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생기는 일
월요일 출근이 재밌고, 회사 가는 게 즐겁다고 말하면 주변인들은 신기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본다.
몇 년 전 온라인 커머스 MD로 일했을 때 내가 지금의 나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났다면 나도 똑같은 반응이었을 거다.
돈을 번다는 행위는 회사에 붙어있는 시간을 견뎌내고 하기 싫은 일을 하기 때문에 돈이 벌리는 거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다. 내가 가진 행복을 조금씩 떼다 팔아야 내가 몸을 뉘일 수 있는 보금자리를 영위하는 값, 내가 먹을 음식을 마련할 수 있는 비용 등을 벌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일이 재밌어서 어떻게 하면 내가 더 임팩트 있게 일을 할 수 있을지 하루종일 궁리하고 고민하다가 도파민에 잠 못 이루는 밤들이 있을 정도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벌 수 있다는 건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다.
지금 내 직무명은 피트니스디렉터다. 그 전의 직무였던 MD도 업계에 있는 사람이 아니면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을 별로 못 만나봤는데, 지금은 각 잡고 설명을 해줘야 '오 그런 일도 있군요' 하는 느낌이다.
홈트 서비스를 하는 앱에 들어갈 운동 콘텐츠를 기획하는 일을 바탕으로 오프라인 클래스도 기획하고 판매하고, 제품을 발전시키는데 필요한 피트니스적인 지식이나 역할이 있다면 개발, 마케팅 팀과 협업하는 일도 하고 있다. 홈트 콘텐츠를 만들 때, 촬영현장에서는 PD가 되기도 했다가, 코치를 캐스팅할 때는 연예 기획사 직원이 된 것 같기도 하고 대본을 쓸 때는 작가가 된 것 같기도 하다. 클래스를 기획하고 판매할 때는 필라테스 센터 원장이 된 것 같기도, 행사기획자가 된 것 같기도, 다시 MD로 돌아간 것 같기도 하고, 회사 내부에서 개발자나 마케터랑 이야기할 때는 영락없는 IT 스타트업을 다니는 회사원이다. 피트니스디렉터라는 직무가 우리나라에는 없지만, 해외에는 있기도 하다. 물론 아예 같은 일을 하지는 않겠지만.
체육 전공자도 아닌 내가 전혀 다른 직무로 이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재미를 느낀 일을 딥하게 몰두하는 내 성향도 한몫했다. 취미로 하던 운동에 재미를 느껴 MD일을 때려치우고 헬스트레이너로 일하며 자격증을 따고 해부학, 웨이트 트레이닝, 필라테스 등을 공부했던 경험으로 지금의 직무로 즐겁게 일하게 되었다.
이직할 자리 없이 코로나가 끝나지도 않았던 때 무작정 퇴사를 '갈겼다'. 입사 한 지, 2년 9개월쯤이었는데 주변 동기들이나 친구들은 3개월만 더 버티면 만 3년을 채울 수 있으니 조금만 버티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그 3개월이 대관절 무슨 의미인지 납득되지 않았고, 취미였던 운동을 하면서 블로그에 글을 쓰며 8개월을 가난한 자유를 만끽했다. 그러다가 모아놓은 돈과 퇴직금이 바닥날 때쯤, 이전에 했던 이커머스 패션 MD 직무의 면접을 포기하고 새로운 일을 해보고자 헬스 트레이너가 되어버렸다. 트레이너가 되어서는 주 6일 일을 하고, 밤늦게 퇴근하고, 공부하고, 쉬는 날도 교육 듣고 자격증 따고 트레이너로 알차게 살며 하루에 PT 수업을 하다 보면 내 운동을 할 체력은 남아있지 않은 상태로 버텼다. 사실 1년도 안 했지만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고 그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직무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았다고 생각한다.
내 이력서는 이제 특이한 이력이 되었지만 나 같은 사람이 세상에 나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윤종신의 글을 보니 더 공감이 간다.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을 정말 딥하게 잘하다 보면 출근해서 언제 퇴근시간이 되는지 시계만 확인하는 삶을 더 이상 살지 않아도 된다. 더 이상 행복을 팔아 돈을 벌지 않아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