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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란 Mar 05. 2024

일시정지

퇴고 없이 단번에 쓰는 글

포장을 뜯지 않은 소파가 책장 위에 있다

제목과 목차만 아는 책이 줄지어 있다

이 년이 흘렀다

지구가 자전한다

마라톤은 42.195km이고 하프 마라톤은 20km이다

사라진 거리만큼 멍하니 강을 내려다본다

늘어난 시간만큼 팔을 길게 뻗는다

신입생 오티 때 손깍지를 잡았다 결혼을 한 남자와 여자가 피자를 먹는다

손이 부딪힐 때마다 미끄러진다

기름은 물과 섞인 적이 없다

시작도 끝도 없는 호수를 따라 한쪽 방향으로 돈다

주인 없는 앵무새도 목줄 없는 얼룩말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계 방향으로 돈다

미루고 미루다 맞이한 생일은 윈도우 업데이트처럼 예고도 없이 찾아온다

슬리퍼는 발을 기다리고 가위는 세로로 꽂혀 있다

기다리라는 말은 강아지처럼

자리에 온기를 남기고 움직이지 않은 채 년이 흘렀다

여자와 남자는 반대 방향으로 돌고

부딪히는 어깨를 모른 척하고

아무도 물어보지 않은 물음에는 대답을 할 수 없어

길은 미끄럽고 땅은 한쪽으로 움직인다


뒤통수에 난 둥글넓적한 흉터는 머리카락을 기다리고

눈은 노려본다

입은 참을성이 좋지만 온기 있는 말이라고 다 듣기 좋은 것은 아니야 오늘은 떨어지는 책들에 파묻히는 날

구하러 오지는 마 한 바퀴를 기다리면 다시 돌아올 테니

땅은 조용하다 흔들리다 조용하고 다시

이 년이 흐를 준비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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