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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꼬기 May 23. 2020

200523 정리한다

이번주에 퇴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화요일이었던 것 같다. 

회사 사람들과 손님 모시고 밥을 먹고, 회의에 들어갔다가 잠시 드릴 말씀이 있다고 했다. 대부분 '드릴 말씀이 있다'라고 면담을 요청하면 퇴사 이야기라고 한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대표님과 마찰이나 오해는 없었고(아마도?) 면담을 마쳤다. 


근래 이런저런 일이 많았다. 아니 2020년 들어오면서 여기서 사는 것에 대한 의지를 꺾는 일이 부단히 생겼다. 마치 내가 살려고 부단히 노력하면, 다른 한쪽에서 그 의지를 꺾어보겠다고 부단히 찾아오는 것처럼. 불행인지 인생의 배움인지 모를 것이 자꾸 찾아왔다. 친구는 내게 "네가 일어서려고만 하면 이렇게 일이 생겨서 낙담할까봐 걱정돼"라고 했지만, 그랬다. 매우 그랬다. 2020년은 잘 해보고 싶은 해였다. 비록 올해의 시작을 각별했던 이와 헤어짐으로 시작하긴 했지만, 그또한 내게는 또다른 시작이었다. 그와의 좋았던 기억들, 그간 친구들과 선배들이 보내줬던 응원과 애정을 자양분 삼아 일어나고 싶었다. 이제 어린 나이도 아니고, 연차도 제법 쌓이고 했으니 언제까지나 힘들다고 울 순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해였다. 


사건 1) 

쓰는 것보다 말하는 것을 더 좋아해서 뭘 담아두지도 감추지도 못한다. 그런데 이놈의 입방정이 결국 일을 냈다. 가끔은 진지하게, 가끔은 농담조로 말했던 퇴사 고민을 대표님께 이웃이 전한 것. 어른들이라고 다 어른은 아니고, 각자가 나를 걱정해주고 위해주는 방식은 또 다르니 이해해보려 했지만 여전히 이해가 안간다. 이렇게까지 커질 일도 아니었는데 이렇게까지 큰 일을 만들어놓고 대표님하고는 잘 지내면서, 정작 내 이야기를 함부로 하고 다닌 것에 대한 사과는 없다. 사과를 했다면 아마 다시 잘 지냈을 것 같다. 말한 내 잘못도 있으니. 그러나 사과 없이 이래저래 피해서 다니는 그 모양새가 매우 우습다. 


사건 2) 

각별하게 생각했던 사람. 그 사람의 갑작스런 말들과 행동에 여전히 멍한 상태다. 애틋하기도 하고 후회하기도 한다는 말. 너무 행복한 순간에도 행복할 수 없다는 말, 울먹거리며 정말이지 숨고 싶다는 말 등등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일단 불 끄듯, 정신을 차리고 그부터 안정시켰다.(안정이 됐을런지는 모르겠지만) 이유는 나도 나쁜 사람이 되기 싫어서, 그리고 그냥 마지막은 좋았으면 해서, 또 하나는 어쨌든 나보다 더 고통스럽다니까 덜 고통스럽길 바라는 마음으로 등등의 복잡한 감정이 섞여서. 그러고나서 하나하나 정리했다. 그가 준 물건들을 안보이는 곳에 담아두었고, 머리맡에 두었던 좋았던 편지도 서랍에 다 넣었다. 멀리 있어도 언제든 곁에 있다는 거 잊지 말라는 그의 마음이 유효할까 생각하다가 그때는 진심이었어도 지금은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을 일들 같아서 어쩐지 다 정리해줘야할 것만 같았다. 올해 1월까지는 거의 하루도 빼먹지 않고 이야기를 나눴던 톡방도 나왔다. 지나고나면 이렇게 불편한 것들 투성이다. '후회'라는 단어를 써서 내게 말했다. 그리고 그 후회라는 말이 시시때때로 내 귀에 들린다. 아마 이 관계가 매우 특별하고 소중한 것이라는, 그래도 남들과 다르다는 기대를 내가 내 생각보다 훨씬 많이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건 없고, 그냥 다 비스무리하다는 걸 이렇게 깨닫는다. 결말이 내가 주변에서 들었던 결말과 대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정말 별 거 없다. 이렇게. 


사건 3) 

범죄를 저지른 새끼는 7월에 떠난다. 잘 꺼졌으면 좋겠다. 어디선가 또 잘난 척하며 살 것 같지만. 인간은 별로 변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루하루 쓰다보면 어느새 4개월도 금방 가있겠지. 그래도 타지살이하면서 좋은 건 스스로 비참하게 느껴지더라도 그 비참한 시간을 예전보다 길게 갖고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댈 사람도 만날 사람도 없거니와 오래 가져간다고 내 인생 바뀌지 않고 그냥 기분만 나쁠 뿐이라는 걸 너무 늦게 알았지. 극단적인 생각이 들다가도 그냥 술 몇 잔 혼자 먹고 티비 보며 깔깔대거나 선배들 친구들하고 통화하면서 '그래도 내가 이 사람들때문에 웃지, 살지' 하며 잠든다. 


아빠가 내 피부양자로 등록됐다. 처음엔 이게 뭔일인가 싶어 떨렸는데, 엄마에게 전화해보니 별 거 아니고 그냥 퇴직했나보네 라고 말했다. 아빠는 이렇게 나를 깜짝깜짝 놀래킨다. 재혼도 서프라이즈~ 퇴직도 서프라이즈~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잘은 모르지만, 그래도 떵떵 거리며 벌어둔 돈(있겠지?) 아껴쓰며 잘 살았음 좋겠다. 가족끼리는 서로 잘 살아주는 게 미덕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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