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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황하는 콧날 Oct 16. 2018

백병원

출처 백병원 홈페이지





오지도 않는 퍼석한 침대에서


오지도 않는 잠을 몇 시간 취했다


하루 만에 폭삭 늙어버린 퀭한 눈으로 말 그대로 부시시한 아침을 맞았다.


모든 게 부스스 했다. 그 부스스한 아침을 깨우는 것은


그 공기를 찢는 듯한 간호사의 목소리였다.




내 이름을 불렀고, 넝마주이 같은 수술복을 주었다. 기억의 단편으로는 셔츠 등판이 다 끈이었다.




어쨌든 나는 정신줄의 끈을 놓지 않았고




나는 바퀴 달린 침대로 이송되었다. 병원은 수동태가 천지인 곳이었다. 아직 수술 전에 두 다리가 멀쩡하지만


수동적으로 바퀴가 달린 침대로 옮겨졌다. 왜 안 아프던 사람도 병원에만 오면 아픈지 참 잘 깨달았다


정말 이질적인 것은 나보다 체구가 반절밖에 안 되는 작은 간호사가 육중한 나를 옮겼다.


왠지 마치 저치 그치 까끌까끌한 만화책의 한 페이지가 심하게 구겨져, 잘 핀다고 폈지만 그래도 구겨져


자글자글하게, 인상 쓰며 읽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나를 수간호사에게 데려갔다. 수간호사는 대 수녀처럼 나의 신상에 대해 물었고 왠지 조금 있으면


그 "하나님"을 만날 것 같았다.


그렇게 수술실로 이송되는 중간에 전봇대처럼 몇 블록마다 있는 전등을 보았다.


주마등 같지는 않았고 그것 같기는 했다. 왜 있잖아 메디컬 드라마에 나오는 그래프를 파도처럼 치켜올리며


심장이 멈추는지, 안 멈추는지 알려주는 기계


근데 참 다행이었던 것은 소변 줄을 채우지 않는 거였다. 왠지 전신마취 수술 받는 것보다 그게 더 겁났다.


그렇게 수술대에 누워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오색팔괘 처럼 생긴 강한 조명을 보았다.


수술 실안에는 여러 사람들이 마치 인력시장에 나가기 전에 불을 쬐고 있는 인부들처럼 서성이고 있었다.


나는 개 쫄았지만 그들은 긴장하진 않아 보였다.


나는 치료의 대상, 그들에게는 고쳐야 하는 고장 난 라디오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아 그들을, 병원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긴장해 보이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 안도를 느꼈다.


조금 지나자 마치 뱀파이어를 싸그리 태워 죽일 것 같은 마블의 블레이드!! 나의 교수님, 집도의가 등장했다.


와 진짜 종교에 적을 두진 않지만 예수 같았다. 인질을 구출하러 온 특공대 대장 같았다.


그 방 안의 공기는 그의 흐름으로 바뀌는 것 같았고 사람들도 그의 공기, 분위기로 재편되었다.


수술이 잘되어서 그렇게 느끼는 것 일 수도 있지만, 장군은 달랐던 것 같다. 그가 살아온 세월, 수많은 수술의

향내가 그의 등장만으로 느껴졌다.


생사를 건 수술은 아니었지만 내가 몇 시간 후 깨어날지 말지는 그의 어깨에 달렸었다.


어제부터 이질적인 비늘 같은 바늘이 내 팔뚝을 뚫고 있었다.


잘 모르지만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 숨 들이쉬세요 하나, 둘 , 셋 기절"은 다 거짓말이다.


이질적인 바늘 속으로 끄물 끄물 진득한 용액들이 혈관을 타고 흐르는 느낌이 나자마자 기억이 없다.


1만에 모든 것이 날아갔다.


.


.


.


.


.


.


회복실에서 본 사람은 부모님이었다.


콧속을 타고 핏물이 목으로 넘어오고 마취에 정신없던 와중이라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의 얼굴이 참 아련했던 것 같다. 전신마취 수술을 결정하기까지 나 보다 더 노심초사했던 어머니


수술실 밖에서 얼마나 노심초사했을까... 밖에서 수만 가지 생각을 하셨을 것이고 퀭한 눈으로 "수술 중"이라


는 글자를 하염없이 바라보셨을 것이다.


어머니는 엄마는 나이가 드실수록 나에게 부쩍 나에게 지는 일이 많아졌다. 어릴 적에는 참 무섭고 카리스마


있었는데 나이가 먹을수록 수그러드셨고 그리고 수척해지셨다.


회복실에 보았던 수척해진 엄마의 얼굴이 지금 오히려 또렷이 떠오른다.


수술이 끝난 엄마는 그날 내 곁을 지키셨다. 그 좁은 병실 침대에서 같이 오지도 않는 잠을 청했다.


엄마는 20살이 한참 넘은 덩치만 큰 어른 아이 옆에서 그렇게 새우 잠을 잤다.


어떻게 보면 어른인 나에게 쪽팔릴 수 도


있는 기억이지만 그날만큼은 쪽팔리지 않는다. 왠지.


다음날 아침 엄마는 그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일상으로 돌아가셨다.


엄마에게 나도 계산하지 않는 사랑으로 갚고 싶지만, 나의 사랑은 부채의 "이자"이지 않을까


그녀에 비해 나의 사랑은 초라한 넝마 같다. 아무래도 이번 생은 틀렸다.


대신 사고는 어쩔 수 없지만 대신 최대한 아프지 말아야지 운동 열심히 할게요 엄마!


지금은 이렇게 글을 쓰고 생각하지만 엄마에 비해/// 한없이 이기적인 사랑을 하고 못돼 쳐 먹은 저는


다 까먹고 내일 엄마의 잔소리에 또 신경질을 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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