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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호정 Nov 01. 2018

청춘은 그렇게 빛났다

영화 <파밍 보이즈>를 보고

#0. 도전과 객기 사이


 청춘이 있었다. 두려움보단 설렘으로 현실보다는 꿈으로 가득 찬 그런 시기가. 아니, 사실 완벽하게 거꾸로였다. 두려움이 앞섰고, 눈앞엔 현실만이 놓여있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한 발짝 물러섰다. 그렇게 세상을 보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드넓은 들판이 있고, 드높은 하늘이 있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농사'라는 단어 하나가 단단히 박혔다. 어떠한 하늘의 부름이나 지독한 숙명 따윈 없었다. 그냥 해보자라는 가벼움으로 도전과 객기 사이에서 영화 <파밍 보이즈>는 시작한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냐만은, 지황, 두현, 하석 이 세명의 이야기는 조금 크기가 다르다. 평범한 귀농일기가 아닌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것을 보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도전하는 농사 여행기이다. 세 청년이 내민 발걸음에는 거침이 없었다. 수십 개의 거절 메일도 받아보고, 알프스 산을 걸어 넘어 농장을 찾아가기도 하고 힘든 일이 가득했다. 그래도 까마득한 앞길을 새벽녘을 따라, 수많은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또 나아갈 수 있었다. 



자연에게 돌려줘!


#1. 나의 공간


 영화는 땅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특히, 농사라는 특수상황은 땅에 더욱 민감하다. 과거 땅을 소유할 수 있다는 발칙한 상상은 현재의 부동산을 낳았고, 현대에는 내 집 마련이 삶의 목표가 되기도 한다. 어쩌면 아주 옛날부터 간직해온 인간의 전통적인 목표일 수도 있는 그것이, 그들에겐 더더욱 간절했다. 도시인들과 농사꾼들 각각에게 갖는 '내 공간'의 의미는 다르다.


 사실상 농사꾼들에겐 땅을 '빌린다'가 좀 더 맞는 표현이었다. 두발 밑에 땅을 놓고 선을 그어 표시를 한다고 해도, 엄연히 땅은 자연의 것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자연에게 돌려줘(Payback)'라는 마음을 품고 살아가고 있었다. 도시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에게도 자신의 땅이란 욕심은 있지만, 그 밑바탕 마음이 다르기에 다가오는 의미 또한 다르다. 치열하게 돌아가는 도시 사이에 자신의 공간을 비집고 들이미는 것이 아닌, 드넓은 땅 한가운데 허락을 받아 무언가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사실 자체에 그들은 만족하고 있었다.


 안락함은 그렇게도 다가온다. 넓은 땅 한가운데 덧없이 앉아 내리쬐는 햇살을 가득 채운 땅을 바라보는 것. 그 가운데 흥얼거리는 노래와 직접 담근 술 한잔만으로도 그들은 안락한 자연의 품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공간은 정말로 터가 되어 앞으로 그곳에 할 수 있는 수많은 것들을 상상하고, 설렘 가득한 그 공간이 진정한 자신의 공간이라 할 수 있었다.


난 사기꾼이 아니니까


#2. 정직함


 농부는 요행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자연이 그들에게 솔직한만큼 그들도 솔직해질 필요가 있었다. 자연은 그들에게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두 달 동안 비를 내리지 않을 수도, 할 일이 많아도 금방 해를 감추고 캄캄한 밤하늘만을 보여줄 수도 있다. 그렇기에 때론 하늘이 원망스럽기도, 때론 한없이 감사하기도 하다. 꾸밈없이 다가오기에 자연을 속일 수도 없다.


 사과주를 만드는 농장에서 만난 '질 아저씨'는 유기농을 고집해온 농사꾼이다. 그가 만든 물품에는 유기농 마크가 붙어있는데, 그 과정에서 다른 곳들은 아주 미량의 허용 가능치의 다른 첨가물을 섞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경계선에 서서 아슬아슬하게 일하고 싶지 않다며, 자신은 사기꾼이 아니라 순수한 농사꾼이라며 자부심을 내보였다. 그 정직함은 5년 동안 15개의 상을 받을 정도로 인정받았고 강한 힘을 갖고 있었다.


 그것이 좋았을지도 모른다. 자연과 사람 사이에 속임이 없기에, 생명력 사이 존재하는 본의는 언제나 순수할 수 있었다. 바쁘게만 돌아가는 사회 속에서 가장 중심에 박혀있어야 할 기본적인 정직함이라는 가치가 어쩌면 빠른 속도로 잊혀 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효율성과 가성비라는 단어들 사이에서 그들은 자신의 단어를 재정리했다. 조금 서툴고 조금은 멀리 돌아가더라도 정직하게 한걸음 한걸음 다져가며 나아가기로 그들은 그렇게 결심했다.



스마일 어게인!


#3. 결국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


 여행 중 그들은 노래를 불렀다. 웃음을 잃고 살아간다며 다시 웃자며 노래를 불렀다. 여행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2년이란 시간 동안 그들은 함께 움직였지만,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여행이 끝이 다가올수록 그 사실은 더욱 선명해졌다. 하지만 그것이 포기를 불러오거나 실망으로 남지 않았다. 그들은 농사뿐만 아니라 더욱 많은 사람들을 보고 만나면서 사람 또한 배울 수 있었다. 그렇기에 참된 여행이 될 수 있었다. 그 끝에 완성한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자신을 마주한다는 것은 힘들지도 모른다. 특히나 불안한 사회 속 나아가기를 채찍질당하는 20대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그들이 보여준 여행기는 어떠한 정답을 제시한다기 보단, 그냥 자신들의 소중한 일기를 엿보는 느낌이었다. 그냥 이런 삶도 있다는 느낌으로 영화 가득 생명력을 안고 에너지를 전달해주었다. 영화 내내 많은 것들을 했지만, 그들은 더 많은 것들을 하길 원했다. 과거는 언제나 앞으로 나아갈 준비 과정이 되기에 틀려도 되고 잘못해도 된다. 


 청춘은 그렇게 빛났다. 땀도 흘리고 고생도 하고 물론 실수도 했다. 그럼에도 결국 마지막에 그들은 '해냈다!'라고 외칠 수 있었다. 그것은 마침표가 아닌 쉼표가 되어 또 그들을 어디론가 데려갈 것만 같은 외침이었다. 그들은 물론 우리들도 앞으로 어떠한 삶을 맞이할지 모른다. 하지만 문득문득 떠오르는 다시 웃자는 노랫말이 귓가에 맴돌며, 잊고 있던 생명력을 일깨워 아름답고 찬란하게 우리를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파밍 보이즈 (2017)

A Star Is Born


다큐멘터리 | 한국


2017.07.13 개봉  | 98분,  전체관람가



(감독) 장세정, 변시연, 강호준


(주연) 권두현, 김하석, 유지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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