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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예지 Apr 05. 2023

아이 둘 엄마, 문창과 3학년입니다

서울디지털대학 문예창작학과 편입 이야기

글쓰기를 즐기다 보니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따랐다. 술술 읽히지만 감동이 있는 글, 머리와 가슴에 오래 남는 좋은 문장을 쓰고 싶어졌다.

초등학교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지만 제대로 배운 적은 없었다. 오랜 고민 끝에 작년 봄, 둘째를 낳고 얻은 육아휴직기간 동안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배우기로 결심했다.



사이버대학 문예창작학과 vs 온라인 글쓰기 클래스


'사이버대학 문예창작학과'와 나란히 두고 고민한 선택지는 '글쓰기 클래스'.

글쓰기 클래스는 개인이 1:1 혹은 그룹방식으로 글쓰기를 코칭하는 프로그램이다. 주로 네이버 블로그나 카페 등 SNS를 통해 모집해 4주~12주의 기간으로 운영된다. 오프라인 클래스도 더러 있지만 최근에는 온라인으로 운영되는 클래스가 훨씬 많다.

직접 퇴고해 주는 방식으로 문장을 지도하거나, 책을 만들어 투고하는 과정을 지도하는 등 클래스마다 지향하는 콘셉트와 운영방식이 다르다. 비용은 코칭의 종류와 기간에 따라 5만 원에서 200만 원까지 다양하다.


글쓰기 클래스가 글쓰기 교육계의 사교육이라면 사이버대학 문예창작학과는 공교육이다. 일반 대학과 마찬가지로 정해진 커리큘럼을 이수해야 졸업할 수 있다. 졸업 요건을 충족하려면 더러 흥미가 떨어지는 수업을 듣는 경우도 생긴다.

과목마다 수강생이 적게는 50명에서 많게는 250에 달하므로 1:1 혹은 소규모로 진행되는 글쓰기 클래스에 비해 개인의 상황이나 수준이 고려되기는 어렵다. 제법 괜찮은 글을 한편 완성하거나 책을 출판하는 것처럼 즉각적인 성과가 나오기도 어렵다. 게다가 투입되는 시간과 비용도 만만치 않다.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두 선택지 사이에서 내가 선택한 건 문예창작학과였다. 단, 졸업을 욕심내지 않는다는 전제를 깔았다. 소설, 시, 수필, 동화 작가로 활동하시는 교수님들의 수업을 골라 들을 수 있다는 게 엄청난 기회로 다가왔다. 수업 내용이 궁금하기도 했다. 도대체 뭘 배우길래 문창과 출신들은 다들 글을 잘 쓸까?

당장 먹고사는데 필요하지는 않은 글쓰기 공부를 위한 등록금의 액수는 꽤 컸지만, 졸업을 욕심내지 않겠다고 마음먹자 첫 학기 등록금 정도는 감당할 만했다. 내가 편입한 서울디지털대는 편입 첫 1년간 등록금을 40% 감면해 준다. 첫 학기 등록금은 60만 원대였다.



사이버대학, 수업방식 및 학습량


등록금을 납부하고 얼마 후 1주 차 수업이 게시되었다는 문자메시지가 왔다. 기다린 순간이다.

아이 둘 엄마, 다시 대학생이 되었다.


사이버대학 수업은 온라인 또는 모바일로 수강한다. 우리 학교는 매주 화요일에 전체 과목의 수업 영상이 한 번에 업로드되고 2주에 걸쳐 수강을 완료하면 출석으로 인정된다. 주차별 수업시간은 과목당 약 90분.

편입에 앞서 계획을 세웠다. 당시 생후 4개월이던 둘째의 낮잠시간에 맞춰 90분의 수업을 1.5배속으로 맞춰 1시간 안에 듣기로. 한 학기 18학점, 6개 수업을 들으니 하루 1시간이면 충분하다는 판단이었다.


계획은 첫 주부터 실패했다. 둘째가 예민한 편이라 가만히 누워서 잠을  못 잔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 큰 이유는 1시간으로 턱없이 부족한 학습량이다.

미리 읽을거리가 있는 수업도 있고, 1.5배속으로 소화할 수 없을 만큼 강의에 포함된 텍스트의 양이 많은 수업도 있다. 퀴즈와 과제,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에 참여하려면 수업과 별도로 시간이 필요하다. 강의에 따라 수업내용과 평가방식이 천차만별이다.




문예창작학과에서는 뭘 배울까?


편입 전 가장 궁금했던 부분이다. 정보를 얻기가 어려워 학교 홈페이지에 소개된 수업내용과 교수님의 이력만을 참고로 수강신청을 했는데 기대와 전혀 다른 수업이라 당황한 적도 있다.

아래는 내가 1년간 들은 수업 중 몇 과목.



나도 소설을 쓸 수 있다 / 김종광 교수님


소설 쓰려면 뭐부터 시작해야 하나요?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하죠?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하는데 시간은 얼마나 걸리나요?

퇴고는 어떻게 하나요? 


소설 입문자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는 수업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나 자신을 포함해 내 가족, 내 단체, 내 동아리의 이야기를 쓰라시던 교수님 말씀. 내 주변의 이야기는 내가 아니면 세상에 발표되지 못한다는 거다. 이렇듯 소설을 쓰고 싶게, 쓸 수 있게 돕는 수업이다.

단편소설 한 편을 직접 쓰는 과제가 있고, 주어진 기간까지 제출하면 수업을 통해 피드백받을 수 있다.



문장지도 / 이경철, 김종광 교수님


두 교수님이 각각 운문과 산문 영역을 맡아 강의하신다. 운문 수업에서는 다양한 시와 시인을 배운다. 시인이신 교수님만이 들려줄 수 있는 국내 문단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산문 영역에서는 문장을 강화하고 퇴고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배운다. 군더더기를 없애고 잘 읽히는 문장을 쓰는 법을 교수님이 쓰신 글을 텍스트로 활용해 가르쳐주신다.



한국문학의 이해 / 최호빈 교수님


문학 작품을 감상하고 깊이 이해하는 수업이다. 예를 들면 김영하 작가의 단편소설 '오빠가 돌아왔다'의 줄거리를 살펴보고 작품의 구조가 어떤지, 각 인물이 소설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소설 말미에 등장하는 고양이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살펴보는 식이다.

다소 딱딱한 분위기의 수업이지만 좋은 작품을 소개받는 기분으로 꽤 재밌게 들었다.



현대소설창작론, 소설창작실습 / 손홍규 교수님


'현대소설창작론'. 학습량이 꽤 많고 (내 기준) 난이도도 높은 수업이다. 현대 소설의 모티브(라는 단어도 내게는 어려웠다)를 알아보는 소설 이론 수업. 매주 수업 전 텍스트로 활용될 현대 단편소설을 3~4편씩 읽어둬야 수업을 따라가는데 무리가 없다. 텍스트로 활용된 소설과 관련하여 학기 중 4차례의 과제가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과제다. 'A, B, C, D 소설을 읽고 화자와 시점, 그 특징을 1매 이내로 정리하시오.'


교수님의 다른 수업인 '소설창작실습'은 단편소설에 쓰인 다양한 테크닉을 분석하는 수업이다. 마찬가지로 사전에 소설을 읽어둬야 수업을 따라갈 수 있다. 학기 중 직접 쓴 단편소설 1편을 제출해야 한다.



동시대의 문학 읽기 / 오봉옥, 김종광 교수님


문학지에 소개된 작품을 함께 읽는 수업이다. 교재는 <문학의 오늘>이라는 문학지. 매 학기 최신본으로 수업을 진행하므로 최근 발표된 따끈따끈한 시와 소설, 수필을 접할 수 있다. 교재에 소개된 해설과는 또 다른 교수님의 해설을 들을 수 있다. 같은 작품에 대한 평가가 문학인들 사이에서도 다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수필 쉽게 쓰기 / 임헌영 교수님


(과목명에서 유추되는 바와는 달리) 작법 수업이 아니다. 차라리 인문학 수업에 가깝다. 매 수업마다 다른 장르의 국내외 수필을 소개해주시는데 여기서의 '수필'은 산문 문학 전체를 대표하는 용어로 쓰인다. 김구의 <백범일지>, <몽테뉴 수상록>, 셰익스피어 희곡, 링컨의 연설문, 간디의 연설문, 루쉰의 <광인일기>, 벤자민 플랭클린의 자서전 등이 소개되었다.

수필 한편을 쓰는 과제가 있다.



창작기초 / 오봉옥 교수님


황송문 님의 <문예창작강의>를 교재로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방법을 알려주는 수업이다. 비유적인 표현을 잘하는 법, 묘사력을 기르는 법, 구체적으로 쓰는 법 등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글쓰기 팁을 배운다.

기말시험 대신 30매 내외의 콩트 한편을 쓰는 과제가 있다.




글 쓰는 법을 배우려고 들은 수업이지만, 글을 쓰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다.

온라인 강의라 같이 듣는 사람들의 얼굴을 본 적은 없지만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수강생들의 글을 읽으며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가정을 돌보느라, 혹은 당장의 생계를 위해 직장에 다니느라 한편에 미뤄둔 꿈을 뒤늦게 이루고 싶어 큰 결심을 하신 분들.

꽁꽁 아껴둔 열정을 품고 낯선 인터넷 환경에서 고군분투하시는 엄마뻘되는 분들을 보면 응원하는 마음이 저절로 들면서 한편으로는 그분들보다 조금 더 일찍 공부할 기회를 가진 내 상황이 감사해야 할 행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한 학기만 들어보자는 마음으로 편입했지만 두 학기 동안 수업을 들었다. 현재는 복직을 계기로 휴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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