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나의 언어의 한계가 세계의 한계이다"
이 명언은 사람에게 있어,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모국어만 할 줄 아는 사람과 2개 국어, 3개 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만나고 접하는 세계가 다를 것입니다. 이런 말은 하는 저는 정작 한국어 밖에 못하지만요.
사람에게 언어가 중요하다는 것은,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읽는 트렌드에게도 언어가 중요하다는 점을 의미합니다. 제가 종종 말씀드리지만, 우리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변화가 트렌드의 변화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주의 깊게 봐야 할 단어 유형이 있습니다. 바로 패턴어입니다. 패턴어는 특정 패턴이 반복되어 쓰이는 단어를 의미합니다. 반려동물, 반려식물, 반려로봇 등 반려 패턴이 대표적이죠.
패턴어의 시작과 분화는 사회의 변화와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우리가 정말로 흔하게 쓰고 검색하는 '맛집' 키워드를 통해서 사회변화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제가 항상 활용하는 썸트렌드를 통해 살펴보았습니다. 빅데이터적으로 '맛집'의 사용은 크게 3단계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가장 대중적으로 쓰이는 맛집의 활용은 '장소 + 맛집'으로 쓰이는 것입니다. 홍대 맛집, 부산 맛집, 제주도 맛집 등 특정 지역에서 어떤 음식점이 좋은지 말해주었죠.
그러다가 2019년도부터 변화가 나타납니다. 내가 간 장소의 맛집이 무엇이냐도 중요하지만, 내가 원하는 음식이 있냐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디저트 맛집, 파스타 맛집 같이 '음식 + 맛집' 활용이 본격적으로 나타납니다.
여기서 나아가 재미있는 점은 시간이 갈수록 맛집의 쓰임이 다양해진다는 것입니다. 맛집은 모두가 아시다시피 '음식을 잘하는 집'을 의미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변화는 '음식'에 초점을 맞춘 것이죠.
그런데 잘하는에 초점을 맞춰 음식 외 활용이 등장합니다. 대표적인 예시가 네일 맛집, 원피스 맛집입니다. 손톱을 꾸미는 네일과 옷의 한 종류인 원피스는 맛집과 상관이 없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맛집이 맛있는 집이 아닌 잘하는 집으로 쓰이면서 네일 맛집, 원피스 맛집이라는 용어가 가능하게 된 것이죠.
데이터적으로 맛집의 쓰임이 확 달라지게 된 시점은 2020년도부터입니다. 아무래도 코로나로 인해 다른 지역으로의 이동이 어려워지자 가장 기본적인 쓰임인 '장소+맛집' 활용이 감소한 것이죠.
2020년도부터 근거리에 있는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키워드들이 대중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합니다. 사진맛집, 분위기맛집, 뷰맛집, 햇살맛집, 노을맛집, 조명맛집, 야경맛집이 대표적이죠.
모든 키워드가 '빛'과 관련된 것을 볼 때, 인스타그램 등 SNS의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해당 키워드는 맛집의 속성인 '잘한다'가 좀 더 일반화되어 '좋다'의 쓰임으로 확대된 것을 보여줍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키워드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배달맛집, 운동맛집, 카페맛집 등도 코로나 기간에 핫했다가 코로나 이후 순위가 감소했습니다. 그 대신 지금은 '가성비맛집'이라는 키워드가 뜨고 있습니다.
추가적으로 재밌는 점은 시기를 막론하고 진짜 정보에 대한 니즈가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현지인맛집' '찐맛집' '숨은맛집' '제주도민맛집' '제주현지인맛집' 등 어떻게든 광고성 글이 아니라는 점을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키워드가 보이죠.
지금까지 맛집 활용의 변화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정리하면 '장소 + 맛집'으로 쓰이는 모습에서 음식에 주목하여 '음식 +맛집'으로 변화했습니다. 그러다가 '잘한다' 나아가 '좋다'의 의미와 결합하여 '음식 외 + 맛집'의 활용으로 발전했죠.
그런데 '맛집'을 통해 추가적으로 사회 변화를 읽을 수 있는 방법이 또 있습니다. 바로 '음식 + 맛집'의 활용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음식은 사는데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그렇기에 '음식+맛집'으로 쓰이는 단어들의 변화를 보면, 지금 우리 사회가 어떤 음식에 주목하는지 볼 수 있습니다.
우선 데이터적으로 보았을 때 3가지 변화가 보입니다.
커피맛집, 디저트맛집이 우상향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반면 매년 핫했던 마카롱맛집이 2021년을 시작으로 하락하기 시작합니다. 케이크, 브런치, 스콘, 크로플, 쿠키도 2021년을 정점으로 떨어지죠.
이런 변화는 디저트에 속하는 음식들이 제각각 주목받다가, 디저트로 통합되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제 사람들은 특정 디저트를 꼭 찍어서 먹기보다는, 취향에 따라 혹은 그때그때 유행하는 다양한 디저트들을 즐기는 것이죠.
커피맛집 키워드는 증가는 2023년 기준 전 세계 평균 커피 소비량 대비 2배 이상이라는 우리나라 커피 소비량을 볼 때 당연한 결과일 것입니다. 커피는 중독성이 있는 기호식품이어서 한 번 시작하면 반복적으로 먹게 되는데, 커피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양뿐만 아니라 '맛'이라는 질적인 측면이 주목받는 것이죠.
고기맛집, 돈까스맛집 키워드도 우상향 하고 있습니다. 돈까스는 고기음식의 한 종류로, 어떻게 보면 가장 합리적인 가격으로 고기를 즐길 수 있는 방법입니다. 결국 종합적으로 보면 '고기'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것입니다.
이는 쌀 중심의 우리나라 식습관이 완전히 '고기' 중심으로 넘어갔다는 것을 뜻합니다. 실제로 관련 기사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우리나라 사람들의 고기 소비량이 사상 처음으로 쌀 소비량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이런 식습관 변화는 무엇보다 식품업계에서 중요한 이슈일 것입니다. 고기 소비가 증가하면 필연적으로 따라오게 되는 '건강 문제' 그리고 1인 가구의 증가로 인해 늘어나는 '편리성 니즈' 등 다양한 측면을 고려하여 제품들을 설계해야 하기 때문이죠.
파스타 맛집도 꾸준히 성장 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시장 상황을 보면, 의외의 결과라고 볼 수 있는데요. 관련 기사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죠.
"식품업계가 최근 때아닌 파스타 경쟁에 나서고 있다. 밀키트의 대중화에 따른 기술 발달로 레스토랑에서 파는 맛을 구현하기가 쉬워진데 다 경기 불황에 파스타 값이 너무 비싸다는 인식도 반영됐다. 지난 2019년 1227억 원 대였던 가정용 파스타 관련 시장 규모는 지난해 1518억 원 대까지 성장하며 몸집을 부풀리고 있다." (출처 : 이투데이)
밖에서 먹기에는 파스타 가격이 비싸서 가정용 파스타 시장이 성장한다는 내용이지만 사실 여기에 힌트가 있습니다. 바로 '비싸다'라는 대목입니다.
파스타는 원래 비싼 음식이었습니다. 많은 양을 먹기보다는, 연인끼리 가서 적당한 양을 먹는 느낌이었죠. 애당초 가성비가 좋은 음식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변화가 생깁니다. 고물가로 인해서 전반적으로 외식 가격이 올라간 것입니다. 순대국밥이 만원, 평양냉면이 2만원인 시대가 되자 비싸게 느껴졌던 파스타가 오히려 싸게 느껴지게 된 것이죠. 맛과 분위기뿐만 아니라 '가격'도 합리적인 외식 음식이 된 것입니다.
실제로 썸트렌드를 통해 파스타 관련 감성 분석을 해보면 2021년에 비싼 키워드는 11위였는데, 2022년에는 21위, 2023년에는 31위로 하락하였습니다. 파스타 맛집 키워드의 성장추세와 정확히 반대로 움직이고 있었죠.
맛집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이렇듯 우리나라 사람들이 현재 무슨 단어를 쓰는지 살펴보면, 세상을 읽을 수 있는 매우 흥미로운 인사이트들을 다수 얻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인사이트를 담은 글을 들고 와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