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엄마기도 하고, 아이를 직접 돌보는 시간도 적었고, 유아 기관의 성격을 잘 모르기도 했던 나는 수업도 제대로 듣지 않고, 규칙도 잘 지키지 않아 한마디로 단체 생활의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 같은 이 녀석이 그저 장난기가 좀 많은 정도의 아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어느 정도 학습에 대한 성숙한(?) 태도를 가진 아이들이어야 적응할 수 있는 영어유치원을 계속 마음속으로 6세 때 보낼 기관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담임선생님에게 물어보자 지금 아이의 상태로는 힘들 것 같다고 하셨다. 그래 아이가 좀 더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는 기관을 보내자 해서, 일반 유치원처럼 누리과정을 해주지만 영어 비중이 하루 70분 정도로 비교적 높은 ‘영어특성화’ 유치원을 보내게 되었다. 나름대로는 한 단계 눈을 낮춰서(?) 보낸 거라 생각해서 6세는 무난하게 보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었는데…
우선 입학 후 2주 정도는 담임선생님께서 하람이가 대답도 씩씩하게 잘하고, 밝은 태도로 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그래, 것 봐. 우리 하람이 분명히 좋아질 거라 했잖아.”하는 생각은 아주 잠깐 하던 찰나… 몇 가지 사건들이 계속 연이어 터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시작된 것은 같은 반에 첫째가 친하고 싶은 남자아이가 있었나 보더라. 그런데, 그 친구가 다른 단짝이 있어 하람이와 잘 놀아주지 않자 질투심에 그 아이를 계속해서 때렸던 것이다. 처음에는 그 아이 엄마도 나이스하게 먼저 놀이터에서 플레이 데이트를 하며 우리 아이의 마음을 달래주는 것이 어떠냐고 먼저 제안해 왔다. 그래서 놀이터에서 한번 만나서 놀기도 했다. 두 아이는 둘만 놀이터에서 놀 때는 다툼 없이 사이좋게 잘 놀았다. 하지만, 그때뿐이었고, 유치원에서는 그 아이를 지속적으로 때리는 일이 발생했다. 그 아이만 때린 것이 또 아니었다. 4, 5월에 우리 아이에게 맞았다는 아이가 5~6명은 되었다. 학부모 항의와 선생님 전화가 거의 매일 왔고, 나는 사과하기에 바빴다. 그 무렵 둘째 출산한 지 얼마 안 된 시기였기에 더더욱 몸과 마음이 힘들었다.
학부모들끼리 모이면 우리 아이는 늘 입방아에 오르내렸고, 그 엄마인 나도 같은 질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로는 “아직 아이라 잘 모르고, 조절이 잘 안돼서 그런 건데…”하며 너무 차가운 학부모들의 시선이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어떤 여자 아이는 목 근처에 손톱자국이 나오고, 어떤 아이는 계단에서 우리 아이가 밀어서 눈가가 찢어져 피가 나기도 했다고 하니… 결과만 두고 본다면 아이라서 봐주기엔 좀 심하긴 했다. 그렇게 우리 아이는 새로운 유치원에서의 첫 2~3달을 문자 그대로 짐승처럼 이성을 잃은 채 마구 휘젓고 다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도 유치원에서 안 잘린 게 정말 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때는 감히 내 아이를 유치원에서 자른다는 걸 상상도 못 했지만 말이다.
그런 와중에 퇴근길에 한 건물 전광판에서 한 정신과 병원 광고에서 ‘ADHD’라는 문구를 보게 되었다. 어디선가 어렴풋이 들어봤던 단어지만 사실 정확히는 몰랐던 병명… 뭔가 산만함과 관련이 있다는 정도만 알았고, 그런 혼란의 도가니 속에서도 내 아이와 연관이 있다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었다. 아이를 지도했던 선생님들도 한 번도 얘기해 준 적도 없었고. 그런데 그날은 왠지 “혹시…”라는 생각이 짧은 섬광처럼 스쳐갔다.
그리고 우리 아이 때문에 같은 반 학부모들이 대책 회의까지 했고, 그 결과를 담임선생님으로부터 통보를 받았다. 첫째, 아이를 좀 일찍 하원시킬 것. 둘째, 병원 진단을 받고, 아동 센터 같은 곳에서 치료를 받을 것.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우리 아이가 병원을 가고, 치료를 받을 정도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그런 통보에 반발심이 일었지만, 한편으로는 아이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는 친구들이 있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그들의 요구에 따랐다. 그 당시의 나는 영혼이 가출하고, 몸과 마음이 모두 너덜너덜해져 있었으며, 자존감은 지하 100층까지 추락한 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