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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마 Dec 08. 2023

[세계문학]온전한 '나'로 살아가겠다는 선언

《벤야멘타 하인학교》,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이요마 리뷰 아카이브는 30회까지만 월-금 연재를 하고, 잠시 쉬어갑니다!


제발로 하인학교에 들어간 귀족 아이


《벤야멘타 하인학교》는 귀족 집안의 자제, 야콥 폰 군텐이 '벤야멘타 하인학교'에 입학하면서 시작된다. '벤야멘타 하인학교'는 말 그대로 하인을 양성하는 학교다. 그곳에서 가르치는 건 별로 없다. 그저 순종하고, 순응하고, 복종하며 자의식을 죽이고 주인에게 온전히 충성하는 하인을 만드는 게 목적이다. 야콥은 왜 제발로 이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을까?

자신을 입학시켜달라고 홀로 원장실을 찾아간 야콥은 '주 의회 의원이라는 뛰어난 아버지의 그늘에서 질식할까 두려운 나머지 집에서 도망쳤다'고 말한다. 마음만 먹으면 독일의 상류층 자제로 대우받으며 살 수 있던 환경이었지만 그는 자기 자신의 존재를 위해 '스스로 선택'한 셈이다. 물론 책에는 쓰이지 않은 어떤 사건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작품 내내 야콥이 보이는 태도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납득하게 된다. 야콥은 그저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고 싶을 뿐이구나. 하고 말이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대체로 분주하다. 매 순간 무언가를 쟁취하고 획득하러 가는 것을 근사하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다른 어떤 곳에서보다 이곳에서 매혹적인 호흡을 한다.
(...)
왜냐하면 이곳에서 기뻐하는 자는 노동과 노력을 통해 끊임없이 힘들게, 그리고 정직하게 기쁨을 얻기 때문이다.
(...)
그렇다. 이 모든 것이 나에게는 훌륭하고 위대해 보인다. 소용돌이치고 용솟음치는 이 격동의 한가운데서 사람들은 무언가를 얻는다. 살아 숨 쉬는 이 모든 잡동사니 사이를 예의 바르게, 그리고 거침없이 헤치고 지나가려고 애쓰면서 사람들은 다리와 팔, 가슴속에서 뭔가 유용한 것을 느낀다. 아침이면 모든 것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듯하고, 저녁이면 모든 것이 전에는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격렬히 포옹하는 새로운 몽상의 팔에 안긴다. 매우 시적인걸.
- 《벤야멘타 하인학교》 中


야콥은 대도시의 활기찬 모습을 보며 이렇게 평한다. 약간은 비꼬는 것 같으면서도, 존중의 마음도 담긴 표현들 속에서 나는 '뭔가 유용한 것을 느낀다.'는 표현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대도시의 사람들이 분주한 까닭은 '매 순간 무언가를 쟁취하고 획득하러 가기 때문'일 터인데, 그것이 근사하다고 여기기에 기꺼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것일 게다. 그 기저에 '뭔가 유용한 것을 느낀다.'는 경험이 있다. 아마도 '자기효능감'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이 감정은 사람이 사회 안에서 일을 도모하고, 행동할 수 있는 힘이 되는 건 분명하다.

이때 사람은 전체의 일부가 아닌, '나'로서 존재할 수 있다. 나 아니면 할 수 없는 일, 나니까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기며 노동과 노력을 통한 정직한 방법으로 '자의식'이라는 기쁨을 획득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일'이 그 사람을 정의하는 도구가 될 수 있고, 더 나아가 그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엄밀히 말하자면, 나의 생각하는 능력을 전부 경멸한다. 나는 경험들만을 존중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경험들은 모든 사고와 비교로부터 자유롭다. 그래서 나는 내가 문을 여는 방식이 소중하다고 여긴다. 문을 여는 그 행동 속에는 하나의 질문이 담겨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은밀한 삶이 들어 있다. 하긴, 지금은 모든 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질문하고, 비교하고, 그리고 기억하게끔 만들고 있다. 물론 생각도 해야만 할 것이다. 그것도 아주 많이. 하지만 순응하는 것, 그건 생각하는 일보다 훨씬, 훨씬 더 고상한 일이다. 생각을 하면 저항하게 된다. 그래서 생각하는 것은 항상 꼴사납게 일을 망쳐버린다.
- 《벤야멘타 하인학교》 中


그러나 야콥은 그런 사람들을 존중하는 동시에 한 발 떨어져서 그들의 행태를 자신'도' 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 '자의식에 찬 사람들은 의식에 적대적인 무언가를 끊임없이 맞딱뜨리기 때문'이라고도 말하며, 타인과의 '비교'로부터 자유롭고자 한다. 그가 가장 작게 존재하고, 자의식을 없애버린 미미한 존재가 되고 싶어하는 건 사회 안에서의 '나'가 결코 온전히 '나로부터 나온 나'가 아니라는 걸 간파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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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라, 동생아.


야콥에게는 도시에 나와서 사는 예술가 형 '요한'이 있다. 괜찮은 집안의 자제답게 격식있고, 기품있게 자란 요한은 우연히 거리에서 만난 동생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라, 동생아." 요한 형은 말했다.
"밑바닥부터 시작해, 그게 훌륭한 거야. 만약에 도움이 필요하다면……"
나는 괜찮다는 뜻으로 손을 가볍게 내저었다. 그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한번 봐, 저 위를, 그곳은 살 만한 곳이 아니야.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지. 내 말뜻을 잘 새겨들으렴, 사랑스런 동생아."
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처음부터 훤히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가 계속 이야기하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 위, 그곳을 지배하는 공기라는 게 말이다, 그러니까, 충분하게 무엇인가를 해냈다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인데, 그게 사람들을 압박하고 구속한단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네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으면 좋겠다. 네가 내 말을 온전히 다 이해한다는 건 말이지, 동생아, 그건 네가 무서운 인간이라는 뜻이기 때문이지."
- 《벤야멘타 하인학교》 中


이 형제는 도대체 집에서 무슨 일을 겪은 걸까. 또 사회에서 무슨 경험을 했기 이토록 부정적일까. 야콥은 형이 말하기 전에 이미 '충분하게 무엇인가를 해냈다'는 것이 사람을 압박하고 구속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는 본인으로부터의 동기가 아닌, 주변이 또 사회가 한 개인에게 부여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의미한다. 나 스스로는 나의 자유의지로 선택하고, 행동하고, 이뤄낸 것 같지만 이 모든 것이 시스템에 부역하고 있는 개인이 그저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라는 걸 둘은 이미 알고 있던 것이다.


채널예스: [특별 기고] 배수아, 로베르트 발저의 『산책자』를 번역하며 본문 中, 발저의 사망 사진


이처럼 부정적인 사회관(?)은 작가인 로베르트 발저의 인생사를 보면 어느 정도 납득은 된다. 죽은 후에야 '스위스의 국민작가', '헤르만 헤세, 카프카, 제발트가 극찬한 작가들의 작가' 타이틀을 얻게 되었지만 생전의 그는 철저한 아웃사이더였기 때문이다. 가난한 집안 출신인 그는 우리나라로 치면 중졸 정도의 학력을 갖고, 온갖 직업(하인, 사서, 비서, 은행직원)을 전전하며 살았고 어느 한 곳에도 뿌리내리지 못했다. 유명 출판사에서 몇 권의 작품을 출간하긴 했지만 당대에 인기가 있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가 '존재'할 수 있던 순간은 오로지 글쓰기와 걷기를 하는 시간뿐이었다.


종이를 살 수 없었기에 이면지든 광고지든 가리지 않고 글쓰기에만 천착했던 그는, 스스로 정신병원에 들어가 20여년간 종이봉투를 붙이는 일과 걷기만을 하다가 1956년 크리스마스, 산책을 하다가 눈길에 쓰러져 사망한다. 사회라는 시스템 안에 그가 설 자리는 없었다. 그렇기에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남들 사이에서 가늠하고, 비교하며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가는 보편적인 시나리오보다는, 걷고 또 걷는동안 자기 자신에게 온전히 몰입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대해 누구보다도 많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을 것이다.


"너는 지금, 말하자면 영(零, 0)인 거야, 소중한 동생아. 젊었을 땐 누구나 영이 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일찍, 너무 일찍 어떤 중요한 존재가 되는 것처럼 위험한 것은 없기 때문이지. 확실한 것은 너란 존재가 너 자신에게는 무언가를 의미한다는 거다. 브라보. 훌륭해. 하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너는 아직 아무런 존재도 아니야. 그것도 마찬가지로 훌륭해."
(...)
"무엇보다도 우선 네가 알아야 할 것은, 결코 네가 무언가를 위반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위반이라는 거, 아우야. 그런건 존재하지 않는단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정말로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는 전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단다. 그래도 노력은 해야 한다. 열정적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것에 너무 연연하지도 마라. 명심해. 추구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모든 것이 썩었어. 이해하겠니?"
- 《벤야멘타 하인학교》 中


요한은 야콥에게 '영(0)'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세상은 추구할 만한 가치가 없기에, 적당히 열정적으로 노력하며 살 되, '너란 존재가 너 자신에게는 무언가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살아가기를 권한다. 세계 속의 '나'가 아닌, '나'로부터 시작된 '나'로 살아가길 권하는 것이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요한은 그 방식으로 살아가지는 못한다. 그도 가족의 기대, 세상의 시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스스로 작은 존재가 되기 위해 하인학교를 선택한 동생에게는 진심을 담아 응원하고, 부러워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바랐던 나의 이상적인 모습은 진짜일까?'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거나 절실하게 살아보지는 않았기에 사실 나는 나에게 이런 질문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살아지는 대로 분주하고 열심히 노동하고 노력하며 그게 '잘 산다고'만 생각했지 인생의 목표나 이상 같은 건 없었으니 말이다. 뒤늦게 사춘기가 와서 회사를 관두고 놀면서 '그래서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라고 되물어도 답이 나오지 않더라. 외려 이런 생각할 때가 아니고, 정신차리고 다시 돈 벌 생각이나 해야지 하고 회피하는 게 마음에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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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티코 스님의 의심과 믿음


이 부분을 조금 더 보강하기 위해서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라는 책을 서브 텍스트로 가져왔다. 저자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는 스웨덴 출신의 스님이다. 그는 별 생각없이 안정적이어 보여서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열심히 일해서 26살에는 다니던 회사 에스파냐 지부에서 최연소 재정관리자로 임명받는다. 남들이 보기엔 초고속 승진에 탄탄대로 같은 인생이었지만, 그는 어느 날 쇼파에 누워있다가 문득, '이렇게 살아선 안 되겠다' 마음먹고 태국으로 가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된다.

성공이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내면의 소리를 듣고, 그저 '앞으로 나아갈 때가 되었어.' 생각하며 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17년간 태국, 영국, 스위스 등 소승불교의 승려로서 수행을 하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도 인간이었기에 17년을 마음을 내려놓고 평온을 찾는 법에 집중했지만 막상 돌아온 사회에서 자신이 쓰임이 없다는 점에 괴로워 한다. 

저는 늘 제가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인지 의심했습니다. 세상에 이바지할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지요. 노동시장에서 저를 원하는 곳은 더는 없다고 확신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저 또한 뿌듯해할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말입니다.
(...)
암울하던 시절엔 감히 꿈꾸지 못했던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사람들이 제게서 뭔가를 얻어간다고 느낄 때마다 제 안의 어둠이 조금씩 걷히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 그간의 경력을 돌이켜 보면, 전율이 일게 하는 롤러코스터에서 막 내려온 후처럼 신나고 짜릿합니다. 그야 말로 끝내주는 기분입니다!
(...)
제게 믿음은 아주 좋은 친구입니다. 제 인생에서 나아갈 길을 찾고자 애쓸 때, 믿음과 순간의 지성은 제가 따르는 쌍둥이 나침반이지요. 제가 저 자신을 믿고 또 삶을 믿으며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中


사회가 평가하는 그의 승려 경력은 내다버린 17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시간에 재정관리자로 일했다면 그는 세계 최고의 기업가로 성공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하지만, 그건 그저 사회의 평가에 지나지 않는다. 나티코 스님은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시간을 보내다가 우연히 찾아온 기회들, 이를테면 절이나 회사 같은 곳에서 명상에 대한 지도를 요청받았을 때 기꺼이 나가며 자신의 의미를 다시금 발견하게 된다. 바로 누군가에게 자신의 것을 나누어주는 일, 경쟁이 아닌 협력으로 세상에 이바지하는 무언가를 하는 일이 그것이었다.

그는 내게도 '열린 문'이 있어 용기를 내어 문 하나를 통과하면 다음 문이 열리는 경험을 하면서 주어진 일에 만족감과 행복을 느꼈다고 말한다. 이것이 타인의 평가가 아닌 '나로부터의 믿음, 성취감'이라는 점에서 《벤야멘타 하인학교》의 야콥이 지향하는 '작은 존재로서의 나',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는 나'에 가까운 삶이 아닐까 싶다.

나 자신에게 몰입하는 시간, 어떤 잣대도 비교도 없는 오직 '나다움'에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지만 여전히 '나와의 대화'를 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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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가 되지 않으련다


'벤야멘타 하인학교'는 모종의 이유로 폐원을 하게 되었다. 원장은 원생들에게 적당한 일자리를 쥐어 내보냈고, 오직 야콥만을 남겨둔다. 학원 제일의 모범생, 크라우스는 하인으로 갖출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진 원생이었다. 그의 일처리에는 흔적이 남지 않았고, 그를 쓰는 주인들도 누군가 이 일을 준비했구나 하는 감각도 느낄 수 없이 완벽하게 일을 해 그에게 고마워하지도 않을 정도였다. 자신을 버리고 고용주에게 100퍼센트 몰입하는 그가 학원을 떠나며 야콥에게 이렇게 말한다.

"잘 있어, 야콥, 너를 개선해봐, 변화시키라고."

그리고는 한참이나 그가 교정해야할 것들을 잔소리처럼 늘어놓고 간다. 나는 이 장면이 이 책의 정수라고 생각한다. 사회에 자신의 흔적도 없이 100퍼센트 녹아든 '하인' 크라우스가 야콥에게 하는 말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세상의 기준에 자신을 온전히 맞추고, 개선하고, 변화해야만 우리는 비로소 '쓸만한 인간'이 된다. 자기계발의 신화는 신해철의 〈민물장어의 꿈〉의 가사처럼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 뿐'이지 '나'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야콥이 바라는 건 그저 작고 둥근 '영(0)'이 되는 것이다. 무언가 되려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지도 않는, 다시 말해 '세상이 인정하는 성공'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자신을 이끌어가려 한다. 그는 그 자체로 '야콥 폰 군텐'으로 존재하고 싶을 뿐이다.

나는 나 자신을 발전시키지 않는다. 그냥 이렇게 주장해본다. 난 결코 가지와 줄기를 뻗지 않을 것이다. 어느 날엔가 내 본성과 행위에서는 그 어떤 향기가 날 것이고, 난 꽃이 되어 약간, 자족하기라도 하듯 향내를 풍길 것이다. 그러고는 크라우스가 멍청하고 교만한 반항아라고 부르던 그 머리를 숙일 것이다. 내 팔과 다리는 이상하게 힘이 빠져 늘어질 것이고, 내 정신과 자부심과 성격이, 모든 것이, 그 모든 것이 약해지고 시들어버릴 것이다. 그러고는 죽게 될 것이다. 실제로 죽는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 어떤 형태로든 죽게될 것이다. 그리고 그후로, 아마도 60년을 그저 그렇게 별다른 굴곡 없이 살다 죽게 될 것이다. 늙어갈 것이다. 그럼에도 난 자신에 대해 아무 걱정도 하지 않는다. 나 자신에게 어떤 불안의 말도 하지 않는다. 나는 말하자면 나의 자아라는 것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다. 그저 그걸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 《벤야멘타 하인학교》 中


야콥은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에서》 같은 교양소설의 인물처럼 '성장'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장에 대해 의심을 하고, 거부하며 '지금의 나'로 머물러있기를 바란다. 그에게 성장이라는 말은 어쩌면 '세상에 편입되는 과정'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생물학적 죽음이 아닌, '나'로서의 죽음이 먼저 찾아올 거라는 걸 야콥도 안다. 하지만 '온전한 나'가 존재하는 시간만큼은 '나'로서 살아가겠다는 선언을 한다. 조금 더 '나 자신'에 집중하는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의지이다.

그렇게 누구에게도 영향을 받거나 주지 않는 독립적인 '나'라는 존재를 지향한다. 그 모습은 작고 둥근 '영(0)'의 형태일테다. 가장 미미하지만 이 세상 누구보다도 큰, 자신을 가진 야콥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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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읽은 콘텐츠 《벤야멘타 하인학교》,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벤야멘타 하인학교》는 걷기를 사랑했던 아웃사이더, 로베르트 발저의 장편소설입니다. 스스로 하인학교에 입학을 자처한 귀족 출신의 야콥 폰 군텐이 일기 형식으로 자신의 내면을 진솔하게 풀어낸 이야기입니다. 사건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보다는 야콥의 감정과 생각으로 가득한 작품이기에 짧은 분량이지만 읽기는 난해했던 소설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문장 하나 하나에 밴 발저의 통찰이 대단하기에 여운이 긴 책이었습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는 스웨덴의 유명한 '숲속의 현자'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의 에세이입니다. 회사에서 고속승진을 하던 스물여섯의 비욘은 '최연소 재정관리자'까지 올랐지만 어느날 불현듯 들려온 마음의 소리를 따라 태국으로가 불교에 귀의하며 스님이 됩니다. '나티코'라는 승명을 받고, 17여년간 태국, 영국, 스위스 등을 다니며 승려로 살았고 돌아와서는 '명상'을 가르치고, 사람들에게 평온을 전파하는 현자로 활동했습니다. 읽는 내내 내 마음의 소리에 집중하게 되는, 나를 돌아보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이요마 리뷰 아카이브는 30회까지만 월-금 연재를 하고, 잠시 쉬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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