들어 짐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사람는 무엇으로 사는 가?
과연 사랑만으로 사람은 자라나는 가.
뜻 밖에도 사랑과 지지 그 외적으로 엄청난
많은 감정들을 겪으며 사람은 사람으로
혹은 인간으로 자라난다.
가화만사성은 보통의 가족을 만들지만
가화만사성이 아님은 아주 블랙 코미디의
<보통의 가족>을 말한다.
<내 자식 위하자고 남의 자식 해하는 것 아닌거야>
내 자녀는 법률가의 자녀
네 자식은 의료진의 자녀
나는 장남, 너는 차남.
그리고 나는 소위 기득권
너도 꽤나 소위 기득권.
그러하니……
다른 이의 잘못에 법과 윤리적 문제로
잣대를 들이대며 말하곤 한다.
“네가 잘 못이야. 내 자식은 그저…..”
그러나, 실상은 쌍방과실일 때.
혹은 실상 둘 다 문제일 때.
그들을 알면서도 모른척 한 죄가
덮쳐 올 때 당신은 무엇을 논할텐가.
그저 하늘만,
그저 종교적 의식으로
아니라면
사회적 반성의 의미 혹은 행동으로써
봉사활동을 선택 할 것인가.
<용서는 누구의 몫인가>
용서는 사실 신이 행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일이 있을 때 모르쇠 혹은 방관자들이
더이상 방관자로만 남지 않을 때,
방관자가 아니라 반대 선상에서
사람이 인간다울 수 있을 때.
우린 사람이 아닌 인간으로서 살 수 있다.
하늘을 손바닥으로 가려보면 안다.
내 시야 각이 얼마나 좁은지.
쉬운 용서는 복수만 못하다.
형 혹은 죄에 대한 댓가를 치룬다는 의미는
죄에 대한 사면이 아니다.
그 기간을 채운다는 것은 죄에 대한
피해자의 용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혹여나 착각으로
‘난 이미 할 도리 다했어.’
라는 의미는 통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다.
용서, 그것은 최대한의 반성과
그에 대한 사회적 합의.
그리고 마지막에 와서
피해자에 대한 최선의 도리여야 한다.
이 영화에서 피해자는 죽은 이, 두 명.
그리고 첫 사건 장면의 어린 여자 아이 한 명.
그리고 최후의 피해자이자
최대 가해자인 그 둘이다.
<변호사의 정의론과
의사의 이성적 판단이 내린 결>
변호사의 정의는 방패이며
의사의 정의는 이성이다.
결말은
극장에서 확인 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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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이 아닌 가족임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