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과 친숙해지는 시간
어렸을 때에는 남에게 무언가를 같이 하자는 질문을 꺼내기 쉬웠다. 혼자 여행을 갔을 때에 옆 침대를 쓰던 사람에게 맥주 한잔 하자고 아무렇지도 않게, 그저 예전부터 계속 해온 일인 것처럼 쉽게 말을 건네었었다.
9년 전 어느 날 밤, 이탈리아 피렌체 역에서 기차표를 끊으려고 매표소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함께 서 있던 세 명의 한국 여자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혼자 지나가던 20대 중반의 남자가 '안녕하세요? 여행 즐겁게 하세요.'라고 말을 건넸다. 한국인이라는 반가움도 있었지만 그다지 부끄러움도 없이 말을 건넬 수 있었다. 혼자 간 여행이라 외로웠었고 말이 통하는 사람이 그리웠었다. 사람이 길게 늘어선 줄 안에서 자기들끼리 즐겁게 이야기하던 그쪽도 별생각 없이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주었다. 즐거웠었다. 서로 별생각 없이 나누는 인사가 좋았었다. 그때에, 스위스 인터라켄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던 선착장에서 저 멀리 다가오는 한국 사람에게 밝은 목소리로 먼저 인사를 하고 다시 받던 순간이 그립다. 쉽게 그 사람에게 마음을 열었던 그때의 나가 그립다.
얼마 전 혼자 여행을 다녀왔다.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였지만 혼자 있던 한국 사람에게 다가가 예전처럼 말을 건네기가 너무 힘들었다. 단순히 혼자 온 사람들끼리 '사진을 서로 찍어줘요.'라는 말을 건네는 것이 너무도 힘들어 이리저리 주변을 서성이다 그 사람이 떠나면 나도 그냥 뒤따라 그 자리를 뜨는 일을 반복했다. 쉽게 내 마음을 열 수 없었다.
내가 먼저 말을 꺼내어 다가가는 두려움도 컸지만, 모르는 사람에 대한 상대방의 두려움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흉흉한 세상이라 낯선 이는 경계의 대상이 된다. 혼자 온 이에게 처음 보는 이가 건네는 말 한마디는 의심의 시작이 될 소지가 있고, 같이 온 일행이 있는 경우에는 대부분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 순간이, 그 마음들이 두려워 일부러 더 조심하며 혼자가 되려고 했었다.
어렸을 때와 다르게 사람들에게 다가간다는 것은, 그리고 마음을 열어 즐겁게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이제는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내 마음과 행동은 순수해도 상대방이 느낄 감정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나이가 되어버렸고 실제로는 그렇지 않더라도 상대방의 감정에 대한 나의 상상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어렸을 때와 달라진 나에게 외로움은 적절한 보상인 것만 같았다.
한국에서의 일상생활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바람이나 의도보다는 남들의 생각과 시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들에게 누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상대방이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 행동에 대해 신경을 썼다. 어렸을 때처럼 마음을 활짝 열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있지도 않은 사회적 평판을 생각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조금 더 나아가서 생각해보면 비난받기 싫고, 그 비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게 더욱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점점 더 외로움과 친숙해지는 연습을 더 많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