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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오늘부터 저녁 안 먹어

20일 저녁 단식 실험기 : Day 1

by 귤예지

162cm에 49kg.

고3부터 30대 초까지 쭉 유지해 온 체중이었다.

떡볶이, 치킨, 피자, 닭발을 주식 삼아 먹고도

늘 같은 체격을 유지하는 날 보고

몰래 다이어트라도 하냐고 묻는 친구도 있었다.


좀 얄밉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럴 이유가 전혀 없었다.

마음껏 먹고 마시고

운동이라곤 숨쉬기가 전부이면서도

살이 찌지 않았으니까.


나이가 들면 살이 찐다는 선배들 말을 듣고도

솔직히 별 걱정이 안 되었다.

평생 살이 안 쪄서 걱정이신 울 아빠가 있었으니까.

아빠를 닮아 나도 '살 안 찌는 체질'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출산 후에도 큰 이변은 없었다.

첫째를 임신하고 13kg이 늘었던 몸무게는

출산 후 점차 제자리로 돌아왔고

둘째 임신 후 다시 늘었지만 또 제자리로 돌아왔다.


살 안 찌는 체질.

먹고 싶은 만큼 먹어도 날씬할 수 있는 특권.

그게 더 이상 내 것이 아님을 깨달은 건

둘째 출산 후 2년이 지났을 무렵부터였다.


체중계에 올라갈 때마다 200g, 300g씩 늘어있었고

바지들이 하나 둘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불편한 건 바지뿐이 아니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체중증가에 마음도 당황스러웠다.

식습관도 활동량도 그대로인데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첫째부터 둘째까지 이어졌던 모유수유를 끊은 탓일까?

아니면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나잇살'일까?


2024.7.18 건강검진 결과지. 2년 전과 비교해 3kg 늘었다. 지금은 거기서 2kg 더.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늘어가는 체중을 어영부영 외면하고 있었다.

어수선한 집 상태를 못마땅해하면서도 어쩌지 못하고

아이들의 식습관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해 미적대듯

내 몸이 불어나는 걸 알고도 방치하고 있었다.

육아와 업무로도 충분히 바빠서

뭔가 시도해 볼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면서.

그러는 사이 몸무게는 5kg이나 늘어버렸다.


그러다 지난 연휴, 모처럼 방문한 고향에서

내 가장 오래된 팬으로부터

급기야 충격적인 말을 듣고 말았다.


딸내미 배 많이 나왔데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예외 없이

내가 세상 제일 예쁘다고 추켜세워주던 엄마였다.

세상의 주관적인 기준 따위 모르고

자기 딸이 그저 최고인 줄 아는 엄마 입에서 나온

살쪘다는 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흔 언저리가 되면서

더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이 자주 드는 요즘이었다.

육아방식와 회사생활, 돈 관리습관, 말버릇까지

달라져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런데몸 하나 통제하지 못하는 내가

도대체 뭘 바꿀 수 있을까?


고향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차에서 남편에게 선언했다.


나 오늘부터 저녁 안 먹을 거야.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댈 수도 없다.

귀찮다는 변명도 안 통한다.

새로 뭔가를 시도하는 게 아니라

늘 해오던 걸 멈추면 되는 거니까.


저녁 6시 이후에는 아무것도 안 먹기.

20일 동안만 도전해 보기로 했다.





20일 저녁 단식 실험기 1일차 체중 : 54.2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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