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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호정 Nov 21. 2018

소녀는 울지 않았다

영화 '영주'를 보고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관람하였습니다.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영주와 영인


 소녀는 울지 않았다. 그동안의 시간이 눈물을 모두 앗아간 것인지, 아니면 차마 마음 놓고 울 순간 조차 없었던 탓인지. 그렇게 시간이 흘러 영주(김향기 분)라는 이름의 소녀는 얼추 어른의 경계까지 온 모양이다. 소녀는 아주 훌륭한 핑곗거리를 안은 것이었다. '어른이니까'는 그녀의 다짐이자 부담이었다. 다른 '어른'의 눈에 그녀는 여전히 여렸지만, 그날 이후 무너져 내린 마음 한구석에 무언가가 단단히 박혀 있었다. 상처라고만 생각했던 그것이 그녀를 굳세게 만들었다. 그 굳셈으로 하나밖에 남지 않은 동생을 품어주었다.


 소년은 화를 냈다. 잃어온 것들에 대한 것인지, 아니면 잊지 못한 것들에 대한 것인지. 영인(탕준상 분)이란 이름의 소년의 분노는 여느 사춘기 소년의 투정과는 달랐다. 마음 깊숙이서부터 우러러 나온 세상에 대한 거부반응이었다. 그렇지만 그 분노는 누나라는 벽 앞에 턱 하고 막힌다. 영주의 눈에는 응석꾸러기 동생이었다. 괜찮다고 다독이며 영인이 무너지지 않도록 해주지만, 삶에 서툰 만큼 모진 말만 튀어나오는 그였다. 불안하게 태우던 심지는 결국 폭발시켰고, 그를 무너뜨렸다. 영주의 눈앞에 놓인 합의금이라는 단어는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메마른 단어였다.



#2. 불편을 자처하다


 영주는 많은 걸 잃어왔다.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었고, 구멍이 나버린 가족이란 울타리는 더 많은 것을 잃게 했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이 들만큼 끄트머리에 놓여있었다. 어린 소녀의 결심이 어느 방향에 놓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스스로 불편한 동행을 자처하는 모습은 묻어놓고 사는 것이 익숙했지, 잊고 살아온 것은 아니었기에 기억의 발현이 불안하기만 하다. 그녀의 날 선 결심은 과거 자신에게서 부모를 앗아간 그들을 만나게 했다. 하지만 그 모습은 그녀가 생각했던 모습이 달랐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무시무시하게 존재했던 괴물은 다름 아닌, 어쩌면 당연하게도 두 명의 사람의 모습이었다. 영주는 이질감을 느꼈다. 그러면 안됐다. 그녀는 황급히 자신의 날 선 결심을 숨겼지만, 발을 멈추진 않았다. 그래도 괜찮다. 가해자니까 괜찮다. 나는 괜찮다. 몇 번이고 생각한 그 마음으로 행하고 나니, 다친 건 그녀의 마음이었다.


 사고는 한순간이었다. 한 점을 중심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게 돼버렸다. 그렇기에 안타깝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분명했지만, 그 뒤에 남겨진 것들 또한 인간의 범주 안에 있을 뿐이었다. 여렸다. 성장에서 오는 성숙의 단계가 아닌, 단순히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그랬다. 영주는 그들에게서 인간을 보았다. 자신과 같이 점을 지나쳐 무너져 내린 또 한 명의 그것이었다. 



 #3. 그럼에도 따스했다


 영주는 둘을 만났다. 그들 또한 잃은 것이 많았다. 그녀가 그래 왔던 것처럼, 그들도 순응하고 받아들이고 참고 버티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에게 다가설 악심 가득한 본의는 이미 녹아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영주와 그들은 정반대의 곳에 서서 서로 비슷한 모양의 상처를 안고 있었다. 분명 온정을 느껴선 안 되는 상대였다. 그녀를 정확히 반으로 갈랐다. 그녀가 미소를 되찾을 때마다 그동안 현실이라 믿었던 것들에게서 멀어져 갔다. 이상적이고 좋았다. 그것이 문제였다. 가까워질수록 간신히 숨겨놓은 상처가 드러날 터였다.


 영인은 말했다. 여전한 분노와 함께, 그들이 영주의 상처를 보고도 그녀를 받아줄까 하고 질문을 던졌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당연하다 말했다. 하지만 뒤늦게 스며드는 불안은 답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들에게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고 다가갔던 영주는, 그들에게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영인의 머릿속에선 그들은 따스해서는 안됐다. 스스로가 냉혈한이길 택했던 영인이기에, 그들은 그보다 더 이하의 삶을 살길 바랬을 것이다. 


 따스함이 미웠다. 동시에 고마웠을 것이다. 영주의 눈에 그들은 여전한 아른거림으로 속죄를 하고 있었다. 영인의 눈에는 여전히 분노 어린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가운데 단어 단 하나, '용서'라는 것 앞에서 관계가 멈춰버렸다. 그제야 소녀는 울었다. 다리의 난간을 부여잡고, 비상도 추락도 꿈꾸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 엉엉 울어버렸다. 소녀의 모습도 어른의 모습도 아닌 한 인간의 모습으로 그렇게 울어버렸다. 과거 그들을 옭아맸던 어둠이 끝끝내 불식되지 못한 채, 또 한 번 그들의 발목을 휘감았다. 



 

용서라는 단어를 필두로, 그들이 가졌던 감정이 한순간에 무색해진다. 진심을 다해 소리쳐도 닿을 수 없는 소리가 있었다. 마음의 무게는 호의와 사죄로는 덜어지지 않았다. 괜찮다고 쉽게 말을 꺼내기엔 서로에게서 많은 걸 빼앗고, 너무 많은걸 나눴다. 죄책감을 품고 서로에게 다가서는 관계는 결코 밝지 않았다. 그렇게 남겨진 그들의 관계는 결국 다른 색을 입었다. 영주에게 사준 분홍빛의 따뜻한 잠바가 아닌, 삭막한 마음을 닮아 화려함도 수수함도 없는 참으로 건조한 색이었다. 


 영화는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진다. 그들의 관계는 잘못됐을까. 애초에 처음부터 발을 디뎌선 안 되는 관계였을까. 나아가는 영주의 뒷모습이 유독 쓸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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