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타 이즈 본>을 보고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관람하였습니다.
스타가 되고 싶었다. 눈을 감고 상상을 했다. 커다란 무대를 그녀의 노래로 가득 채우고, 많은 사람들의 박수갈채와 환호성 속에서 한껏 빛나고 있었다. 가슴이 벅차오르고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며 하늘을 나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여기서 영원히 눈을 감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눈을 뜨면 또다시 무너져 내릴 터였지만, 환상 속에 스스로를 가두는 만큼 슬픈 것도 없었다. 때문에 천천히 눈을 뜨고 아쉬움 가득한 눈으로 무거운 공기를 맞이했다. 숨을 크게 한번 내쉬고, 소리치는 상사의 말과는 완벽한 불협화음으로 억지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다시 현실로 향했다.
누군가에게 스타는 그렇게 멀리 존재하는 별처럼 아득히 빛나고 있을 뿐이다. 영화 <스타 이즈 본>의 '앨리(레이디 가가 분)'는 아쉬움을 삼키고 바에서 노래를 부르며 그녀의 열정을 삭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미 성공한 뮤지션이란 수식어를 가진 스타 '잭슨 메인(브래들리 쿠퍼 분)'을 만난다. 그는 이미 거대한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난 뒤였지만, 그것은 에너지의 화려한 발산이라기보단 고갈을 향한 소모와 같았다. 그가 공연 뒤 마시는 술은 축배가 아닌 공허함을 달래기 위함이었다. 서로 다른 쓴 내를 느끼고 있는 그 순간에 운명이듯 우연이듯 둘은 만났다.
둘은 강하게 이끌리고 있었다. 서로의 노래에 서로의 이야기에. 서로를 만난 그 접점에서 새로운 모양으로 선을 이어갔다. 앨리는 전과 다른 곳에서 잭슨은 전과 다른 모습으로 노래를 할 수 있었다. 그 시작점에는 '자신'이 있었다. 서로가 나눈 대화 속에서는 허세도 꾸밈도 없었다. 진솔한 대화를 매개로 이어지는 사랑은 서로를 더욱 빛나게 해 주고 자신을 완성하는데 도움을 준다. 사랑은 혼자서 완성될 수 없다. 서로에게 존재했던 결여는 서로가 채울 이해와 배려가 되고 마음의 순환을 위한 촉매가 된다. 그렇기에 그들은 무섭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같은 세상 속에서 발맞추어 걷기란 힘든 일이다. 사랑으로 하나가 되고 다름을 이해했다고 하더라도, 서로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 자체를 바꾸진 못한다. 그렇기에 발걸음은 어긋나고 누군가는 남겨진 발자국을 따라 걸을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 영화에서 서로는 서로에게 기회를 주었다. 앨리는 커다란 무대에서 꿈을 노래할 수 있게 되었고, 잭슨은 공허한 자신을 채울 수 있었다. 그런데 현실은 앨리에게 더 커다란 기회를 선물해 주었고, 그녀가 걸어온 길이 아닌 다른 길을 보여주었다. 앨리는 스타가 되기 위해 그 길을 걸었고, 그 뒤에 자기 자신을 남기고 나아갔다.
앨리는 머리를 염색하고 격렬히 춤을 추고 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잭슨은 뒤에서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남겨진 그녀의 형상에 손을 내밀어 보지만 손에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떨리던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무대를 향했던 그녀는 어느새 스타가 되어 무대를 뒤흔들었지만 그 진동은 전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 커플에 열광했다. 타인의 시선으론 한없이 완벽한 커플이었고 앞으로 성공가도만이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시선 뒤엔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서로가 있었다.
잭슨은 그녀의 코를 사랑했다. 행운을 가져다줄 것이라며 그녀의 코를 사랑스럽게 어루만졌다. 그런 그가 이제는 다른 말을 했다. 그녀의 코가 못났다 했다. 그녀의 코가 아름다웠던 이유는 앨리에게 달려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코는 이제 다른 사람에게 달려있었다. 설렘과 꿈 가득 노래 부르던 그녀가 아닌, 하나의 상품이 된 스타에게 붙어있기에 어울리지 않게 되었다. 그는 그녀에게 말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날의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지금은 박자에 맞춰 기계적으로 대중들 앞에서 고개를 흔들 뿐이었다.
스타로 거듭나기 위해서 그녀 스스로는 희생이라 여겼지만, 잭슨이 받아들이기에는 단순한 소실일 뿐이었다. 그녀의 옆에서 예전의 앨리를 그리워하는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다시 전과 같이 공허함을 무디게 하기 위해 취하는 수밖에 없었다. 술에서 깨어나 그가 본 것은 더욱 선명해진 현실이었다.
그들은 그 끝에서 자각했다. 그동안 많은 일이 쌓이고 쌓여, 이제야 깨달았다. 그것은 분명 계몽은 아니었다. 어쩌면 그동안 억지로 외면해왔던 현실 자체일 것이었다. 음악이 그들을 이끌어 왔지만, 현실의 색을 짙게 발라서 다시 살펴보면 그것은 하나의 사업에 지나지 않았다. 영화는 음악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면서도 그 세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녀가 원하던 스타가 되지만, 그 뒤에 느껴지는 안타까움은 잭슨뿐만이 아니라 스크린 밖 관객들도 느낄 수 있다.
별은 환하게 빛난다. 저 멀리서 누군가의 꿈과 희망이 되기도 하고 한없이 아름다워 보이기만 한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별은 빛나기 위해서 스스로를 불태우고 있었다. 영화는 그것을 말해준다. 화려함에 취해 자각하지 못했던 아픔을 영화는 절실히 보여준다. 그들이 보여준 사랑의 모습은 결코 단순한 한 가수의 성공기나 한편의 아름다운 동화가 아니었다. 음악이 곁들여진 그들의 이야기는 더욱 깊은 울림을 갖고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영화가 끝나고 메아리치는 그들의 노래는, 우리가 현실에 발맞추기 위해 잃어버린 '자신'이란 존재를 끊임없이 되돌아보게 만들 것이다.
2018.10.09 개봉 | 135분, 15세 이상 관람가
(감독) 브래들리 쿠퍼
(주연) 브래들리 쿠퍼, 레이디 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